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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석 Aug 17. 2021

인어공주와 마법 거울

브런치X저작권위원회

푸른 이의 마녀


육지에서 수평선을 넘어가면 파도는 잠잠해지고 고요함으로 가득해집니다.

넓고 푸른 바다는 맑은 하늘과 어우러져 서로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깊은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인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은 바닷속 아주 깊은 곳까지 소용돌이를 만들어 휘젓는 일을 했습니다. 큰 삼

지창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지 않으면 물이 흐려져서 멀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왕

은 바쁘게 일했습니다.

왕에게는 왕비가 없었습니다. 외동딸인 인어공주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연세가 많은 왕의 어머니가 살림을 맡아했습니다.

할머니는 인어공주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면서 항상 곁

에 있었습니다. 교육열이 높아 살아가며 알아야 할 지식을 알려주고 온 세상의 신

비한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신기한 이야기 중 인어공주가 제일 재미있는 것은 바다 위 세상이었어요.

“물 밖의 세상은 어떤 가요? 물 밖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죠?”

인어공주는 푸른 눈을 깜빡이며 물고기 꼬리를 흔들면서 호기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바다는 모든 물고기의 고향이지만 물 위의 인간들은 여러 땅으로 갈라져서 원수

같이 싸우는 어리석은 자들이지.”

“물 위의 세상은 뭐라고 불러요?”

“우리가 사는 곳은 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수구라고 부르지만 인간은 둥근 땅 덩

어리, 지구라고 부르지. 바보 같은 생각이야. 물이 땅보다 훨씬 넓고 많은데 이걸

지구라고 부르다니. 이렇게 바닷속이 깊은 줄 알면 그런 이름은 붙이지 않았을

거야.”

할머니는 햇볕이 내리쪼이는 육지를 좋아하지는 않으셨지만 인간 세계를 가르쳐

주었어요.

“내가 처음 물 위로 나간 날은 숲에 불이 나던 날이었지. 해안가 근처 산에 불이

났는데 불이 바닷가까지 내려왔지. 얼마나 무섭던지. 그러고는 비구름이 몰려와서

번개도 치고 천둥이 울리자 불이 꺼졌지. 비가 오지 않았다면 숲은 모두 타버려

을 거야.

그다음 올라갔을 때는 정신없이 구경하다가 빙산에 부딪칠 뻔했지. 커다란 얼

음덩어리 말이야. 항상 주변에 집중하지 않으면 위험한 곳이지. 물 밖은 위험해.”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쁜 것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향기 나는 꽃이나 공중 위를 날아다니는 새와 차가운 샘물은 언제 들어도 새롭

고 신비했어요. 바다에서는 땅에서 물 대신 뜨거운 불덩이가 쏟아져 나와 아주

위험했어요.

“불 나오는 구덩이도 위험하지만 거기에 사는 마녀는 더욱 위험하지. 언제 너를

위험에 빠뜨릴지 몰라. 절대로 근처에 가면 안 된다.”

할머니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외로운 인어공주를 위해 할머니는 여덟 명의 친구들을 용궁으로 불러서 같이 지

냈어요. 인어공주의 친구들에게 멋진 옷도 선물했어요. 물이 차갑거나 외출할 때

걸치는 나가는 비단 베일이지요. 금색, 다홍색, 감색, 노란색, 녹색, 은색, 흰색, 검

은색으로 색색였어요. 모두들 기뻐서 받았지만 검은색을 받은 친구는 마음

에 들지 않은지 울상이 되었어요. 인어공주는 자신의 보라색 베일을 주고 검은

색을 가졌어요.


하천에서 깨어난 물고기가 바다를 돌아 자기가 태어난 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하자 인어공주는 어느새 13살이 되었습니다.

“너도 이제 어린이가 아니구나. 이리 온, 우아하게 화장을 시켜주마.”

할머니는 백합 화관도 달아주고 해초로 된 머리장식도 달아주었습니다.

“아파요!”

“아름답게 보이려면 참아야 한단다.”

“할머니, 불편해요.”

“불편해서 아름답단다. 물 위에서 공주가 되려면 크고 무거운 가발을 써야 하지.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옷도 입어야 하고. 가짜 손톱도 달기도 하지. 일하기 불편

한 것이 아름다운 거니까.”

인어공주는 거추장스러운 장식이 싫었지만 할머니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쁘게 치장한 인어공주가 자주 가는 곳이 있었습니다. 육지의 물건이 침몰해서

쌓여 있는 용궁 밖이었지요. 왕이 만든 소용돌이에는 육지의 신비한 물건이 끌려

왔어요. 집보다 커다란 배에서부터 아주 작고 예쁜 은컵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물

품들이 있었어요.   

그중에서도 새로 끌려온 무역선을 좋아했어요. 배의 앞부분에는 산호보다 흰 빛

깔의 대리석 상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미소년이 미소 지으며 왕관을 쓰고 이름

을 알 수 없는 악기를 들고 있었지요. 지상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

을까요? 보면 볼수록 미소년의 모습은 인어공주의 마음을 끌었습니다.

본적도 없는 사람을 사모하게 된 인어공주는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육지의 세

상은 물속보다 훨씬 넓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인간은 햇볕을 받으며 자라난 맛있는 과일도 먹고 달빛을 받고 피어나는 꽃들 사

이에서 마음껏 뛰어다니고, 수평선 넘어 먼 나라로 항해도 떠날 수 있으니 얼마

나 행복할까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바다 위 세상에 나갈 수 없을까? 할머니와 상의해볼까? 말도 안 된다고 펄펄 뛰

시겠지. 불구덩이 넘어 마녀를 만나볼까. 마녀는 육지로 가는 방법을 알고 있을

거야.”


