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기록의 도구와 변하지 않는 가치

by 누룩취

일본 만년필 시장의 공기가 예사롭지 않다.

요지부동이던 가격표가 앞다투어 바뀌고 있다. 파이롯트, 세일러, 플래티넘 등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사들은 이미 여러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사용자들에게 일본 만년필은 합리적인 가격에 최상의 마감을 제공하는 신뢰의 상징이었으나, 이제 그 신뢰는 높은 가격 장벽 앞에서 시험받고 있다.

특히 세일러사의 적자 구조는 애호가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만년필은 현대 사회에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난 속에서 묵묵히 정교한 닙을 깎아내며 좋은 펜을 만들어온 그들의 노력은 마니아로서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 가격을 올리는 것은 자본 논리상 피할 수 없는 선택임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익숙하게 보아왔던 숫자들이 하루아침에 낯설게 바뀌고, 접근 가능한 영역 밖으로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뼈아프다. 그것은 단순히 물건값이 오른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향유해 온 문화적 저변이 좁아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에 가깝다.

디지털화된 생활은 우리에게서 펜과 노트를 빼앗아갔다.

오늘날 글의 대부분은 손가락 끝의 감각이 아닌 키보드 타건과 스크린 터치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필체를 정성껏 가꾸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굳이 만년필이 아니더라도 모나미 153 볼펜 한 자루만 있으면 몇 년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시대다. 효율성만을 따진다면 만년필은 번거롭고 느린, 시대에 뒤처진 도구일지도 모른다. 잉크를 채우고, 세척하고, 종이의 질감을 따지는 일련의 과정은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만년필에는 단순한 필기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속도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종이 위에 정착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개인적인 일상에서도 구체적인 당혹감으로 다가왔다.

딸아이에게 만년필의 매력과 기록의 즐거움을 알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려 했다. 대상은 플래티넘의 ‘3776 센추리’였다. 입문용 금촉 만년필의 교과서 같은 모델이며, 나 또한 오랫동안 애용해 온 신뢰의 도구다. 라미 사파리와는 또 다른, 펜촉이 종이를 긁는 사각거림 속에 생각이 정리되는 경험을 딸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시장에서 재고를 구하기조차 힘들었다. 간신히 찾은 매물의 가격표는 내가 기억하던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세일러와 파이롯트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사고 싶어도 물건이 없고, 물건이 있어도 가격이 발목을 잡는다. 이것이 현재 일본산 만년필이 마주한 서글픈 진실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권하던 취미의 문턱이 어느덧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러운 허들이 되어버렸다.

서랍 속에는 그동안 모아 온 여러 자루의 만년필이 정돈되어 있다. 오늘 나는 평소 주력으로 쓰던 파이롯트 데시모나 플래티넘 3776 센츄리 대신, 잠시 잊고 지냈던 워터맨 익스퍼트 2를 꺼내 든다. 정성스레 잉크를 채우고 손바닥에 전해지는 묵직한 무게감을 느껴본다. 피드에 스며드는 잉크의 흐름을 기다렸다가 종이 위를 구르는 촉의 감각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일본 만년필의 세밀함과는 또 다른, 단단하고 듬직한 필감이 손등을 타고 전해진다. 서구적인 강성이 느껴지는 이 펜은 예리한 일본 펜들과는 또 다른 안정감을 준다.

새로운 물건에 열광하고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은 젊은 시절이나 나이가 들어서나 매한가지인 본능이다. 더 화려한 한정판, 더 정교한 상위 모델을 갈망하는 마음은 취미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품귀 현상이라는 파고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서니, 비로소 늘 곁에 있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신제품이 주는 일시적인 충족감보다, 오랜 시간 내 손의 기억하고 있는 손때 묻은 옛 친구와의 재회가 더 깊은 반가움과 위안을 준다. 펜촉에 남은 미세한 마모의 흔적은 그만큼 내가 이 펜과 함께 많은 문장을 건너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래된 펜의 배럴에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자잘한 흠집과 은은한 광택으로 고스란히 묻어 있다. 시장의 가격이 요동치고 세상이 정의하는 가치가 시시각각 변할지라도, 내 손에 익은 도구와 함께하는 기록의 시간은 여전히 고요하고 안온하다. 도구의 가치는 가격표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그 도구를 쥐고 고뇌하며 써 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잉크가 마르기 전, 종이 위에서 반짝이는 글자들을 보며 생각한다. 비록 구하기는 어려워졌고 가격은 올랐을지언정, 만년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느림의 미학’은 여전히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고귀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비싼 펜 자체가 아니라, 그 펜으로 써 내려갈 삶의 문장들이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손때 묻은 익스퍼트 2를 내려놓으며, 요동치는 시장의 소음 대신 내 안의 목소리에 더 집중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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