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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현 Mar 07. 2022

가구를 내 공간에 들인다는 것

지내왔던 시간이 깃들다

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짜임새 있는 아파트 공간 활용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흔들의자가 하나 있다. 2~3년 전부터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벼운 의논이 부부 사이에 오갔지만 아직까지 다용도실에 놓여 꿋꿋이 버티고 있다. 사이즈가 비교적 큰 편의 가구들은 마음대로 버리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관리사무소에 등록을 해야 하고, 아니면 구청이나 지자체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의자가 완벽한 애물단지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 것 같다.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는 게 아닌데 특히나 햇살이 좋다거나 날이 선선하면 세상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는 자리가 되곤 한다. 게다가 고급 브랜드는 아니지만, - 이사 오기 이전에 IKEA에서 구매 – 너무나 편안한 그 의자에는 부부 사이에 서로 앉으려고 경쟁을 했던 추억도 서려 있다.


그렇지만 다용도실 절반의 공간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흔들의자를 버리면 언제든 색다른 공간으로 꾸밀 수 있을 것 같다. 서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패브릭 소재의 흔들의자는 넓지 않은 다용도실 그 어떤 테마로도 꾸밀 수 없게 하는 존재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개인 성향을 내려놓고 이사를 간다면 어딘가 어울리는 곳이 있겠지라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다.


단순히 가구 한 점을 놓고도 이러한데 코시국에 외출이 줄어든 요즘 인테리어 꾸미기 붐이 일어 방 전체를 또는 집 전체를 취향에 맞춰 스타일링하는 추세다. 라이프스타일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경수진 씨가 선택한 가구들은 선으로 구성된 심플한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에 맞춰진 ‘경수진 인테리어’로 유명세를 타면서 요즘 상황에 딱 맞춘 트렌드가 됐다. 집에 흔들의자를 들일 당시 대세 트렌드였던 북유럽 스타일은 몇 년 전부터 구시대 유행이 됐다.


미드 센추리 모던 인테리어


젠 스타일, 오리엔탈 스타일 등 과거에도 특정 인테리어가 유행처럼 번져갔던 것을 감안하면 그리 놀라운 현상도 아닌 듯하다. 특정 인테리어가 유행하면 그에 맞춘 가구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가구가 인테리어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중을 넓게 보면 80~90%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집안의 인테리어가 바뀌면 기껏 들여놓은 가구들이 통으로 바뀌게 된다.


특정 트렌드가 유행할 때마다 인테리어를 바꾸면서 집안의 가구들을 새롭게 들이는 사람은 없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가구를 한번 들이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보다 심사숙고하는 편이다. 가구가 집의 크기에 맞는지 사이즈를 고려하고, 어린아이를 고려해 모서리가 날카롭지 않은 지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다치지나 않을지도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에 더해 가장 가까운 곳에 살을 맞대고 많은 시간을 보낼 물건이기에 질리지 않을지 튼튼할지 등도 꼼꼼히 살핀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든 깊은 고민을 하고서 들인 가구는 웬만한 결함이 아니라면 쉽게 바꾸기 어렵다.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가구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 가구의 브랜드와 가격을 떠나– 가구 한 점에 쏟았던 노력과 시간이 충분한 가치를 줄 수 있길 바라지 않았을까? 시장에 가구를 공급하면서 더 많이 팔리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해도 넓게 보면 마찬가지다.


지금은 연락이 뜸하지만 수제가구를 만든다던 대학 선배가 있었다. 1인 공방이라 사가려는 사람이 많으면 수요에 맞출 수가 없었다. 그 가구 공방에는 무심할 정도로 심플한 디자인에 그림으로 포인트를 주는 그 선배만의 스타일이 배어 있는 가구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선배의 가구가 도화지라면, 가구 스스로가 자신을 소유하는 이의 ‘경험’ 자신의 여백채우도록 내어줄 것 같았다.


다용도실의 흔들의자도 창고에 놓인 그냥 흔들의자가 아닌 5년간의 경험이 깃든 흔들의자가 되었다.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버려지지 않을 것 같다. 혹자는 가구도 바꿔서 요즘 트렌드에 맞는 인테리어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할 수 있겠지만, 가구에 맞춰져 있던 소소한 라이프스타일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가구는 인간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왔다.


가구가 오랜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경험이 반영된 산물이라는 의미로 공감이 가는 문학적 표현이다. 시간이 흐르며 그렇게 조금씩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가구는 변해왔다. 이것이 역사의 흐림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나온 표현이라면, 미시적 관점에서 새로운 가구가 만들어지면 소유한 이들과의 경험들이 공유되고 쌓여간다는 의미로 문장을 아래처럼 바꿔보면 어떨까?


오랜 시간, 가구는 인간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닮아 간다.


결국 난 오래된 흔들의자를 버릴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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