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어도 기성세대가 느끼지 못하는 만족감을 찾을 수 있었다. 에브리타임 룩앳유(2019)는 자신들 나이보다도 오래된 캠핑카를 타고 추억으로 남을 로드트립을 함께하는 27살 동갑인 얀과 욜의 이야기다. 원제인 '303'은 90년 전후에 제작된 메르세데스 벤츠사의 캠핑카의 모델명인데 우리나라에는 위탁방식으로 생산된 적이 있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한 벤츠 303은 당시의 클래식한 감성을 간직한 채 잘 관리받은 빈티지카의 멋스러움을 바탕으로 로드트립의 로맨틱한 공간이 된다.
올곧은 청년인 얀이 빈티지 캠핑카를 특별히 선호해서 히치하이킹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얀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사정 때문에 육상 교통편 중에서행선지가 쾰른인 차량들을 이리저리 찾아다녔고 결국 혼자 타기엔 너무 휑한 벤츠 303의 운전자 욜을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얀이 욜의 벤츠 303을 얻어 타기까지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목적지까지 빠르고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는 항공편은 얀에게 너무나 비쌌고, 카풀 사이트에서 운 좋게 연결되었던 교통편은 연락도 없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상거래에서 노쇼가 이슈화됐던 것처럼 히치하이커 얀에게도 쾰른에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으니 아예 여행 계획을 전면 취소했어야 할 상황이었다.
이렇게 카풀이나 라이드 셰어링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경제적인 사정을 가진승객들이 타인의 차편을 공유하는 행위로 시작됐다. 그렇지만 자신의 재산인 차를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에게 선뜻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은 우리나라 같은 문화권에서는 조금은 꺼려지는 교통문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같은 회사나 공동체 소속으로 상호 신분이 확실하고 이동경로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그룹을 구성하고 차편을 공유하는 정도가 가장 일반화된 카풀, 라이드 셰어링의 형태였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얀에게 있어 카풀은 비용이 저렴한 아니 어쩌면 공짜로 타인의 차량을 공유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카풀 사이트를 통해 얀을 태워주기로 했던 차주도 카풀을 제공한 대가를 받는다거나 하는 계약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면 무책임하게 노쇼로 약속을 깼다고 해도 손해배상의 의무같은 것은없었다. 국내 정착된 기존의 카풀 문화도 역시 얀과 같은 탑승자가 성의 표시로 소정의 사례를 해줄 수는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금전 거래를 전제로 한 형태의 상업적 계약형태의 서비스는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카풀은 수익성 여부와 관계없이사람들의 관계에 좌우되어 왔다.
그런데 공유경제의 대표사례로 꼽히는 차량공유 서비스가 차량 구매를 위한 초기투자비와 인건비, 유지보수를 위한 운영비 등을 서비스의 원가로 포함시켜 만들어진 사업모델을 기반으로 요금을 청구하기 시작했다. 원래 영화에서처럼 자발적인 의지를 가진 차주가 카풀 사이트를 통해 연결된 승객에게 호의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해왔지만, 이제는 차주가 되었든 카풀 사이트 플랫폼 사업자가 되었든 일정량의 수입을 요구하는 영리 사업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시도로 카풀을 제공하려는 차주는 더욱 많아지게 되었지만, 카풀을 제공받는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서비스 요금을 지불해야만 하는 입장으로 바뀌게 됐다.