왕의 생일이 되었어요. 용궁에는 호화로운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인간은 볼 수 없

는 깊은 바다 물고기들까지 참석하였습니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무도회장에서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지요. 인어공주도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모두들 손뼉을 치며 환호성을 지르고 감탄했어요. 그렇지만 인어공주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부를 때도 칭찬을 들어도 물 위의 세상이 궁금해서 참을 수

가 없었습니다.

모두들 무도회에 푹 빠져 있을 때 왕이 먼저 쉬러 자리를 뜨자 인어공주도 살며

시 빠져나왔어요. 친구들도 춤과 음악에 빠져 인어공주가 사라진 줄도 몰랐습니

다.

용궁을 나와 마녀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왕이 만드는 소용돌이 뒤에는 불을 뿜는

구덩이가 있고 그 너머에는 마녀가 살고 있었지요.

왕이 잠이 들어서 물속은 잠잠해지고 마녀의 집에 갈 수 있습니다. 대왕 문어의

거대한 팔이 초록빛 소용돌이 사이로 유유히 헤치고 다녔지만 인어공주는 무서움

을 이겨냈습니다.

불구덩이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방울들이 올라오고 뜨거운 액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인어공주는 씩씩하게 마녀의 집이 있는 해초 사이로 헤

엄처 나갔어요. 점차 해초가 사라지고 평평한 회색 모래 위로 물뱀들이 다녔습니

다.

마녀는 집에서 두꺼비가 만든 반죽으로 고양이와 쥐에게 줄 빵을 굽고 있었습니

다. 방안에는 빵 굽는 냄새가 향긋했습니다.

마녀는 머리가 빨간색이고 이는 푸른색이었습니다. 그래서 푸른 이의  마녀라고

불렀지요. 평소에 마녀는 자신의 일에 간섭하면 언쟁하는 일이 잦았고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곧장 타인에게 저주를 퍼부어 버리는 고약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을 상담하러 찾아오면 친절하게 대했지요.

인어공주가 문을 두드리자 마녀는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어요.

“어서 와라. 수정구슬 속의 모습과 똑 같이 생겼구나.”

“내 얼굴도 알고 있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지. 푸른 눈에 검은 머리 그리고 윤기 흐르는 비늘은 변함

이 없구나.”

“그럼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알겠네.”

“저 문을 열고 온 이유를 모른다면 마녀가 아니지. 방금 구운 빵이 있는데 같이

먹겠니? 시간은 넉넉하니까 천천히 먹으면서 문제를 풀어도 된단다.”

마녀는 향긋한 빵을 내밀었지만 인어공주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가 원하는 게 뭔 지 안다고? 할머니도 모르는데.”

마녀는 입에 빵을 넣고 맛있게 오물거리면서 빙긋 웃었습니다.

“할머니는 잊어버려. 할머니는 거짓말쟁이야. 그냥 잊어버리면 된단다. 너는 바다

위로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지. 간섭받으며 따분한 인생을 살라고 잔소리 듣는

것은 13살이면 끝내 야지.”

“물 위에 가서 왕자를 만났는데 다시 만나고 싶어.”

“나한테까지 거짓말은 필요 없지. 다 알고 있다니까. 대리석 왕자를 보고 반한 거

잖아.”

인어공주는 가볍게 한숨 쉬고 물어보았습니다.

“물 위로 가려면 많이 힘들까?”

마녀는 파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너무나 즐거운지 몸을 흔들며 웃어서

무릎에 앉았던 고양이가 깜짝 놀라 바닥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귀여운 공주마마야. 아무리 어려워도 참을 거잖아. 그 어떤 것도 너의 고집을

이길 수 없어. 중도에 포기할 거면 대왕 문어를 봤을 때나 불구덩이의 유황냄새

를 맡았을 때 돌아갔겠지. 여기 물뱀과 있지도 않을 거고..”

마녀의 주변에는 어느새 아까 보았던 물뱀들이 몰려와서 고양이와 다투고 있었습

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쉽지. 아주 쉽지. 지금 물 위로 올라가면 된단다. 용궁으로 돌아가서 왕이나 할머

니를 만나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지. 그냥 물 위로 올라가서 내가 하란대로

하면 돼. 해가 뜨기 전에 은밀한 해변을 찾아서 몸을 감추고 햇볕에 몸을 말리면

저절로 지느러미가 사라지면서 발이 생길 거야. 주의해. 밤에 일어난 일은 남이

알면 안 되니까. 조용하고 사람이 없는 바닷가를 찾아야 돼.”

“아프겠지?”

“13살이 되면 아프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 텐데. 그리고 다시는

인어가 될 수 없어. 왕과 할머니가 기다리는 안락한 방과는 영원한 작별이지.”

“나의 결심은 변하지 않아.”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네가 결심했다면 한 가지 더 줄게 있지. 세상에 나가서 보

물을 구할 곳을 알려주지. 진기한 보물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려고. 아무도 모르는

신비한 보물창고지.

사과 꽃이 휘날리는 과수원이 있는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세 개의 별이 내려다

보이고 커다란 우물이 나온 단다. 어둡지만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 우

물속으로 들어가서 밑바닥에 다다르면 여러 가지 보물이 있을 거야.

거기서 너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가져오면 도움이 될 거야. 그런데 한 가지 주의

해야 할 것이 있다. 우물 안 마당 끝에 문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있는 물건은

절대로 가져오면 안 된 단다.”

“알았어. 명심할게. 고마워. 그런데 내가 무슨 보답을 해야 하지?”

“보답이라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그런 거는 필요 없어.”

“정말?”

