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오랜 시간을 견뎌 왔던 껍질을 밀어내며 꽃술이 몸을 곧게 뻗는다.
그리고는 크게 한숨을 쉰다.
'하아아~'
그렇게 꽃가루는 저 멀리 새로운 세상으로 퍼져간다.
올림픽 개막을 지척에 둔 선수촌의 긴장감은 '엘리트'와 '체육'을 표방하는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들로 인해 자조 섞인 적막감이라기보다는 성적과 순위가 허용하는 자기 과시가 표출되는 아슬아슬함이 가득했다.
이른 봄이면 언제나 유난스러운 알러지를 걱정해야 하는 H에게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는 금년초 몇 주간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낮이면 쉴 새 없이 나오는 재채기와 감각기관 속의 이물감으로 인해 정해진 훈련시간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이고 동료 선수들의 걱정과 훈계를 듣기가 일수였다. 정도가 지나치면 적성에는 맞지 않는 선수생활 중단을 종용받기도 했다.
그랬다. 사격이라는 종목에는 최상의 컨디션에 간헐적으로 나오는 신기록보다는 기복이 없는 안정적인 레코드가 선수 경력에 생명력을 더하는 만큼 선배나 코치로부터 그런 소리를 들어도 당연했다. 하지만, H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계속해왔고, 앞으로도 운동 외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아.. 망할 놈의 비염. 한해도 거르지를 않는구나!'
올해는 그냥 넘어가려나 했는데 지나친 기대였나보다. 자조 섞인 푸념이 흘러나왔다. 집중력이 떨어져 하루 연습을 망쳐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숙소에 도착했다. 그것도 이미 첫인상이 독특하다고 느꼈던 메이트가 2인실을 제방처럼 차지하고 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