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고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p.15)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 공산주의는 실존하지 않은 채로 당대 사회를 공포로 밀어 넣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북한도, 중국도, 러시아도 공산주의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본질은 파시즘적 독재 국가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르크스(이하 막스)가 이야기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모두에게 잊힌 그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1. 자본주의의 특수성
우선 그에 앞서, 막스가 공산주의를 제시한 배경을 살펴보자.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p.16)에서 드러나 있듯, 그가 바라본 인류의 역사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간 투쟁의 역사였다. 루소가 제시한 자연 상태와 유사한 개념의 협력 공동체(공동 소유)의 사회가 생산성을 높이며 잉여 자원에 대한 ‘사적 소유’의 개념이 발생하였고, 여기서부터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정복 전쟁을 통한 주인-노예의 관계, 땅을 매개로 한 영주-농노의 관계, 교회나 왕과 같은 지배층-그들에게 지배받는 인민의 관계, 그리고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의 관계까지. 인류는 두 계급 간의 첨예한 대립 사이에서 새로운 사회 구조가 탄생하는 변증법적인 역사를 반복해 왔다. 하지만 자본주의로 인한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는 이전과 그 양상이 사뭇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계급을 억압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계급이 적어도 노예적 실존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들은 보장되어 있어야 한다.”(p.33)에서 말하듯이 이전의 지배-피지배 관계에서는 피지배층이 실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도래하며 생산력을 높이고 효율을 추구하면서부터 프롤레타리아는 지배받는 인간이 아닌 ‘한낱 도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이는 프롤레타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부르주아들의 상호 경쟁이 심해지고”(p.28), “지배 계급의 전체 구성원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추락하거나, 적어도 그들의 생활 조건을 위협받게 된다.”(p.30)처럼 무한 경쟁으로 인해 부르주아 내부에서도 우열 경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되었으며, 부르주아의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마치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에 나온 사드주의(이하 사디즘)의 자멸 맥락과 상당히 일치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계를 착취하다 보면, 결국 한정된 자원의 고갈로 인해, 스스로의 파멸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디즘의 근원은 에리히 프롬이 분석한 것처럼 ‘실존에 대한 불안으로 인한 도피’이다. 즉,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언제 프롤레타리아처럼 도구화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지속적으로 우월감을 뽐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다. 이는 사실 SNS에 자신의 일상을 과시하는 사람들일수록 내적 우울감과 불안감이 높다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과도 일맥상통한다. 종합하면, 막스에게 자본주의는 세계를 물질화하여 모든 대상을 착취하는 브레이크 없는 자전거이며, 모든 힘(자원)이 떨어진 운전자가 넘어져야 비로소 끝이 나는 사회이다.
2. 코뮨주의를 통한 자본주의 극복
그는 공산주의(보다 엄밀하게는 코뮨주의를 전제한 공산주의)를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인간 실존에는 과다한 잉여에 대한 소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발전 과정에서 계급 차이가 사라지고 모든 생산이 서로 연합한 개인들의 손에 집중된다면, 공공 권력은 정치적 성격을 상실할 것이다.”(p.47)에서 암시되어 있듯, 그는 코뮨주의를 제안한다. 사례를 통해 코뮨주의에 대해 살펴보자. 아주 오래전 인간은 자연에서 적당한 수의 인간이 모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갔다. 그들은 하천에서 물을 자유롭게 사용했고, 나무에서 열매를 자유롭게 채집하며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사적 소유의 개념으로 인해 자본이 권력의 성격을 지니게 되면서 물을 마시는 것, 음식을 먹는 것과 같은 필수적인 행위들에 물질적인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권력은 경쟁으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앞서 말한 파멸적인 결과가 야기될 것이다. 그렇기에 막스는 옛 공동체 문화를 기반으로 한 코뮨주의를 제안한다. 코뮨주의는 단순히 소유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 앞서 ‘성’과 같은 인간의 본연적인 충동 또한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소유마저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 세계 총생산의 2% 정도만 투자한다면, 사우스 사이드에 있는 모든 빈곤한 아동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된다. 참고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GDP 중 2%라는 수치는 군사 비용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경제 성장은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빈곤해야 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는 이러한 과감한 시도를 집행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막스는 ‘물질’이 매개하고 있는 지배-피지배 사이의 전쟁을 다시 ‘공존’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3. 전지구적 투쟁
마르크스-앵겔스 전집 편찬 위원회(MEGA) 소속의 학자 사이토 고헤이에 따르면 사실 만년의 막스는 도구화된 인간뿐만 아니라, 도구화된 자연에 대해서도 해방을 주장하고 있었다. 현실화한 기후재앙 속에서도, 이를 자본 획득의 기회로 삼으며 산불이 많이 일어나면 화재 보험을 활성화하고, 기후변화로 곤충들이 서식지를 이동하면 새로운 농약을 미친 듯이 판매하고, 세계를 지속적으로 착취하는 자본가들과 기후 책임을 약소국으로 떠넘기는 강대국들의 모습은 막스가 당시 바라본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본으로 세계의 과반을 장악하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0.01%에 대한 99.99%의 투쟁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엄청난 다수의 이해관계를 위한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p.32)가 될 수밖에 없으며, 더 나아가 “가장 나은 처지의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 처지를 개선하고자 하는”(p.60) 의지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도 치명적인 실책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혁명을 성공한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권력 장악 및 통제로서 안정적으로 이상사회를 향해 나아갈 것이라 믿은 점이다. 그 근원에 있는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 이것이 그의 패착 원인이었다. 소련도, 중국도 공산주의를 표방하였으나, 신 지배층의 ‘사적 소유’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주의보다 더 잔혹한 독재와 통제를 진행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은 사회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파시즘적 국가임이 밝혀진다. 베르베르가 <파피용>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것처럼 인간은 코뮨주의를 위한 충분한 여건이 갖춰지더라도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막스의 이론은 반항의 정오에서 멀어진 채로 사회에 적용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의 정오는 여전히 전 세계에 걸쳐 유효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이젠 우리가 질문할 시간이다. “여전히 세상을 떠돌고 있는 유령은 잠든 이들을 깨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