마녀는 파란 이빨을 잇몸까지 드러내고 아주 즐거운 듯 크게 웃으면 말했다.

“너만 행복하면 된단다.”

인어공주는 마녀가 한 말을 혼자 따라 해 보았어요.

너만 행복하면 된단다.”

마녀는 마지막 선물을 주었다.

“잊을 뻔했구나. 육지로 가려면 이름이 필요하지. 내가 예쁜 이름을 골라 두었지.

칼리오페가 어떠니?”

“무슨 뜻이지?

“아름다운 목소리란 뜻이야.”

‘칼리오페’ 여러 번 자기 이름을 불러보자 금방 익숙해졌어요.

“이제는 서둘러. 시간이 많이 지났다. 지금 떠나야 해가 뜨기 전에 해변에 도착할

거야.”

왕과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지만 그대로 떠나기로 했어요. 용궁 방향으로

한번 눈길을 주고는 푸른 바다 위로 향했습니다.

그때 인어공주를 배웅하는 노래가 물결을 따라 울려왔어요. 인어공주가 떠날 줄

눈치채고 따라온 친구들의 목소리였지요.


“모든 것은 돌고 돌고 또 돌아가네.

계절이 변하듯이 모두가 변하고 변해서

하늘 아래 모든 것은 달라지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네.

웃을 때가 있고 울 때가 있네.

모든 것은 돌고 변하고 달라지네.”*1


해가 떠오르기 전에 해안가에 도착한 인어공주는 수풀이 울창한 숲 속에 숨어서

몸이 마르기를 기다렸어요. 지느러미가 밑에서부터 말라 오자 발로 변하면서 칼

로 쑤시는 아픔이 느껴졌어요. 인어공주는 고통을 이겨내며 다리가 생기는 과정

을 기다렸어요.

인어공주는 다리가 생기고 낮이 지나고 해변에 앉아서 지는 해를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처음 보는 석양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나 아름

다운 바다였어요. 공주는 자기가 바다에서 왔다는 것도 잊은 채 해변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어부가 무엇을 열심히 보는지 물었지요

“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글쎄다. 매일 봐서 그런지 잘 모르겠구나.”

“사과 꽃이 휘날리는 나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요?”

“그런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한 가지는 알지. 앞으로만 가면 길은 없어. 원하

는 곳에 갈 수 없지. 길을 잃는 것은 축복이야. 잘못 든 길에서 만난 빛났던 별은

너를 지켜줄 거야. 그런데 맨발이구나. 우선 신발을 사는 게 좋겠다. 맨발로 먼

길을 갈 수는 없으니까.”

어부는 인어공주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물을 손질하기 위해 가던 길로

사라졌습니다.

어부가 알려준 동산에 가자 작은 신발가게가 나왔습니다. 칼리오페는 자신의 발

에 맞는 작은 나막신을 사서 신었습니다. 신발을 신자 멀리 머나먼 길이 보였습

니다. 마음은 불안했지만 행복한 마음이 충만해졌지요. 길은 열리고 여행은 시작

되었습니다.


전쟁, 방귀, 게으름의 나라


여행은 힘이 들었습니다. 길 위에서 쉬고 냇물도 마시면서 가보지 않은 길을 따

라 계속 걸었습니다. 인어공주는 작은 날개를 펴고 너울너울 날아가는 나비를 따

라 갔지요.


처음 도착한 나라는 전쟁 나라였습니다.

대장간에서 머리에 푸른 띠를 두르고 대장장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칼과 창을 만

들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 왕자는 누구시죠?”

대장장이는 놀란 듯이 입을 벌렸다가 노래하듯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나라의 수호자

정복왕의 아들

승리의 여신에게서 태어난 자.

용을 죽인 영웅,

새의 목소리를 듣는 귀인

안 보이는 반지의 주인

타버린 나무의 수호자

산사태를 만드는 신통한 능력의 소유자.

불 위에 올려놓은 쇠 창이 녹는 줄도 모르고 대장장이는 끊임없이 읊어내고 있었습니다.

“전쟁 나라 왕자는 위대하지.”

“용을 죽였다고요? 근데 용이 뭐 죠?”

“커다란 몸집에 눈은 부리부리하고 수염이 길게 달려있고 두꺼운 비늘을 두르고

날카로운 발톱이 있는 짐승이야. 하늘을 날고 입에서는 불을 뿜지. 수염을 만지면

절대로 안 된단다.”

“무서운 짐승이네요.

“잠자고 있는지 나도 보지 못했단다. 너무 겁먹지 마라. 용이 나타나면 왕자님이

한칼에 제압할 테니.”

대장장이는 다시 쇠로 된 커다란 솥을 두들기며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나라의 수호자”

칼리오페는 기겁을 하고 왕자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전쟁 나라를 떠났습니다.


두번째 나라는 방귀 나라였어요.

방귀소리가 크면 클수록 방귀 소리가 크면 클수록 칭찬 받는 나라였어요. 백성들

은 거리에 나와서 큰 소리로 방귀를 끼고 난리 법석이었어요.

거리는 방귀냄새로 가득 차 있었어요. 방귀가 나오면 병에 담아 방귀냄새 파는

가게에 모아 두었습니다.

인어공주는 코를 감싸 쥐고 옆에 사람에게 물어 봤어요.

“여기는 방귀를 몰래 뀌지 않나요?”

“방귀가 무슨 비밀도 아닌데 왜 그래야 되지? 건강한 사람은 방귀를 뀌는 법이란다.”

노란 옷을 입은 남자는 낯선 여자 앞에서 당당히 말했습니다.

노란 옷의 남자는 커다란 방귀를 만들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흥겹게 노래했

어요..


