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고
헤밍웨이의 마지막 걸작 <노인과 바다>는 참으로 위대하면서도, 세월에 대한 눈물이 나는 글이었다. 오랫동안 어부를 하던 한 노인이 그간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어느 날 바다로 나가 큰 물고기, 상어와 삶을 건 사투를 하는 장면들은 너무나 치열했으며, 그 주체가 삶의 황혼을 맞이한 노인이라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을 전해주었다. 책을 읽다 보니 문득, 헤밍웨이에게 물고기와 바다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열정으로 죽음에 초연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최근 소설을 쓰면서 느낀 것은 작품에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던 그의 삶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겐 헤밍웨이가 이 작품을 쓰면서 보았을 바다와 청새치는 대체 무엇일지, 그리고 그는 왜 청새치를 포기하지 않았을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죽음마저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로 강력한 의지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에서 삶의 정수를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마치 작가들이 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과정 자체에서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보면 노인이 상어에게 청새치의 고기를 모조리 뜯겨 먹혔지만 크게 체념하지 않은 이유는,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청새치 고기를 파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오래도록 고기를 잡지 못했음에도 매일같이 바다로 나가는 것도, 바다가 일종의 해방감 내지는 초연함, 이상향을 느끼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어부들은 크고 좋은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항해하지만, 노인은 조그마한 조각배를 타면서도 엄청난 희열을 느낀다는 것에서 그가 얼마나 바다와 고기, 그리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매순간은 이미 삶의 정점이기에, 그는 정신적으로 어떠한 경지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노인은 나흘 넘게 바다에서 수백키로그램에 달하는 물고기와 사투를 견딜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몰락은 있으나, 패배는 없다”는 그의 대사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아마 그에게 몰락은 죽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청새치를 잡다가 죽더라도 그것은 청새치에게도, 바다에게도, 자신에게도 진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매 순간 가장 아름다운 꽃처럼 활짝 피어나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노쇠하고, 물고기 하나 못 잡는 노인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힘이 있었기에 그는 결코 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힘은 또 한 번 사랑에서 나온다. 그는 청새치와 조우한 순간부터 그를 친구로 여겼으며, 오랜 사투 끝에 그를 죽였음에도 그를 사랑한다고 표현했다. 또한 그의 고기가 상어에게 먹힐 때, 상어들을 죽인 뒤 그에게 말을 건네는 노인의 모습에서도 따듯한 애정과 사랑이 느껴졌다. 청새치도, 노인도 각자 자신의 무엇을 위해 투쟁을 했었고, 그 끝에서 자신을 죽일 수 있던 상대를 사랑할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은 그의 사투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아마도 헤밍웨이는 삶의 황혼기에서 잘 쓰이지 않는 글 속에서, 어떠한 마지막 집념을 불태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사투의 과정을 청새치와 노인 사이의 사투로 그렸으며, 그 정점에서 서서히 내려와 다시 평범함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퇴락을 순응하는 것은 그의 자살과도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그의 일상적인 고민을 담고 있었기에, 작품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 느껴지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오랜 고민으로 이미 죽음에 초연해진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었을까. 아마 그랬다면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뱉어내고 그의 마지막에 서서히 다가갔을 것이다.
참으로 작가란 어려운 직업이다. 자신에 대한 질문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 끝을 향해 달려야 하기에, 굴레에 갇힌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기에, 자신의 글에 대한 시선들에 의해 자기 자신이 흔들리는 것을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기에, 그들은 죽음까지의 긴 여정에서 결국 죽음에 초연해졌다. 누군가는 유희로 여겼으며, 누군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누군가는 몰락을 느꼈다. 그러한 사투를 겪던 헤밍웨이는 과연 자신의 글에서 어떤 바다를 보았을까. 그 바다의 냄새와 속도를 한 번이라도 느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