십 년의 계절을 건너온 나의 까미
2014년 5월 어느 날, 칠흑 같은 털을 가진 작은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문턱을 넘었다. 녀석의 새카만 털을 보고 아이들은 고민도 없이 ‘까미’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 단순하고 직관적인 이름이 우리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책임지는 든든한 막내의 이름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은 거실 한복판에서 배를 내밀고 잠을 청하는 순한 녀석이지만, 한때 까미는 이 동네를 호령하던 ‘짱’이었다. 녀석의 왕좌는 아파트 102동 5-6호 입구의 햇볕 좋은 계단 난간이었다. 그곳은 오가는 사람과 차량, 그리고 다른 고양이들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그네들의 세계에서는 더없이 완벽한 자리였을 것이다. 난간 위에 위엄 있게 올라앉아 동네를 내려다보는 까미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카리스마가 서려 있었다. 다른 길고양이들은 감히 까미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고, 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그 왕좌를 넘보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매서운 응징이 뒤따랐다. 짙푸른 동백 잎 사이로 번득이던 까미의 검은 그림자는 녀석의 가장 찬란했던 청춘의 훈장이자, 야생의 본능이 살아 숨 쉬던 시절의 증거였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는 법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마주한 까미의 몰골은 처참했다. 귀 끝은 날카로운 무언가에 뜯겨 나갔고, 머리통 언저리는 깊게 패어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왕좌를 지키기 위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가혹한 상처였다. 그날 이후, 102동 5-6라인의 왕좌에는 다른 고양이가 앉게 되었고 까미는 왕좌에서 내려왔다. 한동안 집에서 요양하며 바깥출입을 삼갔던 그때, 녀석은 자발적인 은둔을 택했다. 다시는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들의 보호 속에서, 녀석은 거리에서 물러났다. 그렇게 거리의 투사는 한동안 집고양이가 되었다.
까미는 딸만 둘인 우리 집에서 막내 남동생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랐다. 2014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은 어느덧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의 지갑은 늘 까미를 위해 열려 있었다. 용돈을 아껴 녀석이 좋아하는 닭가슴살 간식을 사고, 캣닙이 든 인형을 사 나르는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까미는 가족의 감정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읽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내가 딸아이를 호되게 야단치고 돌아선 날, 방 안에서 의기소침한 아이의 곁을 지키는 건 늘 까미였다. 녀석은 아무 말 없이 아이의 발치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온기를 나누어 주었다. 텅 빈 집에서 늦은 밤까지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까미의 존재는 무서움을 쫓아주는 등불이었다. 녀석은 그렇게 우리 가족의 정서적 기둥으로 뿌리내렸다.
고양이들과 살다 보면 흔히들 ‘꾹꾹이’라 부르는, 앞발로 리드미컬하게 누르는 애교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까미는 꾹꾹이를 할 줄 모른다. 대신 녀석은 머리를 들이미는 ‘박치기’로 마음을 전한다. 너무 어렸을 적에 어미를 잃어 애정 표현의 정석을 배우지 못한 탓이라는 주변의 이야기에 가슴 한구석이 아려오기도 하지만, 나는 녀석의 쌈박한 박치기가 그 어떤 기술적인 꾹꾹이보다 진실하게 느껴진다.