“방구 뀌면 뿡뿡뿡, 다시 뀌면 뽕뽕뽕.

냄새 방구 슉슉슉, 코로 맡고 춤추네.

소리 방구 빵빵빵, 귀로 듣고 춤추네.

아기 방구 엄마방구, 우리 모두 뿡뽕빵”

(방구는 방귀의 사투리)


“가장 큰 방귀를 만들면 왕자가 되지. 궁전 앞에  있는 커다란 병이 보이니? 왕자

가 방귀를 모으는 병이지. 왕자가 되면 궁전에서 일하게 되거든.”

“무슨 일을 하는데요?”

“왕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방귀를 뀌니까 방귀로 아주 향기로운 향수를 만들

어 이웃나라에 팔고 있지.”

매미 소리가 우렁차게 울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인어공주는 방귀 나라를 떠났어

요.


세 번째 나라에는 사람들이 누워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를 듣고 있었어요.


“사서 고생하고 찾아서 일 만드네.

황금을 양말에 넣어라.

쉬고 또 쉬면 행복은 찾아 오네.  

놀고 또 놀면 악마는 오지 않네.

긁어 부스럼 긁어 부스럼.

긁어 부스럼 긁어 부스럼.”


“여기는 무슨 나라지요?”

노래가 끝나자 인어공주는 누워서 하품하는 사람에게 물어보았어요.

“여기는 게으름 천국이야. 한 낮에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지.

너는 어디서 왔니?”

“방귀 나라에서 왔어요.”

“바로 옆에서 왔구나. 여기까지 냄새가 날아오지.”

“냄새가 싫지 않나요?”

“매일 방귀냄새를 맡으면 느끼지 못 하지. 가끔은 특이한 방귀냄새도 있기는 하지만.”

“이 나라는 왕자가 어디 사나요?”

“글쎄다. 아마 없을 거다. 그렇게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니.”

거리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던 사람은 말하기도 귀찮은 듯 눈을 감았습니다.

칼리오페는 이제 떠나려고 작별을 고했어요.

“떠나려면 옆에 나무의 그늘이 나에게 올 때 가려무나. 그늘을 찾아가기 움직이기 너무 귀찮구나.”

나무의 그늘이 누워있는 사람의 코 앞에 있었습니다.

“이제 곧 그늘이 다가 올 거예요.”

부탁을 거절하고 새로운 나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더 가면 어디가 나오지요?”

“잔소리 나라가 나오지.”

잔소리 나라에서는 커다란 폭포 소리가 들려왔어요.

“반대편으로 가면 어디가 나오지요?”

“반대편은 사막이란다. 모래폭풍이 인정사정 없이 불어오지. 어디로 가려는 지 모

르지만 여기 있으면 행복할 거야. 게으름보다 행복한 건 없으니까.”

누워있는 남자는 눈도 뜨지 않고 말했습니다.  고추잠자리가 얼굴에 앉아도 깊이

잠들었습니다.


사과 꽃 날리는 과수원의 별 세 개가 내려다보는 우물


잠자던 칼리오페는 누군가가 깨워서 눈을 떴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자 발 밑에 고양이가 보였어요. 배는 흰색이고 검정과 갈색이 섞인 삼색 고양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깨웠구나. 너는 어디로 가니?”

인어공주가 고양이를 쓰다듬자 기분 좋은 목소리로 개르릉하고 소리를 냈어요.

인어공주는 고양이의 입에 다섯 장 꽃 잎이 달린 하얀 꽃을 보았어요. 손을 뻗어

꽃을 가져오자 고양이는 꼬리를 하늘로 향하고 끝부분은 살짝 말고는 살랑살랑

흔들며 걷기 시작했어요. 칼리오페는 삼색 고양이를 뒤를 따라갔어요.

고양이가 안내하는 언덕을 넘어서자 하얀 꽃이 피어있는 과수원이 나왔습니다.

그 곳에는 하얀 꽃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어요. 여행을 하는 사이 사과 꽃이 피

는 계절이 돌아왔어요.

칼리오페는 기뻐서 소리쳤어요.

“사과나무가 있는 과수원이구나.”

세 개의 별이 내려다보는 우물을 찾아 카리오페는 언덕을 뛰어 내려갔어요.

울창한 사과나무 사이의 우물에 다다르자 하늘에는 파랑, 빨강, 노랑 세 개의 별

이 반짝이고 있었지요.

“여기야. 마녀가 말한 보물이 있는 곳.”

칼리오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우물에 달린 두레박 줄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

어요. 우물은 아주 깊었지만 용감하게 바닥까지 내려갔어요.  우물의 바닥에 다다

르자 넓은 마당이 나왔어요. 마당 여기저기에 옥으로 만든 꽃에서 향기가 나고

횃불이 광장을 비추었습니다. 불을 가만히 만져보았지만 뜨겁지 않았습니다.

마당에는 너무나 신기한 보물이 많았습니다.

금으로 만든 번개모양의 칼, 핑크 다이아몬드가 이마에 박힌 그리스식 흑가면, 아

름다운 보석이 십자가 모양으로 박힌 뜨거운 잔. 날개 달린 빗자루, 아홉 개의 구

멍이 뚫린 구리상자, 귀 달린 나팔, 저절로 돌아가는 하얀 맷돌, 무지개 빛깔을

머금은 빗, 검은 눈물을 흘리는 코가 달린 밥솥, 코끼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비단

담요, 눈이 달린 모래시계, 커다란 무역선 장식물이 달린 모자, 금강석이 물방울

처럼 매달린 목걸이, 뱀모양의 보라색 허리띠. 끝도 없이 신기한 물건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너무나 신기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보았습니다.

