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긍정 :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를 읽고

by 유영

<죽음의 수용소>로 우리에게 익숙한 빅터 프랭클. 그의 실존적 치료 요법인 '로고테라피'는 철학적 접근을 심리학에 적용하여, 인간다운 치료의 포문을 연 창조적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 실존적 공허에 빠진 인간에게 절망감이 아닌 살아갈 힘과 의미를 쥐어주었을까.


1. 카뮈와 사르트르의 실존과 허무 사이로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반항 체계와 프랭클이 다루는 고통에 대한 인간의 대응 체계는 상당히 유사하다. 우선 프랭클의 이론에서 개인은 세계에서 고통을 느낄 때가 있다. 이때 인간은 1) 실존적 공허를 느끼고 도피를 택하며 삶을 부정하거나 2) 주관과 객관 사이의 긴장으로 고통을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낸다. 이런 의미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자기초월의 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찾아낸 의미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계속 쌓여가고 그 끝에서 삶(인생)이라는 그만의 유일무이한 의미가 탄생한다. 그렇기에 매 순간 쌓여가는 모든 경험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믿음이 바로 로고테라피의 핵심이다.

이는 카뮈의 반항체계와 매우 유사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세계에 대해 '부조리'의 감정을 느낀다. 이에 대해 인간은 도피하거나(막연한 믿음과 희망), 심리적/육체적 자살을 택하거나, 혹은 부조리에 반항한다. 반항의 초심을 기반으로 한 정오의 반항을 통해 인간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부정(non)을 삶의 긍정(oui)으로 이끌어간다. 참고로 여기서 삶의 긍정은 삶을 positive 하게 바라보는 가치적 개념이 아닌, 삶 자체를 살아가는 힘을 의미한다. 카뮈는 이를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스 신화에 빗대어 설명한다. 종합해서 카뮈의 체계를 치료 심리학적으로 바라보면, 부조리의 자리에 고통을, 정오를 기반으로 한 반항의 자리에 긴장과 의미 탐색을 배치하게 된다. 하지만 카뮈의 반항은 결코 죽을 때까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영원회귀 속에서 느껴지는 권태감과 유사한 감각으로 이어지고, 또 한 번의 실존적 공허로 빠져들 수 있다. 프랭클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르트르의 실존적 개념을 빌려온 것으로 보인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말로 유명한 사르트르는 존재 자체에 의미가 따라붙는다고 주장했다. 이는 영원히 반복되는 반항 속에서 지금 하고 있는 모든 행위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라는 안도감을 부여한다. 반항 행위 자체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의미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개인은 실존적 공허에 빠지지 않고 모든 삶의 순간을 긍정할 수 있게 된다.


2. 유머를 통한 삶의 긍정으로

영원회귀에 대해 또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헤르만 헤세이다. <황야의 이리>에서 잘 드러났듯, 그는 일종의 유희와 유머로서 영원회귀의 권태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극복의지는 1968년 전 세계로 확산된 68 혁명에서도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모든 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세계의 모든 권위에 대한 영원할 전쟁을 선포한 수많은 민중들의 심리적 근간을 이루었다. 아무튼 헤세의 결론은 사르트르보다도 프랭클에게 가까웠다. 그리고 헤세를 통해 프랭클을 바라봤을 때, 로고테라피라는 치료 요법에서 뜬금없이 '자기초월'의 개념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부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어내는 싯다르타의 모습처럼, 우리는 세상 모든 곳에서 우리 자신의 알을 깨뜨릴 수 있는 가능성과 힘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오직 개인의 의지이자, 믿음뿐이다. 그렇기에 프랭클은 자유와 책임을 도입한다. 개인은 찾아낸 수많은 의미 중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개인에게 주어진 작지만 소중한 자유와 책임이다.

이제 모든 흐름을 이어보자. 개인은 세계의 고통(부조리)에 대해 패배하거나 도전할 수 있다. 도전 과정은 객관과 주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지속되며 이를 통해 개인은 세계에서 저마다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각각의 행위에서 발견된 수많은 의미들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를 계속해서 쌓아 올린 그는 마침내 삶이라는 유일무이한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반복되는 의미 탐색의 과정을 유머와 의미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지속한다. 그는 결코 닿을 수 없을 완전한 이상향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며, 그 결과로 삶을 긍정하게 된다. 로고테라피는 인간다운 관계를 통해 고통으로 인해 실존적 공허에 빠진 이들이 다시 삶을 긍정할 수 있도록 하는 믿음을 부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3. 하지만 삶은 긍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결코 긍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긍정은 부정이라는 반대 개념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했던 프랭클 또한 긍정이라는 결과가 아닌, 긍정을 추구하는 의지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가치중립적인 철학적 토대에 치료의 관점을 얹게 되면서 개인과 세계의 관계가 긍정과 부정이라는 이분법적 판단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절망적 상태에 빠진 환자들에게는 부정에서 긍정으로 향하는 과정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렇게 획득한 자유로운 삶의 긍정이 과연 진정한 삶의 의미일까?라는 물음을 남겨두게 된다.

선한 거짓말, 요즘말로는 '가스라이팅'으로 만들어진 자아상이 스스로를 긍정한다고 해서, 그들로 이루어진 사회가 과연 이상적인 사회인가?라는 문제는 지난 세기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오던 문제인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은 결과를 남겨둘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서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볼 때, 언젠가는 고통마저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찬 기대와 함께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