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업계에서는 얼마전부터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같은 자율주행 기술을 빼면 할 이야기가 부족하다. Volvo 같은 기존 자동차 브랜드들이 얼마나 완벽한 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줄어든 사이에 시장은 테슬라가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고 인식하기 시작했고, 자율주행 기능에 있어서는 자동차 브랜드 대부분이 테슬라를 뒤쫓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테슬라의 오토파일럿 기능의 오류로 인한 사건, 사고 기사가 오히려 테슬라의 기술력홍보에 일조하는 듯한 구도가 되었다.
자율주행 관련 소식에서 테슬라의 파급력을 인정이라도 하는 듯, '19년초 라스베가스 CES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러시아 '프로모봇'의 자율주행 휴머노이드가 역시나 자율주행중이던 모델S와 충돌해 머리와 팔 부분이 심하게 파손되고 작동이 불가해 전시를 못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러시아 프로모봇이 자율주행 휴머노이드를 알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추측도 많았다.그도 그럴 것이 테슬라와의 라스베가스추돌로 인한 파손 이전에도 프로모봇이 만든 휴머노이드가 차도에서 방전되어 기사화된 사례가 '16년에 있었는데, 어찌됐든 개발자가 실수로 열어둔 실험실 문을 통해 탈출해 거리에서 방전되었다는 에피소드는 '16년 당시에도 세간의 관심을 끌만한 뉴스였다.
러시아 프로모봇의 자율주행 로봇
그렇지만 역사상 최초로 자율주행 차량이 휴머노이드를 치고 간 라스베가스 추돌사고는 미래도시를 묘사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건이라 더욱 신기했고 관심있게 보였던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를 다뤘던 영화 '아이로봇'에는 테슬라 모델S의 추돌사고를 본뜬듯한 상황이 그려지는데 바로 윌스미스가 생각에 잠긴 채 주행중이던 자율주행 승용차에 살기어린 휴머노이드들이 하나둘씩 뛰어올라 공격을 하는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자율주행 승용차로아우디의 RSQ가 등장하는데개인적으로 아우디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제대로 어필했던 것 같았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 특정 브랜드의 차량이 노출될 때는 컨텐츠 제작에 투자한 금액에 따라 노출빈도나 스토리와 연관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아우디가 얼마나 큰 돈을 썼는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업계에서는 자신들의 브랜드 미래지향성을 할리우드 영화계를 통해 알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실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건 휴머노이드를 의심하는 형사로 영화에 등장하는 윌스미스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인공지능은 불신했지만 자율주행차의 인공지능은 어느 정도 신뢰하는 편이었던 거 같다. 거대한 휴머노이드 운반용 트레일러가 자신의 차를 막아서기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은 상태로 생각에 잠겨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미래사회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의 주행이 가능하다면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이 기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어야 했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지금도 위험을 무릎쓰고 비슷한 시도를 하는 몇몇 용감한 운전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작금의 자율주행 수준이 레벨 2 수준을 간신히 벗어났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굉장히 위험천만한 행동인 듯 하다.(사고사례 참조)
주요 자율주행차 사고 (중앙일보 '18. 4월 기준)
말이 나온 김에 자율주행 수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미국 SAE(Society of Automotive Engineers)가 자율주행에 대해 5단계로 분류한 정의가 지금은 자율주행 분야의 글로벌 표준이 되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오토파일럿 기능이 탑재된 테슬라 전기차가 기존 자동차 브랜드들에 적지 않은 파장을 준 이후 자동차 업계의 자율수행 수준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평준화된 듯 하다. 센서를 통한 거리 감지로 앞차와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스마트 크루즈(순항제어와 자동제동) 기능이 제공되는 레벨 1 수준의 자율주행은 오래 전부터 편의기능의 일부로 정착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레벨 2에서는 주차된 차량들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서도 조향장치를 움직여 가며 공간을 찾아 차량을 이동시켜 주는 주차 보조나 차량 흐름이 좋은 고속도로 등의 차선을 인식해 주행방향을 조정하는 차선 유지 기능 등이 제공되고 있는 추세다.
