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만을 거부하는 순간
악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끝에는 '모방'이라는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은 바람이 댓잎을 스치는 소리를 흉내 내기 위해 짐승의 뼈에 구멍을 뚫었다. 천둥의 위엄을 곁에 두려 팽팽하게 당겨진 가죽을 두드렸고, 활시위가 튕기는 팽팽한 울림에서 현악기의 원형을 찾아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 활시위조차 이미 자연 그대로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동물의 힘줄이나 식물의 줄기를 인간의 목적에 맞게 가공하고 비튼, 인공적인 긴장의 산물이었다. 인간은 자연의 경이로움을 소유하고 싶어 했고, 그 거대한 울림을 손바닥만 한 도구 안에 가두어 언제든 꺼내 보고자 했다. 결코 잡히지 않는 자연의 날것을 인간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여 곁에 두고 싶어 했던 지독한 짝사랑, 그것이 악기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래전 설악산으로 떠났던 워크숍의 기억은 그 오랜 짝사랑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었다. 오색약수를 지나 용소폭포를 목표로 발을 들였다. 가을로 접어드는 산의 공기는 차갑고도 맑았으며, 바람 소리는 단풍의 농도만큼이나 화사하게 귓가를 스쳤다. 바위를 깎아내릴 듯 명징한 물소리와 짙은 흙 내음이 어우러진 그 길 위에서, 인간은 그저 겸허한 관찰자일 뿐이었다.
그때, 이어폰을 꽂고 걷던 상사가 내게 다가와 남은 한쪽을 건넸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의 고상한 취향을 자랑하고 싶어 못 견디겠다는 듯, 이 비경에 가장 완벽한 배경음악을 골랐다는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온 것은 슈만이었다.
"이 길에서 듣기 너무 어울리지 않냐?"
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답할 수 없었다. 슈만의 음악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미학의 정점이며, 정교하게 조율된 피아노의 타건과 현의 울림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귀를 때리는 슈만은 설악의 거대한 고요를 난폭하게 찢고 들어오는 인공의 소음일 뿐이었다. 자연이 이미 완벽한 총보(Score)를 연주하고 있는 마당에, 인간이 만든 가느다란 선율을 덧입히는 것은 캔버스 위에 덧칠된 조잡한 낙서와 다를 바 없었다.
산행길에 트로트를 크게 틀고 걷는 이들과 상사의 행위는 본질적으로 종이 한 장 차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행동이 더 세련된 형태의 폭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타인의 고막을 무차별적으로 타격하는 무례함이라면, 후자는 내 감각의 권리마저 자신의 '고상함'이라는 은근한 정서적 압박이기 때문이다. 그는 권유의 형식을 빌려 내 반응을 살폈지만, 그것은 명령으로 다가왔다. 그의 질문은 대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적 감수성에 대한 찬양과 동조를 강요하고 있었다. 그 순간 슈만의 유려한 악장은 예술이 아니라 타인의 고요를 침범하기 위해 벼려진 정교한 무기였다.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자연이라는 공간에서 누군가의 취향이 확성되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평등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무분별한 소음을 내뿜는 이들의 무신경함은 차라리 투박하여 피할 곳이라도 있다. 하지만 이어폰 한쪽을 건네며 사적인 감상을 강요하는 행위에는 '나는 너보다 고상한 것을 누리고 있다'는 은근한 우월감이 깔려 있다. 그들은 자신의 교양이 자연의 원형보다 가치 있다고 믿으며, 그 믿음을 타인의 내면에 주입하려 든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한 수혜자(受惠者)여야 한다. 그곳은 인간의 지위나 심미안이 지워지고 오로지 생명의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공유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 인공의 소리를 들고 개입하는 순간, 그 평화로운 균형은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내 귀를 통과하는 소리를 선택할 권리와 자연의 날것을 마주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순간, 나는 웅장한 설악산이 아니라 누군가의 비좁고 폐쇄적인 거실 한복판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악기가 자연을 흉내 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학설은 역설적으로 악기가 결코 자연 자체가 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인간은 자연을 곁에 두려 악기를 발명하고 개량해 왔지만, 정작 자연의 한복판에서 그 복제품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바위를 때리는 폭포의 원초적 울림, 산새들의 생명력 넘치는 지저귐, 발밑에서 바스라지는 흙과 낙엽의 거친 질감…. 이 압도적인 오케스트라 앞에서 인간이 만든 선율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을 복제하여 예술을 창조했다고 자부하지만, 원본의 위엄 앞에서는 그 어떤 정교한 악기 소리도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나는 그의 기대를 외면한 채 조용히 이어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의 대답 없이 다시 귀를 연 채 산을 올랐다. 타인의 침묵을 존중할 줄 모르는 오만함, 타인의 감각적 경계선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는 인간의 비대한 자아가 폭포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산에서 마주치는 공격적인 취향의 전시가 두렵다. 그들은 자신이 건네는 것이 따뜻한 선의라고 굳게 믿기에, 그 무례함에는 마땅한 출구조차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을 그리려 진화했다는 화려한 악기 소리보다, 아무런 의도도 감정도 없이 무심히 흐르는 물소리가 훨씬 더 내 마음을 깊게 울렸다. 자연은 흉내 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온몸으로 젖어들어야 하는 원형의 공간임을 그날의 설악은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진심으로 그 순간을 더 풍성하게 나누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어폰 속에는 혼자만 듣기 아까운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수한 선의조차 타인에게는 오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끝내 알았을까.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소유하려 했던 그날의 슈만처럼, 그의 배려는 산의 고요와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 허공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