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의 이단, 데시모의 혁명

딸칵, 나의 필기가 시작된다

by 누룩취


사람의 인연에도 '모시는 분'이 있고 '곁에 두는 이'가 있듯, 사물과의 인연도 그러하다. 서재 한편에서 위엄을 뽐내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늘 주머니 속에서 나의 온기를 나눠 가지며 일상의 비루함까지 함께 견디는 물건이 있다. 나에게 만년필, 그중에서도 ‘Pilot 데시모(Decimo)’는 후자의 정점에 서 있는 존재다.

나의 필갑(筆匣)에는 제법 화려한 면면들이 모여 있다. 몽블랑 146부터 워터맨 익스퍼트 2, 파버카스텔 이모션, 파카 51과 45, 라미 사파리까지. 하나같이 훌륭한 도구들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늘 내 손에 쥐어져 있지는 않다. 나는 펜을 모셔두고 쓰는 성미가 못 될뿐더러, 몽블랑이나 펠리칸 같은 고급 기종은 내 거친 일상의 호흡에 비하면 조금 버거운 옷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현재 내 필갑에서 잉크를 머금고 늘 손에 붙어 있는 녀석들은 ‘Pilot 데시모’‘플래티넘 3776 센츄리’ 뿐이다. 나에게 이 둘은 각자의 자리가 뚜렷하다. 회의실처럼 긴장감이 흐르는 곳에서는 단연 3776 센츄리가 제격이다. 논쟁 중에 조금 흥분하여 필압이 가팔라진들 어떠랴, 단단한 3776 센츄리의 촉은 그 모든 감정을 묵묵히 받아내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모든 시간, 나는 데시모와 함께한다. 카페에서 스치는 생각을 끄적거릴 때나 소란스러운 버스, 전철 안에서도 데시모는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노크식 구조 덕분에 볼펜처럼 간편하면서도, 종이 위에 닿는 순간 들려주는 이야기는 Pilot 743이나 펠리칸 M600에 뒤지지 않는 만년필의 정수를 보여준다.

물론 이 펜이 모두에게 다정한 것은 아니다. 볼펜의 옷을 입었으나 속은 영락없는 만년필인 이 기묘한 물건은, 클립이 손가락 사이에 놓이는 독특한 구조 탓에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 되기도 한다. 마치 모든 인연이 제 짝이 있듯, 데시모 역시 주인의 손마디가 가진 지도를 꼼꼼히 따져보고서야 제 몸을 내어준다. 그러니 혹여 나의 이 글이 누군가의 구매욕을 부추겼다면 잠시 멈추길 바란다. 이 펜은 화려한 찬사에 휘둘려 서둘러 구매 하기보다는, 직접 손에 쥐어보고 내 손의 파지법과 펜의 클립이 화해할 수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하는 '까다로운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데시모는 '캡(뚜껑)'의 구속에서 나를 해방해 주었다. 나는 본래 펜을 쓸 때 캡을 뒤에 꽂지 않는다. 늘 왼손 위에 캡을 올려두고 오른손으로는 배럴만 걸치고 써 내려가는 것이 내 오랜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아찔한 사고도 겪었다. 언젠가 왼손 위의 캡이 바닥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하필 지나가던 아이가 그것을 밟았고, 무사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치였다. 아이 부모가 사과했지만, 뚜껑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새 펜 가격의 절반 가까이를 지불하고 수리를 받으며 쓰린 속을 달래야 했던 그 기억은 한동안 나를 위축시켰다. 그날 이후, 외부로 나갈 때는 한동안 볼펜만 챙겼다.

뚜껑 잃어버릴 걱정, 떨어뜨려 밟힐 걱정 없이 '딸칵' 소리 한 번에 만년필의 부드러운 필감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데시모는 내 외부 활동의 유일한 선택지가 되었다.

누군가는 몽블랑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가치를 가볍게 볼지 모르나, 나에게 데시모나 3776 센츄리는 결코 대체제가 아니다. 충분히 고가이며, 무엇보다 자신만의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독보적인 도구들이다. 명품 만년필을 꺼내는 마음이 '의식'이라면, 데시모를 꺼내는 마음은 '대화'에 가깝다.

오늘도 나는 몽블랑의 위엄 대신 데시모의 친절을 주머니에 넣는다. 내 삶의 필기는 이 가벼운 클릭 소리와 함께 비로소 시작된다.


딸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