무엇을 고를까 망설이다가 문득 마녀의 말이 떠올랐어요.

“무엇을 골라도 좋지만 마당의 끝에 있는 문 안에 있는 보물은 가져가면 안된다

고 했지. 가져가지 않아도 보기만 하면 되지. 이렇게 좋은 보물이 많으니까 방에 있는 보물은 아주 특별할 거야. 가져가지 않고 구경만 하자.”

칼리오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둘러보았습니다. 그러자 마당의

끝에 나무로 된 문이 보였습니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책상이 보이고 그 위에는 책처럼 생긴 거울이 있었습니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데. 만져만 봐야지. 만져서는 안된다는 말은 안 했 잔아. 가까이서 보고 그냥 두고 가면 되지.”

칼리오페가 거울 위에 손을 얹자 노래가 흘러 나왔어요.


“날 좀 보소-오, 날 좀 보소-오, 날 좀 보소-오.

추운 겨울 꽃 보듯이 날 좀 보소.

어떤 보물도 달빛 아래 못 찾을 리 없으니

해가 뜨기 전에!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2


자세히 보자 거울에는 입이 달려있었어요. 거울입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소

리에 칼리오페는 정신이 쏙 빠졌습니다.

“그래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노래는 다시는 없을 거야. 무슨 물건인지 모르지만 이걸로 가져갈 거야.”

거울을 품 속에 넣고는 우물을 빠져 나왔습니다.

길고 어두운 우물에서 나오자 거울이 밝은 빛을 내면서 작은 요정이 나타났어요.

“나를 깨웠구나. 나는 눈 깜빡이는 거울 요정이야. 이제 나와 함께 여행을 하자.

내가 너를 도와 줄게. 친구가 되려면 너의 이름과 별자리와 나이를 말해줘. 그러

면 나는 항상 너의 편이 될 거야.”

“내 이름은 칼리오페, 쌍둥이자리”

“몇 살이지?”

칼리오페는 자신의 나이를 세어 보았어요. 세개의 나라를 지나는 동안 벌써 3년

을 훌쩍 뛰어 넘었어요.

“16살이야.”

거울 요정은 지팡이를 들어 인어공주가 말한 것을 적었습니다.

“이제 거울이 옆에 있으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너의 여행을 도와 줄 거야.”

“고마워. 어떻게 보답해야 하지?”

“보답이라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말을. 그런 거는 필요 없어.”

눈 깜빡이는 요정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너만 행복하면 된단다.”

인어공주는 거울이 한말을 혼자 중얼거려 보았어요.

“너만 행복하면 된 단다.”

“이제 알았지. 한마디로 공짜라고. 마음껏 거울을 사용해. 거울에 비친 모습이 마

음에 들면 두 번 흔들어. 그러면 영원히 남게 돼. 그리고 새로운 거울이 생겨나게 되지.”

“새로운 거울이?”

“또 다른 모습은 새로운 거울이 생겨나서 거기에 담으면 되는 거지. 그러면 많은

사람이 너를 알게 되지. 너의 추억을 남겨. 그러면 너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자연

스레 알게 되기도 하지.”

“많은 친구가 생기겠네요?”

“그 대신 그림자가 길어질 거야. 그림자를 잘 관리해야 해야 하지.”

거울 안에서 빛이 나와서 인어공주를 비추었습니다. 거울은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여주었습니다. 인어공주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잠시 넋

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칼리오페는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담으며 놀았어요. 너무나 재미있고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다리를 몸으로 문지르는 삼색고양이를 보았습니다.

삼색고양이는 인어공주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너를 잊어버릴 뻔 했구나. 기다려줘서 고맙다”

인어공주는 거울을 주머니에 넣고는 고양이를 안아들고 마을로 향했습니다.


인어공주는 도착한 마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리를 다니는 사

람들이 마법거울을 들고 다녔습니다. 사과나무 꽃처럼 흔한 것이 마법거울이었지

요. 거리는 마술거울에서 나오는 ‘날 좀 보 소’ 노래소리로 가득 했지요. 칼리오페

는 실망해서 거리에 주저 않았습니다. 마녀의 말을 듣지 않고 마지막 방에서 마

법거울을 가지고 나온 걸 후회했지요.

다른 물건으로 바꾸려고 우물로 되돌아 가려 했지만 안개로 가득차서 우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색 고양이가 실뭉치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여기저기 굴리며 놀면 실뭉치는 풀

어져서 여기저기 어지럽게 흩어졌어요. 칼리오페는 실을 다시 감으려고 거울에

실을 감아 놓았다가 잠이 들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제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습니다. 빛나는 거울을 보고 사람들은 인어공주의 거울을 부러워했습

니다.

사람들이 부러워하자 신이 나서 거울을 더 만들었습니다. 거울에 실을 감으면 아

름답게 빛난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였지요. 거울이 새로 만들 때마다 길어지는 그

림자가 어느 새 인어공주의 키보다 커져 있었습니다. 그림자가 불편하기는 했지

만 칼리오페는 행복했습니다. 이제 왕자만 만나서 꿈을 이룰 날만 기다렸습니다.


실 왕국 왕자의 수수께끼


사과 꽃이 날리는 과수원이 있는 나라 옆에는 실 왕국이 있었습니다. 실 왕국 왕

자는 아주 잘 생기고 키가 컸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남자였지요.

왕비가 없는 나라에 왕자는 외롭게 자랐지요. 왕은 왕자가 염려되어 충직한 신하

를 곁에 두게 하였습니다.

