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된 시간의 층위
물고기의 몸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노인은 더 이상 고기를 보고 싶지 않았다.
고기가 공격당했을 때, 마치 자신이 공격당한 느낌이었다.
『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 中, 어니스트 헤밍웨이
인생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거대한 물고기를 쫓는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친 커리어일 수도 있고, 고통스럽게 쌓아 올린 신념이나, 전부를 걸었던 꿈일 수도 있다. 손에 쥐기 위해 밤잠을 설치고, 손바닥이 벗겨지는 통증을 견디며 마침내 그 꼬리를 붙잡았을 때, 우리는 그것이 곧 '나 자신'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삶이라는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가장 지쳐 있을 때, 가장 축배를 들고 싶을 때 상어 떼는 나타난다. 예기치 못한 실패, 타인의 차가운 평가, 혹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이 내가 공들여 잡은 물고기를 사정없이 뜯어놓는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배 옆에 매달린 것이 오직 앙상한 뼈뿐이라면, 우리는 그 뼈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패배감에 짓눌려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산티아고'의 침묵 섞인 고백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상어에게 뜯긴 것은 나의 '전리품'이지, 나의 '존엄'이 아니다. 사람들은 항구에 남겨진 뼈를 보며 실패라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뼈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의 빈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거친 파도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며 줄을 당겼던 그 팽팽한 긴장감,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던 불굴의 의지. 그 뜨거웠던 항해의 기억은 상어의 이빨이 닿을 수 없는 내면의 깊숙한 곳에 온전히 남아 있다.
물고기의 몸은 훼손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 역시 언제든 부서지고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 위에서 보낸 나의 시간과 의지는 누구도 훼손할 수 없다. 타인의 인정으로 환산되지 않는 힘, 내가 겪어낸 시간의 층위는 고스란히 내 안에 쌓인다.
이제 나는 뼈만 남은 결과물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끄러운 흉터가 아니라, 내가 한 번은 깊은 바다로 나아갔다는 증표다.
이번 항해에서 고기를 잃었을지라도, 나는 여전히 방향을 아는 사람이다. 바다는 여전히 거칠고, 상어는 언제든 나타나겠지만, 적어도 나는 안다.
나는 항해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