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다정함: 만년필이 바꾸는 시간

by 누룩취

세상은 빠름과 효율을 숭배한다. 클릭 한 번에 문장이 날아가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시 지운다. 흔적은 남지 않는다.

속도는 미덕이 되었고, 즉각성은 능력이 되었다.

우리는 더 빨리 쓰고 더 쉽게 지우는 법에 익숙해졌다.

나는 이 속도전에서 낙오되기를 자처한다. 만년필을 손에 쥐는 순간이 그렇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만년필은 불합리한 필기구다. 즉각적이지 않고, 손이 많이 간다. 효율과는 거리가 먼 도구다. 그럼에도 나는 이 불편함을 선택한다.

만년필은 준비를 요구한다. 볼펜처럼 즉시 복무하지 않는다. 마음을 먼저 다잡아야 한다. 잉크가 없는 펜은 도구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 잉크에 닙을 잠그고 피스톤을 돌린다. 공기가 빠져나가고 액체가 차오르는 감각이 손끝에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손가락에 잉크가 묻는다. 잘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다. 나는 이 얼룩을 성가셔하지 않는다. 내가 직접 시간을 만졌다는 표식으로 받아들인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남길 수 없는 구체적인 흔적이다.

종이 역시 가린다. 만년필은 아무 종이에나 쓸 수 있지만, 모든 종이와 어울리지는 않는다. 얇은 종이는 잉크를 감당하지 못해 번지고, 거친 종이는 닙의 흐름을 방해한다. 어떤 종이를 펼칠지, 오늘의 습도는 어느 정도인지 살핀다. 문장을 적기 전부터 이미 선택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내가 쓰려는 문장에 대한 예우다.

관리는 필수다. 주기적으로 세척하고 건조해야 한다. 충격에 주의해서 보관한다. 만년필은 소모품이라기보다 관리를 통해 유지되는 관계에 가깝다. 무심하게 다룰 수 없는 대상이 곁에 있다는 것은, 내 일상에 책임질 부분이 생겼다는 의미다.

캡을 돌려 여는 동작이 시작을 알린다. 잉크 색을 고르는 망설임 속에서 내 마음의 취향을 살핀다. 종이 위에 첫 획을 긋는 순간 주변의 시간은 속도를 잃는다.

서둘러 쓸 수 없다. 필압이 높으면 잉크가 번지고, 잉크가 부족하면 흐름이 끊긴다. 문장은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단어를 적기 전, 이 단어가 적절한지 스스로 묻게 된다. 키보드 위에서는 생각보다 말이 앞서지만, 만년필 앞에서는 말보다 침묵이 먼저 온다.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어 마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적 속에서 나는 방금 쓴 문장을 다시 읽는다. 만년필에는 되돌리기 버튼이 없다. 한 번 그어진 획은 수정할 수 없다. 고쳐 쓰지 않기 위해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천천히 움직인다.

그 순간 시간의 무게가 달라진다. 가볍게 흘러가던 하루가 종이 위로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나 자신을 정중히 대하는 의식이다. 삶을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서두르지 않기 위한 수련이다.

필체를 교정하기 위해 이 번거로움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서툰 획과 삐뚤어진 문장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급했는지, 혹은 평온했는지를 발견한다. 그 솔직함이 좋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은 시간을 지불하겠다는 뜻이다. 시간을 지불한다는 것은 나의 하루를 값싸게 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만년필은 속도에 대한 저항이 아니다. 나 자신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타인의 속도에 맞추지 않고 나의 보폭으로 문장을 완성하겠다는 다짐이다.

오늘도 손가락에 잉크를 묻히고 채운다. 피스톤을 타고 오르는 잉크를 느낀다. 손의 얼룩은 사라지겠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감각은 남는다. 잉크가 마르는 짧은 찰나, 나는 내가 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이것은 기록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내가 나에게 주는 존중이며, 내가 나에게 허락한 사치다. 나는 이 사치를 아직은 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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