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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USINA May 06. 2023

혼자서 처음, 시코쿠 (0): 결심

뜻하지 않았던 6년 차 직장인

 2017년 2월, 나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29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누구나 겪는 힘들고 아주 피곤한 그렇지만 스스로는 독보적으로 힘들었다고 생각하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도망치듯이 취업을 했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 취업으로 한 한 달 정도 쉬다가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적당히 1-2년 일하다가 박사과정 유학을 떠날 계획이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나는 어느덧 6년 차 연구원이 되어 있었다.


 처음 여행 계획은 캐나다에 있는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이었다. 23년도 3월에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려던 친구는 사정으로 인해 귀국 일정이 취소되었고 차라리 내가 놀러 가볼까라는 생각이 시작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사회초년생 시절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개인적인 문제로 마음 시끄러운 나날을 보내던 차였다. 제대로 쉬고 싶었는데 어떻게 쉬는 게 제대로 쉬는 건지 모르겠던 차였다. 혼자 여행을 떠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용카드와 체크카드 모두 스카이패스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카드를 쓰는 터라 미국 유학을 가려고 모아둔 스카이패스 마일리지는 어느새 미국행 왕복 티켓을 끊고도 남는 수준이 되어있던 참이었다.


가족 합산 따윈 안 한 나의 스카이패스 마일리지. 2023년 5월 1일 기준.


 캐나다로 여행을 가면 비행기표와 숙박비는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계획을 짜보았다. 그런데 친구의 집은 캐나다 BC주의 주도인 빅토리아로 밴쿠버 아일랜드 남쪽에 위치하여 빅토리아 아일랜드라고도 불리는 곳이었다. 밴쿠버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든 페리든 리무진 버스든 뭔가를 갈아타고 들어가야 했다. 입도하기까지는 뭔가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데 그래도 친구의 집이 다운타운이라 교통편은 나쁘지 않은 편인 것 같았다. 시차 적응 기간을 고려해서 여행 기간은 최소 2-3주 정도는 잡아야 힐링과 관광이 가능할 것 같았다.


구글 맵 설명에 따르면 밴쿠버 아일랜드에서 흑곰과 고래를 볼 수 있다!!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명소와 먹을거리 등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운타운의 주요 명소 몇 개를 제외하고는 whale watching과 hiking 뿐이었다. 고래를 유람선을 타고 보고 경비행기를 타고 보고 보트를 타고 보고 다운타운 근처 선착장에서 보고 옆에 섬 가서 보고 반대 섬 가서 보고… 하이킹도 똑같은 맥락이었다. 중간에 친구랑 시애틀에 놀러 갈 계획도 잡아봤는데 페리 시간대와 숙소 여건이 좋지 않았다. 숙소는 지불 비용이 높아질수록 여건은 나아지지만 면허도 없고 운전도 못 하는 나에게 페리는 필수불가결한 교통수단이었다. 게다가 운전을 못 하는 나에겐 시애틀 뿐 아니라 밴쿠버 아일랜드와 밴쿠버의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좌) 구글 맵에 검색한 관광 명소는 공원 뿐이다. (우) 아래에는 sunset whale watching도 있다.


 여행에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따져보니 최소 2-3주에 3-400만 원 이상이었다. 친구 집에서 최소 2-3주 간이나 신세를 지며 다운타운과 공원이랑 바닷가 산책만 다닐 순 없었다. 밴쿠버와 시애틀의 호텔을 검색하다 문득 일본의 호텔을 검색해 봤다. 비즈니스호텔 1박에 4-5만 원대로 2-3주 숙박을 해도 80-100만 원 선이다. 비행기 항공권을 보너스 마일리지로 구입해도 유류할증료나 공항이용료 등을 내야 하고 친구한테 나름의 사례도 해야 했다. 일본 여행에 드는 비행기 값이랑 숙박비를 합치면 비슷할 것 같았다. 일본 여행은 친구에게 미안한 내 마음의 부담감을 덜 수 있기에 며칠 동안 계속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일본 여행으로 마음을 굳혔다.


 일본의 주요 대도시와 명소는 다녀온지라 막상 어딜 갈까 고민이 됐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항공권으로 갈 수 있는 곳 중 조금 관광지로 덜 유명한 곳은 나고야인데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나고야 근처에서 일한 적이 있는 선배 오빠에게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언뜻 기억에 이 오빠는 나고야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길 자주 했었는데 왠지 볼 게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오빠에게 물어보니 2주간 있을만한 곳은 못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 주변 도시를 돌아볼까 해서 나고야에 대해 검색해 보니 우리나라의 ‘대전’ 정도의 노잼 도시였다. 바로 제꼈다.


나고야의 최고급 리조트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아이유-이종석 열애설이 날 당시 일본 반응. 대전에도 대전 근교인 세종에도 볼 건 없다.


 오타쿠 후배에게 또 조언을 구했다. 자기라면 오사카 근교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오사카 근교 여행을 검색해 보다가 도쿠시마에 페리를 타고 가는 블로그 포스팅을 발견했다. ‘가볼 만한데?’라는 생각과 함께 평생에 갈 일 없을 것 같던 시코쿠에 대해 검색해 보았다. 2-3주 간의 넉넉한 시간은 시코쿠에 있는 4개 현을 돌아보기에는 얼추 괜찮을 것 같았다. 불교의 성지로 순례자길도 있고 산도 많아서 등산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막 등산에 빠진 나는 시코쿠에 가기로 결심했다. 2주가 넘는 긴 휴가 동안 시코쿠 여행을 가는 나를 이해 못 하는 것 같았던 오타쿠 후배는 곧 시코쿠 여행을 간다고 한다.


 연고 없는 곳을 혼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가족들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냥 나는 혼자 가기로 했다. 또 우울할 것 같았던 연말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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