충직한 신하의 아내는 영리한 여자였어요. 이름은 탈리아였지만 모두들 실대신

파이부인이라고 불렀지요. 실 나라에서는 파이를 구울 때 실로 묶어 구웠는데 신

하부인은 실 대신 종이를 싸서 익혔어요. 그래서 그런 별명을 갖게 되었지요.

탈리아는 파이를 구우며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노래를 흥흥거렸어요.


"기쁨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다.

이웃집 불행은 꿀맛,

옆집에 불 나면 외치는 소리,

꼴 좋다 꼴 좋아.

집집마다 통곡소리,

방방곡곡 대성통곡

꼴 좋다 꼴 좋아.  샤덴프로이데."

(샤덴프로이데: 타인에게 불행이 닥쳤을 때 즐거워하는 심술궂은 마음)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탈리아는 어려움에 빠진 신하를 자주 도와주고는 했어요.

항상 주머니 속에서 꾀가 쏟아져 나왔어요. 그래서 왕자는 신하를 항상 의지했어

요.

실나라 궁전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계단과 기둥도 커다란 대리

석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지붕은 작은 돌로 촘촘하고 뾰족하게 세웠어요.

궁전 안에는 병사, 정원사, 목수, 열쇠공, 의사, 수학자, 과학자, 나팔수, 철학자, 시

인등 궁정식구들로 붐볐습니다. 그들을 먹이기 위한 어마어마하게 큰 주방이 있

었는데 100명이 넘는 조리사가 각자의 솜씨를 뽐내면서 요리를 하였습니다. 어설

프고 서투른 어린 요리사는 양파와 당근을 큼직하게 잘라냈지요. 고기요리, 야채

요리, 빵과 향기로운 음료수까지 입 안에 들어가면 쏙 하고 녹아버리는 맛난 음

식이 식당 안에 가득하게 만들어졌어요..

궁전 옆 신하의 집 지붕에는 커다란 창고가 있었는데 단단한 벽으로 둘러 싸여

있어서 튼튼했고 부지런한 창고지기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왕자와 신하가 실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창고지기가 와서 진주가 바닥을 드러냈다고 알려주었어요.

창고지기는 실을 팔아 진주를 쌓아 두는 매우 중요한 일을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어요. 이웃나라에 만물박사가 실 없이 옷을 만들어서 팔고 있었습니다. 실을 진주로 바꾸어 가던 상인은 어느 새 이웃나라로 가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하던 놀이를 멈추고 창고지기를 돌려보내고 신하에게 물었습니다.

“몸은 하나인데 손은 12개이고 입과 눈은 365개인 것은 무엇일까요?”

왕자는 수수께끼를 내고는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어요.

신하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왕자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어요.

집에 돌아온 신하는 걱정으로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탈리아는 신하의 얼굴만 보고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알았지요.

탈리아 덕분에 신하는 왕자의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고는 했으니까요.

“오늘은 무슨 일로 당신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한가요?”

신하는 창고지기가 찾아온 일과 왕자의 수수께끼를 부인에게 알려주었습니다. 탈

리아는 왕자가 창고가 비어서 근심한다고 금방 알아챘어요. 그렇지만 천천히 고

민하는 척 했어요. 너무 빨리 답을 주면 안되기 때문이죠.

차 한잔을 마시자 이윽고 부인은 입을 열었어요.

“왕자를 만나면 지금 하는 말을 똑같이 하면 됩니다. ‘현명한 처녀를 찾아 결혼하

십시오. 누가 얼마나 똑똑한 지 모르니 창고에 진주를 가득 채 울 지혜를 가진 여자를 고르시면 됩니다.’”

“그게 수수께끼의 답이란 말이요?”

“내일을 보려면 질문을 하고 어제에 묶여 있으려면 대답을 하라고 하지요. 수수께

끼의 답을 모르면 남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처녀의 몸에서 지혜가 샘 솟는데 무

슨 걱정입니까. 진주를 구하는 여자가 왕자와 결혼한다고 나라 안에 알리면 수수

께끼의 답은 자연히 풀리지요.”

다음날 신하는 궁전으로 가서 왕자에게 탈리아가 했던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현명한 처녀를 찾아 결혼하십시오. 누가 얼마나 똑똑한 지 모르니 창고에 진주를

가득 채 울 지혜를 가진 여자를 고르시면 됩니다.”

왕자는 웃음 띤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왕자와 지혜로운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많은 여자들이 들었습니다. 눈이 부

실 정도로 아름다운 옷을 입고 화려한 부채와 빛나는 신발을 신고 찾아왔어요.

실감기놀이에 바쁜 왕자와 신하는 신하부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찾는 여인을

고르라고 부탁했어요.

탈리아는 자신의 집을 처녀들을 초대해서 대답을 들었습니다.

“실에 아름다운 색을 입히면 비싸게 팔 수 있습니다..”

“실을 가볍게 만들면 많이 팔리겠지요.”

“따뜻한 실이 인기를 끌 거예요”

처녀들은 신하 부인 앞에서 달콤한 이야기를 속삭였지만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탈리아는 창밖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집, 문 앞에 서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았어요.

문지기를 불러 무슨 일이지 물어보았지요.

“늦게 도착했고 나막신을 신고 있어서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서 나막신을 신고 오느라고 인어공주는 늦었지요.

신하 부인은 복장은 상관없으니 들어오라고 하고는 칼리오페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웃나라에는 마법 거울을 가진 사람이 많이 있어. 모두 마법 거울을 좋아하지.

그런데 마법 거울은 실을 감으면 거울이 빛을 내지. 실을 많이 감으면 감을수록

거울 속 모습은 아름다워지고. 이 사실을 알리면 실이 날개 돛인 듯이 팔리게 될

거야. 실은 옷 만들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니까.”

