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의 미학
베네치아의 수로 위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 이탈리아의 귀족들이 눈을 가린 채 익명의 자유를 탐닉하던 가면무도회를 떠올려 본다. 화려한 의상 위로 도드라지는 것은 눈 주변을 정교하게 가린 마스크다.
반면, 동양의 옛 풍습 속 여인들은 장옷이나 쓰개치마로 얼굴 전체를 감싸면서도 유독 눈만큼은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서양의 가면은 흔히 눈을 가리고, 동양의 전통 복식은 대체로 눈을 남겨두었다. 이 대비는 단순한 양식의 차이를 넘어, 우리가 타인의 진실에 가닿는 방식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흥미로운 대비는 우리가 향유하는 영웅들의 모습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스페인령 캘리포니아의 영웅 ‘조로’는 눈을 가린다. 그는 눈을 가림으로써 귀족인 자신을 지우고, 정의라는 이름의 익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고담시의 어둠 속을 걷는 ‘배트맨’ 역시 눈을 가린다. 그는 부루스 웨인을 지우고, 밤의 기사로 살아간다.
미국에서 탄생한 ‘닌자 거북이’들 역시 각기 다른 색의 띠로 눈을 가린다. 그 가림은 ‘나’라는 개인을 지우고 또 다른 자아로 건너가는 변신의 의식이다.
눈을 가린 가면 뒤에서 개인은 비로소 익명의 자유를 얻고, 타인이라는 낯선 세계로 거리낌 없이 뛰어든다.
반대로 동양의 세계에서 눈은 ‘마지막 보루’였다. 조선의 의적 ‘일지매’는 입술을 포함한 얼굴 하단을 가리지만 눈만은 가리지 않는다. 동양의 전통적 복면 역시 얼굴을 가리되 눈만은 남긴다. 그들에게 눈은 속일 수 없는 영혼의 창이다. 쓰개치마 아래로 눈만 내놓은 채 길을 걷던 여인들에게 그 작은 틈새가 세상을 관측하는 유일한 통로였듯, 동양의 가림은 나의 본질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빛을 남겨두는 행위였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차이는 오늘날의 일상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난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서구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낀 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도 그들은 거리낌 없이 웃고,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우리는 선글라스 너머의 눈이 보이지 않을 때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다. 눈을 마주치지 못한 대화는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돈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눈 속에서 진심의 흔적을 찾고 싶어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림의 미학에는 또 다른 극단이 존재한다. 바로 모든 것을 가리는 ‘부르카’다. 눈조차 망사 너머로 감추는 이 전면적 차단은, 자아를 지우는 익명성이라기보다 신념과 보호의 방식에 가깝다.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이라기보다 거리를 두는 선택에 가깝다. 보여줌이 아니라 ‘보여주지 않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 안에는 침묵과 고독뿐 아니라, 신앙과 정체성, 그리고 경계의 의지가 함께 놓여 있다.
입술을 가리는 행위가 ‘침묵’이라는 미덕의 완성이라면, 눈을 가리는 행위는 ‘익명’이라는 자유의 완성이다. 그리고 부르카처럼 모든 것을 가리는 행위는 ‘단절’ 혹은 ‘절대적 은폐’의 영역에 닿아 있다. 동양에서 입을 가리고 눈을 노출하는 것이 불필요한 언어의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눈짓’이라는 정적인 파동으로 대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면, 서양의 가면은 나를 지우고 타인이 되려는 갈망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누구로부터 무엇을 가리고 사는지 자문해 본다. 회의 자리에서 속내를 삼킨 채 웃고 있던 어느 날의 나는, 눈을 가린 채 안전한 익명 속으로 숨고 싶었다. 오래된 친구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한 한 문장 때문에 밤을 지새운 날에는, 일지매처럼 입을 굳게 닫은 채 눈으로만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아무 표정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의 모든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도 있다. 그 순간 나는 완전히 가려진 채, 오직 나 자신에게만 보이는 존재가 되고 싶어진다.
결국 가린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선택이다.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의 문제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에 대한 조용한 답변이다.
눈을 가려 익명의 자유를 누릴 것인가, 눈만을 남겨 침묵의 진실을 전할 것인가, 혹은 모든 것을 가려 자신만의 골방에 머물 것인가.
그 선택의 문턱에서 우리는 망설인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서로의 가려진 너머를 궁금해한다. 보이지 않는 진심을,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 오래도록 더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