SAE의 자율주행에 대한 5단계 정의
SAE는 현재 제조사 간에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는 레벨 3부터 자동화된(Automated) 주행이라고 분류하고 있는데 운전자가 진정한 편의성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인다. 레벨 3 자율주행이 레벨 2와 구분되는 점은 정체구간에서 운전자 주행의 대체가능성인데 영화에 등장한 윌스미스의 아우디 RSQ가 레벨 3 이상의 자율주행 차량이었다면 교통체증이 심각한 구간에서도 끼어들기 차선변경과 추월을 위한 가감속까지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우디는 상용화를 마친 레벨 3 자율주행 기술을 브랜드 프리미엄 라인인 A8에 적용하였는데 비상상황을 제외하고는 60km/s의 속도로 자율주행이 작동하다가 특정 이벤트가 발생할 경우 10초간의 경고를 통해 운전자의 개입을 유도하고 수동운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감속 및 정지를 한다고 발표했다.
반면 자율주행 분야 선도기업의 프라이드가 있던 볼보는 운전자의 개입을 필요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율주행 3단계 상용화와 효용성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율주행 모드에서 언제든 경고를 통해 운전자 개입을 유도해 수동모드로 전환하는 것이 특징인 3단계 자율주행 모드에서 운전자가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운전대로 돌아와 자동차 제어를 넘겨 받으려면 2분 이상 소요되는 것'이라고 볼보의 CEO 하칸 사무엘손이 지적했다고 한다. 이것은 말하자면, 레벨 3의 자율주행차량이 2분 가량의 수동전환 소요시간동안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안전성에 결함이 있을 밖에 없고 2분 이상 자율주행 모드를 유지하며 이슈없이 주행한다면 자율주행 4단계와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결국 볼보는 자율주행 3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4단계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SAE는 자율주행 4단계의 주요 특징으로 운전자가 내린 채 주차가 가능한 발레파킹이라고 정의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자율주행을 통해 주차를 하고나면, 더 이상 '운전자'로 부르는 것이 잘못된 표현이긴 하지만, 운전자 자신의 차량이 위치한 주차면이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을테니 운전자 위치로 차량을 부를 수 있는 호출기능이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주차장에는 더 이상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최소화•무인화되고 자동화된 차량용 수출입 출하장 느낌의 공간으로 재구성된다. 아이로봇에서는 윌스미스가 아우디 RSQ에 승차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씬이 단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대신 이미 캐노피가 갖춰진 입구에서 바로 차에 오르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배경을 염두한 상상력의 결과같다.
마지막으로 자율주행 5단계는 궁극의 자율주행으로 99%의 운전자보다 안전한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어야 하며 운전자가 직접 개입을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전자동화된 주행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이란 이론적으로 주행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간단해 보이는 표현과는 달리 수만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할 수 있다. 아이로봇 휴머노이드 공격장면에서 윌스미스가 자율주행 모드로 그대로 두었다면 터널에서 전방으로부터 날아오는 휴머노이드들을 그대로 들이받아 가면서 운전자인 윌스미스를 보호했을 수도 있고, 장소가 탁트인 고속도로였다면 운반용 트레일러의 추돌 위험성을 피하기 위하여 도로에서 벗어나 위험을 회피했을 수도 있으며, 또 갓길이 있었다면 차량의속도를 서서히 줄이기 시작해서 정차를 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 터널이었다 하더라도 영화에서의 윌스미스처럼 정면돌파를 하면서 갔을 수도 있지만, 휴머노이드가 근처에도 못오게 이리저리 피해다녔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향후 자율주행 5단계 차량이 도입된다 하더라도 자율주행 차량에 대한 제도적 관리책임을 갖게 될 규제당국이 규정한 경우의 수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나리오 상황에서 자율주행 적정성 평가항목을 만족하는 지를 평가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를 들면 달려드는 휴머노이드를 피해야 하는 시나리오에 대해 차량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규정하면 자율주행 차량을 만드는 아우디는 제조사만의 방식으로 구현해 시험인증을 받게 되고 이렇게 출시된 차량이었다면 윌스미스가 유사한 돌발상황에도 운전대를 잡지 않고 휴머노이드를 떼어내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지구상에 자율주행 5단계 차량을 개발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지만 기존 자동차 