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가득 찼다. 큰아이의 자취가 시작되었다. 2년 간의 기숙사 생활을 뒤로하고 3학년부터 녀석의 안식처로 얻은 작은 방이다. 아내와 둘째 녀석, 그리고 나까지 온 가족이 출동했다. 좁은 복도를 오가며 짐을 옮겼다. 큰아이는 제 공간이 생긴 것이 기쁜지 상기된 얼굴로 짐을 풀었고, 둘째는 언니의 침대를 정리하며 분주히 움직였다.
정리가 어느 정도 끝날 무렵 책상 구석 연필꽂이 뒤편에서 낯익은 물건이 보였다. 몇 년 전 선물했던 라미 사파리 만년필이다. 강철 클립이 특징인 투박하고 견고한 디자인이다. 캡을 열었다. 닙 끝이 메말라 있었다. 배럴을 돌려 안을 확인했다. 컨버터 속 잉크는 수분이 다 날아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대학 생활의 분주함 속에서 이 펜은 오랫동안 종이 위를 구르지 못한 모양이다.
“이거 잉크가 다 굳었네. 아빠가 가져가서 세척해 놓을게.”
내 제안에 짐을 정리하던 딸이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반가운 기색으로 답했다.
“어? 고마워. 깜빡 잊고 있었네. 잉크 채워 줘.”
잘 쓰겠다는 의미가 담긴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선물한 물건이 잊히지 않고 다시 아이의 손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아이가 새로운 공간에서 이 펜으로 자신의 일상을 적어 내려갈 모습을 상상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펜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은 시각, 책상 앞에 앉았다. 가져온 만년필을 분해했다. 캡을 벗기고 배럴을 돌려 분리했다. 잉크가 굳어버린 컨버터를 그립 섹션에서 뽑아냈다. 유리컵에 미지근한 물을 채웠다. 닙과 피드가 결합된 그립 섹션을 물속에 담갔다.
물에 닿자마자 굳어 있던 검은 잉크가 피어올랐다. 연기 같기도 하고, 어둠이 번지는 모양 같기도 하다. 닙의 슬릿과 피드의 촘촘한 홈 사이에 박혀 있던 잉크 찌꺼기들이 물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2년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투명한 물을 순식간에 검게 물들였다. 억지로 긁어내지 않았다. 그저 물이 잉크를 달래어 제 몸속으로 받아들이기를 기다렸다. 굳은 시간을 녹여내는 일에는 서두름이 금물이다.
첫 번째 물은 금세 탁해졌다. 컵을 비우고 새 물을 받았다. 이번에는 컨버터를 씻을 차례다. 라미의 전용 컨버터는 뒤쪽 노브를 돌려 피스톤을 움직이는 방식이다. 노브를 돌려 피스톤을 끝까지 밀어 넣었다. 입구를 물에 담그고 다시 노브를 반대로 돌리는 과정을 반복하면 굳은 잉크가 풀어져 나올 것이다. 나는 주사기를 이용했다. 주사기에 물을 채워 컨버터 속으로 바늘을 넣어 물을 쏘았다. 좁은 주사바늘에서 쏘아진 물로 컨버터는 빠르게 깨끗해져 갔다.
노브도 움직였다. 손끝으로 저항감이 전해졌다. 굳은 잉크가 길을 막고 있으면 피스톤이 뻑뻑하게 움직인다. 물을 넣고 빼는 행위를 수십 번 되풀이했다.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다. 어느 순간 뻑뻑하던 노브가 매끄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막혔던 통로가 열린 것이다.
그립 섹션도 흐르는 물에 가져다 댔다. 수압을 이용해 피드 뒷부분에서 앞부분으로 물을 흘려보냈다. 닙과 피드 사이의 미세한 틈새에 숨어 있던 마지막 잉크 찌꺼기가 밀려 나왔다. 검은색에서 진회색으로, 다시 연회색으로 물의 색이 변했다. 마침내 닙을 통과한 물이 아무런 색 변화 없이 투명하게 떨어졌다. 세척의 정점이다. 비로소 굳어 있던 시간이 흐르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세척을 마친 부품들을 부드러운 천 위에 올렸다. 사파리의 삼각형 그립 존이 조명 아래서 번들거렸다. 닙 안쪽의 모세관에는 여전히 습기가 남아 있었다. 연하게 연두색이 묻어 나왔다. 검정색의 잉크의 흔적이 연두색이라니… 내가 보여지는 색의 흔적은 무슨 색일까를 생각해본다. 천 끝을 닙에 살짝 갖다 대어 남은 물기를 흡수시켰다. 부품들을 나란히 눕혀두고 자연 건조를 기다렸다. 억지로 바람을 쐬지 않았다. 물기가 스스로 증발하여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주었다. 바짝 마른 닙은 금속 본연의 차가운 빛을 냈다. 잉크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는 투명하고 깨끗했다. 비워진 펜은 가볍다. 잉크가 가득 차 있을 때의 묵직함은 사라졌지만, 대신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그 묵직함의 무게는 무려 1g이나 된다.
세척하는 내내 입가에 옅은 미소가 머물렀다. 딸아이가 다시 쓰겠다고 말해준 덕분이다. 굳은 잉크를 씻어내며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했다. 펜은 이제 깨끗하다. 다시 흐를 준비가 되었다. 아이는 자랐고 제 집을 가졌다. 부모의 역할은 도구가 잘 작동하도록 관리하고 길을 터주는 것이다. 그 도구를 사용하여 어떤 문장을 만들지는 아이의 몫이다. 흐르는 물에 닙을 헹구며 그 사실을 다시 새겼다.
세척을 끝낸 만년필을 다시 조립했다. 이번에는 빈 상태로 두지 않았다. 녹색 잉크를 가득 채웠다. 컨버터를 통해 잉크가 올라가는 모습이 선명했다. 펜은 이제 묵직한 생명력을 얻었다. 닙 끝을 타고 흐를 새로운 문장들을 기대하며 필통 속에 넣었다. 만년필 세척은 기록의 끝이자 새로운 연결이다. 찌꺼기를 남기지 않고 비워낸 자리에 색을 채웠다.
둘째 녀석도 언젠가 저 언니처럼 제 방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때도 나는 오늘처럼 묵묵히 짐을 옮기고, 낡은 도구 하나를 찾아내 씻어줄 것이다. 그것이 아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다. 창밖으로 밤이 깊어간다. 깨끗해진 만년필 촉이 조명 아래서 조용히 빛난다. 내일 이 펜은 주인을 찾아가 다시 기록을 시작할 것이다. 비움과 채움의 과정을 거친 만년필이 딸아이의 자취방 책상 위에서 든든한 동료가 되어주길 바란다. 나는 펜이 잘 흐르도록 길을 터준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