탈리아는 인어공주가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빨리 알아챘어요.

탈리아는 신비로운 마술을 이웃나라에 퍼뜨렸어요. 소문은 입이 달린 마술 거울

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 나갔어요. 사람들은 실을 사서 마법거울에 감기 시작했어

요.

어떤 사람들은 실을 사서 빨리 쓰려고 강과 바다에 던졌지요. 다른 사람보다 더

눈에 띄게 하려고 마구마구 실을 쓰자 실나라에는 진주가 산더미같이 들어왔어

요.

왕자는 텅 빈 창고에 진주가 꽉 찼다는 소식을 듣고 신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

리고는 신하의 자리에 자줏빛 카페를 깔아주고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수수께끼

를 훌륭하게 풀어낸 보답이었죠. 충직한 신하는 왕자의 손에 입을 맞추며 기뻐했

습니다.

왕자는 진주를 손에 가득 쥐고 명령했습니다.

“지혜를 발휘한 여인을 어서 데려오시오.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으니.”


잃어버린 길에서 만난 빛나는 별


탈리아는 수수께끼를 풀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지붕 위의 창고에 자주 올라가 쌓

인 진주를 황홀하게 바라보았지요.

진주가 가득한 창고 밑 거실에서 쉬다 보면 콧노래 소리가 저절로 나왔어요.


“금을 가진 자, 금을 원하고

물을 가진 자, 물을 탐하네.

누구든지 그래! 욕망은 평범하니까."


인어공주는 수정같이 투명하고 높이 솟은 유리창이 달린 커다란 방에서 거울도

보고 왕자의 모습을 상상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값비싼 커튼 사이로 왕

국의 거리에서 오가는 행인을 지켜보면 시간은 너무나 느리게 흘렀지요. 책처럼

생긴 거울을 새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림자만 길어질 뿐 외롭기는 마찬가지 였어

요. 거울의 입에서 나오는 노래소리도 지겨워졌어요. 해가 지기만을 기다리며 지

냈습니다.

칼리오페는 신하 부인에게 길로 나가서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했습니다.

“왕궁에 살면 친구는 자연스레 없어진 단다.”

탈리아는 칼리오페에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때 전령이 신하 부인을 찾아와서 왕자의 명령을 알렸습니다.

“이제 드디어 왕자님을 만나는 구나. 미용사에게 머리도 가다듬고 손톱도 손질해

야지.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장미 냄새나는 향수도 뿌려야지. 호박 색깔 화려한 마

차와 시종도 준비하고.”

검은 머리에 초록빛 모자를 쓰고 흰 비단천에 금색 실로 자수를 놓은 옷을 입자

하얗고 가느다란 목과 작고 발이 드러났습니다. 아름다운 칼리오페를 보고 신하

부인은 자랑스러워서 흡족한 미소를 띠었습니다.

“잊을 뻔했구나. 이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를 걸어 줘야지. 신발은

빨간 구두를 준비했다. 실나라 최고의 구두장이 작업장에서 내가 직접 골랐지. 너

의 발에 꼭 맞을 거야.”

칼리오페는 커다란 진주 목걸이를 걸고 발을 내밀었어요. 빨간 구두를 신자 발이 쑥하고 들어갔습니다.

칼리오페는 신하 부인의 손을 잡고 물었습니다.

“너무 고마워, 내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하지?”

탈리아는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며 말했습니다.

“너만 행복하면 된단다.”

인어공주는 거울을 꺼내 자신의 변한 모습을 살펴보고 만족했어요.

왕궁을 향해 출발하며 인어공주는 신하 부인의 집 문을 너무 세게 닫고 나왔어요.

그래서 지붕 위의 진주가 너무 많아져서 천장이 약해진 집이 무너지며 실대신부

인은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왕궁에 도착하자 왕자와 대신이 반갑게 맞이했어요. 왕자는 칼리오페가 상상했던

대리석 왕자는 다르게 생겼지만 멋있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이쁜가요. 아가씨 그윽한 그 향기는 뭔가요. 당신

을 만나 행복의 구름 위를 달립니다. 나와 결혼해 준다면 당신에게 왕국의 절반

을 드리겠습니다.” *3

인어공주는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가만이 끄덕였어요.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이렇게 다정한 왕자는 없었지요. 같이 수수께끼도 풀

고기 실뜨기 놀이도 하면서 함께 웃었습니다. 인어공주는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이렇게 멋진 남자와 결혼한 다니 꿈만 같았지요.

그때 창고지기가 사고를 알려 왔어요. 왕자는 신하의 집이 무너졌으니 당분간 왕

궁에서 자고 새로운 집을 마련해 준다고 했어요. 왕궁에 큰 창고로 진주를 옮기

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수수께끼를 푼 지혜의 여인에게 키스를 하고 내일 성대한 결혼식을 신

민들 앞에서 올릴 것이라고 했어요.


왕자의 결혼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어요. 화려하고 즐거운 축

제가 시작되었지요. 선원들도 배에서 내려 경쾌한 춤을 추었습니다. 들판의 농부

들도 마른 풀잎에 불을 붙여 밤을 환하게 밝혔습니다. 궁전의 경비병들도 창을

내려 놓고 폭죽을 터트렸어요.

신하가 내일을 위해 집에 가자고 했지만 흥겨운 축제는 밤이 깊도록 계속 되었습니다.

인어공주는 왕자와 함께 같은 공기를 마시고, 바다를 바라보고, 하늘의 별을 바라

보고 있으면 몸이 하늘로 붕붕 날아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왕자는 아름다운 신부에게 키스를 하고 방으로 돌아갔어요. 인어공주는 잠이 오

지 않아 궁전을 서성거렸어요. 그때 해안가에서 인어친구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어요.