업계 및 신생 전기차 브랜드들은 너나없이 경쟁력있는 자율주행 기능을 제공하기 위한 연구개발 뿐만 아니라 지금껏 개발된 기능을 상용 모델에 적용하고 소비자에 각인시키기 위한 노력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벤츠는 인텔리전트 드라이빙,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플러스, 볼보는 파일럿 어시스트, 현대는 스마트 센스, 제네시스는 액티브 세이프티 컨트롤, 혼다는 혼다 센싱 등으로 각자의 자율주행 시스템을 명명하고 과거에는 프리미엄 라인업에만 적용되고 있던 대부분의 기능들을 볼륨 라인업에도 공격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자율주행 분야 생태계를 보자면 차량 제조사 주도적이라기 보다는 ICT 분야에 선두를 뺐긴 형세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잘 알려진 것처럼 자율주행의 메가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기업은 다름이 아닌 미국의 구글이며 자체개발한 웨이모(Waymo)를 통해 경쟁사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자율주행의 시험대인 캘리포니아에서는 매년 자율주행 통계를 집계해 공개하는데 웨이모는 자율주행 기능을 시험중인 48개 업체 중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고, 예상치 못했던 돌발상황으로 인해 자율주행이 중단된 건수도 113건으로 자율주행 테스트 시간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또한 소프트웨어 기업인 구글이 자율주행 기술을 B2B 비즈니스로 육성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디트로이트에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설립에도 돌입해 22년까지 2만대 공급계획을 발표했다.
만약 웨이모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율주행 기능을 개선해 나간다면 아이로봇의 배경인 2035년 이전에 자율주행 5단계를 가장 먼저 완성한 선도기업이 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아이로봇 속의 첨단 자동차 시장은 현재의 글로벌 차량 제조사들이 아닌 구글이 이미 장악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구글이 공개한 웨이모는 애플이나 테슬라같이 디자인이 수려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아이로봇에 웨이모가 등장해 센세이션을 주기는 어려울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동차 산업에서 자율주행이라는 새로운 영역은 기존의 글로벌 차량 제조사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며 앞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자율주행 영역이 핵심경쟁력으로 자리잡는다면 주도권은 구글과 같은 소프트웨어에 강점을 가진 업체들에게 크건작건 이양될 것이기 때문에 산업생태계의 변동이 생기게 될 것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시장은 이미 다임러, 폭스바겐, BMW, GM, 현대차그룹 등으로 구분된 기존 생태계에서 구글, 모빌아이, 엔비디아 등으로 구분된 새로운 생태계로의 재편이 진행중인지도 모르겠다.
사용자 측면에서도 이동중 운전자의 편의성을 대폭 혁신하거나 혹은 운전자의 주의가 전혀 필요치 않을 자율주행 기능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는 호의적 입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기술적 불완전성과 법제도적 및 사회적 기반 미확보에 대해 우려하기도 한다. 대체로 신기술에 대한 수용도가 월등히 높은 얼리어댑터 층의 자율주행 기능에 대한 실험정신과 로열티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율주행의 불확실성과 위험성에 대한 우려를 극명하게 압도하는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승용 B2C 고객층에 있어 자율주행의 선호도는 현재 기대반 우려반인 듯한 반면, 직업 운전자를 고용하거나 용역금을 지불해야 하는 상용부문의 B2B 고객층에 있어 운전자 공수를 줄여줄 수 있는 자율주행 기능을 고대하고 있는 듯 하며, 그렇기 때문에 향후 자율주행 기능이 기술적으로 사회적으로 검증되는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B2B 상용부문에 있어 자율주행 기능이 다각도로 도입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만으로 자연스럽게 확산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왜냐하면 제 아무리 첨단기술이 적용된 자율주행 차량이라 하더라도 돌발상황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여전히 인류가 판단해야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 있어 세계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준 역시 솔루션을 가진 업체가 제시할 것이다. 아이로봇의 윌스미스가 휴머노이드의 인공지능을 불신할 수 밖에 없었던 사고사례처럼 휴머노이드의 구조 우선순위가 조금만 바뀌었어도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던 여자 아이를 먼저 구할 수 있던 상황에서 자율주행 차량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 앞으로 지켜보아야할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