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바우

by 누룩취

나는 강아지를 좋아한다. 길을 걷다 꼬리를 흔드는 녀석들을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춘다. 비록 지금은 거주 환경과 아내의 반대로 곁에 두지 못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낡은 나무 개집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백구, 케리, 콩이.

그 이름들 사이에서 가장 아프고도 따뜻하게 새겨진 녀석은 단연 ‘바우’다.

바우는 어미 백구가 노산 끝에 단 한 마리 남긴 귀한 새끼였다. 이름은 투박했으나 바우는 암컷이었다. 덩치는 그리 크지 않았어도 영리함은 비길 데가 없었다. 특히 당시 우리 집 ‘변소’라 불리던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릴 때면, 바우는 단순한 짐승 이상의 존재였다. 나무 발판 아래로 깊은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던 그곳은 어린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천장에 매달린 10촉짜리 백열등은 겨우 사물의 형체만 구분할 정도로 침침했고, 화장지 대신 한 켠에 못으로 꿰어놓은 신문지가 전부였던 시절이다. 신문지 한 장을 뜯어 손바닥으로 한참을 비벼 뒤처리를 하던 그 까칠하고 고독한 시간, 나를 지켜준 것은 문턱에 턱을 괴고 엎드린 바우의 숨소리였다. 녀석은 내가 일을 마칠 때까지 단 한 번도 나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바우는 여러 번 어미가 되었다. 새끼를 낳고 기르다 저마다의 주인에게 분양 보내던 날, 텅 빈 마루밑을 훑어보다 먼 곳을 응시하던 바우의 쓸쓸한 눈망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런 바우에게 기묘한 인연이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술기운 오른 아버지가 눈도 못 뜬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온 날이었다. 바우는 짠하다는 이유로 개집 대신 마루 밑을 거처로 쓰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 품속에 새끼 고양이를 밀어 넣어주셨고, 바우는 품을 내주었다.

우리는 고양이에게 딱히 이름을 붙여주지 않고 그저 ‘고양이’라 불렀다. 고양이도 우리에게 곁을 내어 주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할머니만이 가끔 “나비야” 하고 부르실 뿐이었다. 고양이는 바우의 젖을 먹으며 자랐고, 자라서 밖으로 나도는 시간이 늘어서도 잠잘 때만큼은 꼭 바우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양이가 담장 위를 위태롭게 걷고 있으면 바우는 담장 밑을 따라 걸으며 안절부절못하며 낑낑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할머니는 “떨어지면 다칠까 봐 걱정돼서 저런다”하셨다.


비극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쥐를 잡겠다고, 쥐약을 이곳 저곳 놓던 시절. 어디서 쥐약을 먹었는지, 아니면 쥐약을 먹은 쥐를 먹었는지 고양이는 뒷집 텃밭에서 차갑게 식은 채 발견되었다. 어머니는 바우 모르게 고양이를 산에 묻어주셨고, 바우는 한동안 고양이가 좋아하던 곳들을 기웃거리며 찾았다. 종이 달랐던 두 짐승 사이에도 인간 못지않은 애정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을 보이시며 녀석을 한참 동안 쓰다듬으셨던 적도 있었다.

고양이가 떠난 지 일 년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바우가 사라졌다. 온 가족이 동네를 이 잡듯 뒤지며 이름을 불렀으나 대답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녀석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개장수가 잡아갔다 하고, 누군가는 몹쓸 놈들이 험한 짓을 했다고도 했다. 그렇게 소문만 무성하던 어느 날, 아버지는 마당 한편의 개집을 치우셨다.

개집을 없애실 때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표정도 없으셨다. 묵묵히 못을 뽑고 판재를 걷어내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어린 나는 차라리 소리 내어 우는 것보다 그 적막이 더 마음 아팠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구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지만, 그것은 바우를 향한 우리 가족만의 추모였다. 어린 나조차도 다른 강아지를 들인다면 그것은 바우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라 생각할 정도였으니, 어른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황금빛 털이 유난히 곱고 쌍꺼풀진 눈매가 예뻤던 바우. 지금도 바람이 차가워지는 밤이면 마음속 마루 밑을 들여다본다. 그곳엔 여전히 고양이 한 마리를 품에 안은 바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