‘심을 때가 잊으면 거둘 때가 있네.’

인어공주가 육지로 나올 때 들었던 바로 그 노래였어요. 칼리오페는 친구들을 보

고 싶어서 바다를 향해 달려갔어요.

칼리오페는 바닷가로 다가가자 어둠 속에서 여섯 친구들이 파도 사이로 보였습니

다. 모두 창백하고 두려움에 찬 모습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눈에 띄게 여위었다

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물 위의 인간들이 실을 버려서 바닷속 깊은 곳까지 쌓여가고 있어. 너의 아버지,

왕은 삼지창으로 소용돌이를 만들어 없애려고 했지만 심하게 흔들다가 쓰러지셨어.

얼굴이 검게 변하고 피를 토하고 있어.

마녀에게 아버지를 살려 달라고 부탁했어. 그러니까 마녀가 이 칼을 주었단다.

어서 받아. 날카롭고 신비한 능력을 가진 칼이야. 해가 떠오르기 전에 칼로 왕자

의 심장을 찔러서 피를 물에 넣으면 왕자는 물론 실왕국은 파멸할 거야. 그러면

바다로 흘러오는 실타래를 막을 수 있어. 빨리 서둘러야 해. 왕의 목숨이 얼마 안

남았었어.”

칼리오페가 아무 말도 못하자 여섯 친구는 다시 한번 애원했어요.

“너 만이 마지막 희망이야, 인어공주야.”

일곱 친구는 큰 한숨과 함께 칼을 칼리오페에게 던져주고 파도와 함께 사라졌습

니다. 모래 위에 금으로 만든 번개모양의 떨어진 칼이 떨어져 있었어요.

사랑하는 왕자를 죽여야 한다니 칼리오페의 가슴은 찢어지듯이 아파왔습니다. 왕

자가 자고 있는 방문을 열고 왕자가 자는 침대 옆에 앉았습니다. 자고 있는 왕자

의 모습위로 달빛이 훤하게 비추자 조각 같이 아름다운 모습이 훤히 드러났어요.

창 밖에는 아직도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인어공주는 용궁의 아버지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너무나 먼 옛날의 기억이었어요.

인어공주는 왕자의 얼굴에 키스를 하고 텐트를 나왔습니다.

달 빛이 비치는 창문으로 가자 삼색 고양이가 따라와서 인어공주를 올려보았습니다.

“우물이 어디 있는지 알지? 이 칼을 그곳에 던지고 와.”

삼색 고양이는 칼을 물고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칼리오페의 귀에는 ‘쨍그렁’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어요.


아침이 되었습니다. 왕자는 들어와 가운데 자리에 앉고는 칼리오페를 밑에 자리에 앉게 하였습니다.

“실왕국을 고향이라 생각하고 나와 함께 삽시다. 당신을 꼭 행복하게 해주겠소.

백성들의 마음속에 경의와 동경이 솟아 나오도록 왕국의 난관을 헤쳐 나갑시다.

역사에 남는 시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소. 식탁이나 침대에서 당신의 지혜를

나에게 아낌없이 보내주시오.”

왕자는 백마 위에 올라 타고 왕국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행진하였습니다. 충직한

신하는 왕자의 뒤를 따라갔지요. 왕자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군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군중은 나라의 문제를 해결한 왕자의 지혜에 찬사를 보냈지요.

왕자의 눈은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왕궁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러러 보이는 발코니를 향해 올라가서 손을 흔들어

보였지요.

“지혜의 왕자님 만세! 위대한 왕자님 만세!”

왕자는 칼리오페에게 자신의 옆으로 오라고 손짓했습니다.

발코니에 모습을 내밀자 칼리오페의 숨 막힐 듯한 아름다움에 군중들은 잠시 멈

추었다가 일제히 외치었습니다.

“현명한 왕자님 만세! 현숙한 왕세자비 만세!”

왕자는 행사를 마치고 칼리오페의 손을 잡고 돌아섰습니다.

그 순간 칼리오페는 왕자에게 손을 뿌리치며 왕자의 왕관을 툭 쳐서 발코니 아래

로 떨어뜨렸습니다. 왕자는 깜짝 놀라 왕관을 잡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허공에 중

심을 잃고 떨어졌습니다.

칼리오페는 빨리 도망치기 위해 빨간 구두를 벗고 나막신으로 갈아 신었어요.

충직한 신하가 무슨 일인가 다가오자 군중사이로 빠르게 빠져 나왔습니다. 왕자

가 목이 부러져 죽었어요. 군중이 놀라서 지르는 소리를 들으며 단숨에 달아났습

니다.

거리로 나온 인어공주는  양팔을 하늘을 향해 뻗었어요.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안았어요. 이제 다시는 바다로 갈 일은 없었어요. 못 보던 길이 보였으니까

요.

멀리 궁전이 보이는 길에 다다르자 삼색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자아이가 있었습니

다. 삼색고양이는 여자아이 품에서 얌전히 안겨 있었습니다.

칼리오페는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물어보았어요.

“이름이 뭐니?”

“나는 에라토야, 고양이는 시빌라.”

“몇 살이니?”

“7살.”

“곧 13살이 되겠구나. 별자리는?”

“염소자리, 어디로 가는 거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눈물을 흘리면 시련의 시간은 1년씩 줄어드니까.”

인어공주는 아이의 손을 잡고 빛나는 별이 보이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1/ The Byrds의 Turn! Turn! Turn! (전도서 3장)

*2/ 밀양아리랑 일부 인용

*3/ 아카시아 껌 광고 가사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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