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茶)를 좋아한다. 아니, 꼭 차라고 한정 짓기는 어렵다. 그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격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와인을 머그잔에 따라 마시는 나를 보면, 아마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은 기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잔의 형태가 아니라 목을 타고 넘어가는 생생한 느낌이다. 술을 빚으며 향의 중요성을 말하던 나의 이율배반은, 아마도 게으름 탓일 것이다.
차라고 다를 것도 없다.
나의 차에 대한 취향은 환경을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 말차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로 끊었다. 당시 국내에서 소비되던 대부분의 말차가 일본산이었기 때문이다. 대신 나에겐 오래전부터 이어온 다른 차들이 있었다. 보이차는 2000년대 초, 선배를 따라 들렀던 인사동 골동점에서 사장님께 소개받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가끔 들르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대익차에서 7542를 특별할인가로 한 건씩 판매한 적이 있다. 그때 덜컥 구입하는 나를 보며 아내는 “다음에 또 할 텐데 왜 한꺼번에 많이 사냐”며 타박했다. 하지만 대익차는 그 이후로 더이상 할인 행사를 하지 않았다. 그때 들인 녀석들이 벌써 6~7년 세월의 나이를 먹었다. 전부터 한해 한 통씩 구매해 식구들과 마시고 때론 선물로 나누었는데 여전히 넉넉하다. 평생을 마셔도 다 못 마실 양이다. 그럼에도 여행 중에는 습관처럼 차를 구경한다. 녹차, 백차, 황차, 우롱차, 철관음 등 종류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러다 집에 돌아와 보면 트렁크 구석에는 어느새 한 봉지씩 숨어 있곤 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중국차 음용법은 주로 광둥성과 차오저우(潮州)에서 발달한 방식이다. 지역의 특산인 우롱차를 즐기기 위한 중국인 특유의 집요함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그들은 자사호와 개완, 차판을 갖추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나 역시 손님이 오면 자사호와 개완을 꺼낸다. 차판 위에서 물을 붓고 따르고 헹구는 그 작은 의식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백에 찻잎을 넣고 2L 보온병에 담는다. 끓는 물을 조금 부어 따라내는 세차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귀찮아서 그마저도 건너뛴다. 보온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머그잔에 따라 마신다. 한참 마시다 찻물이 진해지면 다시 물을 끓여 보충한다. 그렇게 한나절에 한 통을 비운다. 내게 차는 격식이 아니라 음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중국 북부의 실용적인 음차 문화와 맥이 닿아 있다. 섬세한 맛에 매몰되기보다 일상에서 편하게 마시는 것을 즐기던 태도다. 과거 운송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 이동 중에 향이 날아가거나 변질되는 것을 고려해 보관이 쉽고 향이 강한 자스민차를 선호하게 된 배경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다인(茶人)’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저 마시는 것을 즐기는 사람일 뿐이다. 형식의 굴레를 벗어던질 때, 찻물은 비로소 몸과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