특히 내가 몸이 좋지 않아 누워 있을 때면 까미의 박치기는 더욱 대담해진다. 녀석은 슬금슬금 다가와 내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들며 그 작고 단단한 머리통으로 나를 툭툭 밀어댄다. 요즘 들어 녀석이 유독 나와 베개를 같이 베고 잠을 청하는 것도, 어쩌면 내가 요즘 겪고 있는 허리 통증을 눈치채고 녀석 나름의 ‘치유의 의식’을 건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꾹꾹이 같은 세련된 방식은 없어도, 온몸의 무게를 실어 전해오는 녀석의 정수리 무게는 세상 그 어떤 진통제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까미는 매일 밖으로 나가 용변을 처리하는 깔끔한 고양이이지만, 먹거리만큼은 의외로 소박하고도 고집스럽다. 집에는 엄선된 고급 사료가 늘 구비되어 있지만, 녀석은 밖에서 길냥이들이 먹는 투박하고 짠 사료를 더 즐긴다. 산책을 하다 보면 동네 캣맘이 챙겨주는 길냥이 급식소 앞에 태연하게 앉아 식사 중인 까미를 종종 목격한다. 녀석이 우리 집 고양이인 것을 아는 이웃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급히 녀석을 불러보지만, 까미는 들은 척도 않고 길 위의 맛에 집중한다. 아마도 그 사료 맛은 녀석에게 고향의 맛이자,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의지인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점은 먹는 건 밖에서 해결해도, 물만큼은 꼭 집에서 마신다는 것이다. 길냥이 사료 옆에도 깨끗한 물그릇이 놓여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까미는 밖에 나간 시간이 길어지면 집으로 돌아와 제 물그릇 앞에 자리를 잡고 한참 동안 물을 들이켠다. 밖에서 거친 식사를 즐기고 물은 집에서 대접받겠다는 녀석만의 독특한 식사 원칙. 나는 녀석의 세계관을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 고집마저 까미라는 존재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고양이와 살며 배우는 가장 큰 장점은 '조건 없는 신뢰'와 '공존의 거리감'이다. 녀석들은 나를 구속하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고독의 순간에 곁을 지키고, 삶의 행복이 비싼 사료가 아닌 츄르 한 스틱과 따뜻한 햇볕 아래의 낮잠에 있음을 몸소 알려준다.
요즘 까미의 등을 쓰다듬다 보면 손끝에 전해지는 털의 질감이 예전 같지 않다. 한때 밤공기처럼 새카맣고 매끄럽던 털들이 이제는 세월의 빛에 바래 진한 갈색을 띠고 있다. 녀석의 몸에 우리 가족과 함께한 10년의 사계절이 훈장처럼 켜켜이 새겨진 것이다. 큰딸은 까미가 귀찮아 자리를 피할 때까지 정성껏 털을 빗겨주고, 둘째는 이제는 노묘가 된 녀석이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며 쓰다듬기를 멈추지 않는다.
가끔 몸이 아플 때면 침대 밑이나 발코니 구석으로 들어가 고독하게 견뎌내다가도, 정말 힘들 때는 내 옆구리를 파고드는 녀석. 그 무언의 의지함 속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금 되새긴다. 녀석은 나에게 등 하나를 내어주며, 세상의 풍파를 견디는 법을 조용히 일러준다.
까미야, 네 검은 옷이 조금 더 바래져서 아주 연한 갈색이 될 때까지, 우리 오래도록 베개를 같이 베고 자자꾸나. 네가 아플 때 언제든 파고들 수 있게 내 옆구리는 항상 따뜻한 온기로 비워둘게. 102동의 ‘짱’이었던 너의 용맹함도, 이제는 내 머리맡을 지키는 너의 다정함도 모두 사랑한다. 2014년 그날부터 지금까지, 너는 우리에게 한낱 고양이가 아니라 가장 큰 위로였단다.
그러나 나는 이 털뭉치 녀석이 가끔, 참 밉다. 녀석의 털색이 갈색으로 변해가는 것을 볼 때마다, 녀석이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만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내 귀에 대고 불러주는 골골 송이 언젠가는 멈출 것이라는 두려움을 줄 때마다, 녀석이 남기고 갈 그 거대한 빈자리가 벌써부터 예견될 때마다 나는 녀석이 밉다. 너무나 사랑해서, 그 끝이 오는 것이 무서워 자꾸만 미워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새벽녘 내 팔을 긁는 녀석의 발길질에 못 이기는 척 일어나 현관문을 열어준다. 밖으로 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에 대고 "조심해서 다녀와"라고 속삭인다. 미움보다 훨씬 큰 사랑이, 오늘도 우리 집 거실에 진한 갈색 털을 묻힌 채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