카풀도 '서비스로서의 이동수단'(Mobility-as-a-Service)의 사업모델 중 하나가 되어 우버나 그랩같은 유명한 회사들이 세계적으로 주도하는 분야가 되었다. 이제는 명실상부한 시장 리더로 자리매김한 우버는 본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 기반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여 현재 한국을 포함해 약 60~70여 개국까지 진출했다. 폭넓은 고객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지역에서 운전기사들과 차량을 모집해 우버 사업자로 영업활동을 시키고 탑승자 또는 사용자들에게 요금을 받아 우버 본사가 받는 수수료를 제외해야 우버 기사가 받는 수입으로 찍힌다.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카풀 사례에서는 더 이상 운전자 욜과 탑승객인 얀을 네트워킹하는데만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버와 같은 플랫폼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기존에 무료로 라이드 셰어링을 이용할 수 있었던 카풀의 개념이 송두리째 바뀐 것을 아니기 때문에 비용에 민감한 승객들을 위한 요금정책이나 전략이 중요해졌다. 만약 얀과 같은 탑승객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요구했다면 처음부터 카풀이 아닌 히치하이킹으로 교통편을 구하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버에게는 등급별 사업모델이 있어 전반적 요금정책을 논하기 어렵지만 가장 일반적인 우버택시의 경우는기존의 택시보다는 싸고 대중교통보다는 비싼 요금정책을 책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 기반이 예상만큼 늘지 않자 초기 프로모션 활동의 일환으로 할인쿠폰 등을 제공해 승객들은 파격적인 요금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안정적인 수입을 기대하고 우버에 뛰어든 사업자들은 이렇게 할인된 요금으로 인해 실질소득은 반토막이 되고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수입을 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우버 측에 대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이제 차량공유업계 거대 사업자로 성장한 우버가 현시점에서 근본적인 내부 문제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버 운전자에 대한 처우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우버 본사와 우버 운전자 사이의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첨단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우버와 운전자 모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경영기법 고려되어야 했다. 차주 입장에서도 만족할 수 없는 사업모델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서 우버는 우버 운전자들의 수입증진을 위해 기본적인 사업모델의 서비스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차량 외부 광고판 같은 제3의 수입원을 금지하지 않았다. 특히 우버 택시와 공생하는 사업적 관계를 만든 파이어플라이(Firefly) 같은 경우는 상부의 택시 표지 대신에 디지털 사이니지 광고를 설치하고 광고주를 섭외해서 우버 운전자들과 광고수익을 공유한다. 우버 운전자들에게 부족한 라이드 셰어링 수입에 광고 수입이 추가로 더해지게 되는 것이다. 우버는 플랫폼 사업자로 자신의 브랜드 정체성을 위해 우버 운전자 차량을 외부 광고사업에 활용하는 시도 자체를 통제할 수도 있었지만 서비스 이용 수요와 수익모델에 부정적 영향이 없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우버 운전자의 부가 수입을 통제할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비단 우버만의 고민이 아닌 라이드 셰어링 업계의 본질적인 딜레마로부터 비롯한 이러한 문제는 차량공유가 그 본질을 극복하고 수익성 있는 사업모델이 되기 위해 풀어야할 숙제인 듯하다. 에브리타임 룩앳유에서 언급되었던 카풀 사이트 브랜드나 상호는 알 수 없지만 초기의 차량공유 중개 플랫폼들이 우버와 같은 방식으로운전자를 모집하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운전자의 '공급량'이 부족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전을 업으로 삼는 개인사업자들을 연계시켰는데, 이제는 '수요' 측면에서 사용자 증대를 위해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다 보니 다시 '공급' 측면의 수입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고객의 이용 수요와 운전자(차량)의 공급이 균형을 이룰 때까지 비용을 최대한 효율화하는 것이 우버 등이 추구하는 목표가 되고 있다.
또한 파괴적 혁신에 해당하는 사업모델은 아니지만 우버 서비스 같은 라이드 셰어링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아 기존 이해관계자들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히, 국내만 하더라도 최근 한국의 우버를 표방한 라이드 셰어링 업체들이 서울시와 갈등을 빚다가 최근 택시조합의 요구사항이 전반적으로 수용되는 듯 하지만 향후에도 우버와 그랩 등 국내외 유사 서비스가 도입되어 시장경쟁이 과열되면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많다. 운전자와 라이드 셰어링 기업 간의 내홍과 더불어, 기존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은 라이드 셰어링 업체들이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가 되고 있다.
흔히들 차량공유 서비스를 공유경제의 큰 축으로 여기며 기존 시장경제 비효율성을 보완할 대단한 무언가로 보지만 에브리타임 룩앳유의 욜과 얀이 벤츠 303을 타고서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새로운 경제구조를 이끄는 근본적인 힘 자체가 지속적 변화를 통해 유통되는 재화의 양을 늘려가는 - 즉, 경제성장 - 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경제규모보다 축소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결국 차량공유나 공유경제도 도시화나 초핵가족화 같은 사회변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관성에 따라 경제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승객이 지불하게 되는 총액은 늘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것은 섣부른 예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