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의 전락을 잃고
‘인간은 타인을 심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향하는 카뮈의 <이방인>의 마지막 장면은 우리에게 상당한 충격을 전해준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처형되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이방인>, 알베르 카뮈, 김화영역
뫼르소가 왜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세계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긴 시간 간격을 두고 쓰인 <전락>에서 해소된다. 그 해답에 앞서서 그간 카뮈의 작품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는 이 작품 자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카프카의 소설에서나 느낄만한 부조리에 대한 답답하고, 억눌린 감각이 이 작품에서도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강가를 걷는 클라망스 뒤에서 계속 들리는 웃음소리와 말랑코르의 끔찍한 처벌의 감각으로서 잘 드러나고 있다.
카뮈가 <시지프 신화>에서 말했듯 부조리의 존재를 깨달은 자는 그에 반항하거나, 도피하거나, 몰락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그 부조리의 기저에는 바로 ‘죽음’이 놓여 있다. 아랍인을 향한 뫼르소의 다섯 번의 총성과 페스트로 인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 인간 역사에서의 수많은 반항 속에서 벌어진 살인과 자살. 즉, 인간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죽음이다. 역시나, 클라망스 또한 센 강에서 자살한 한 여인의 죽음에 대한 감정으로서 자신과 세계의 부조리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면, 상당히 치밀하고, 정교한 성격의 카뮈가 어째서 이미 한참 전에 저술한 부조리와 반항의 감각을 다시 쓰게 되었냐는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왜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떠오르는 듯한 독백체로.
카뮈가 지닌 사상의 대표적인 특징은 하나의 원리를 내세우지 않고, 세계의 원리에 대해 정오의 태도(쉽게 말하면, 중립적 태도)로 반항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카뮈는 자신의 반항이 새로운 질서의 확립으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결국 그렇게 세워진 새로운 질서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반항을 맞게 되는 낡은 답습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카뮈는 사르트르와 같은 사회주의적 실존주의자들과 각을 세웠다. 사회주의적 혁명을 통한 새로운 사회의 탄생은 카뮈의 입장에서는 일반성과 전체성을 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새롭게 세워진 질서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질서가 되어, 그렇지 않은 자를 심판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선택을 인정하는 실존주의에서 전체주의로 빠지는 것은 허무주의의 좌절로 빠지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그리고 그들의 혁명은 결코 새로운 권위와 그에 대한 반항자의 투쟁이라는 지난 역사를 결코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뮈는 자신의 출생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양쪽 어디에도 치우치치 않은 독자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프랑스와 알제리 모두에게 큰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카뮈의 부조리-반항 이론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의 절대적 원칙으로 작용할 수 있었는데, 이 점에 대해 카뮈는 명료하게 풀어내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불가능했다. 이러한 모습이 비유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페스트>에서 그랑의 모습이다. 그랑은 페스트 내내 격리된 도시 밖에 있는 연인에게 쓸 편지의 내용을 고민한다.
“잘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엄밀히 말하면, ‘그러나’와 ‘그리고’ 중에 선택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그리고’와 ‘그러고는’ 중에 선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좀 어렵습니다. ‘그러고는’과 ‘그러고나서’로는 어려움이 더 커집니다. 하지만, 확실히 가장 어려운 것은 ‘그리고’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있을 겁니다.”
<역병>, 알베르 카뮈, 이정서역
“그는 잔느에게 편지를 썼으며, 이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그 문장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빼버렸어요. 형용사는 전부.””
<역병>, 알베르 카뮈, 이정서역
하나의 단어는 발화자에게서 뱉어지는 순간, 생기를 잃고, 청자에 의해 죽은 문자로서 해석된다. 이것이 바로 당대 철학가들이 겪었던, 언어의 한계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에 대한 카뮈의 고민은 부가적인 것을 모두 비워버린 채 본질만을 남겨놓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실존주의 문학의 포문을 연 도스토예프스키부터, 사르트르, 카프카, 베케트 그리고 카뮈까지 이들은 모두 실존과 허무 사이에서 첨예한 줄타기를 하며 상당히 복잡한 단계의 부조리의 감정을 겪었다. 그 감정이 바로 제각각 ‘지하생활자의 수기’, ‘변신’, ‘구토’, ‘고도’, ‘페스트’ 등의 주제를 빌려 승화되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카뮈는 자신의 이론이 하나의 원리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상당한 고민과 좌절을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몇 차례 허무주의로 빠질 뻔한 위기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부조리-반항-사랑으로 이어지는 3단계에서 마지막 단계를 앞둔 카뮈에게 벌어진 사르트르와 당대 지식인 사회와의 절연, 알제리-프랑스 이슈 등의 이슈는 그가 스스로의 이론을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계기점이 되었을 것이며, 소설과 에세이 그 사이의 애매한 형식을 빌려 카뮈는 ‘자신과 세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폭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카뮈에게는 새로운 정오적 태도가 필요했으며, 그것은 소설도, 희곡도, 에세이도 아닌 그 중간의 모호한 양식을 토대로, 카뮈 자신과 당대 세계의 목소리가 섞인 인물, 클라망스를 통해 전달되었다.
이제 종합하자. 카뮈에게 세계는 부조리였다. 개인의 실존을 강조하며 노벨상까지 거부했던, 사르트르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전체성을 추구한다는 모순에서 비롯된 부조리, 반항인이라는 카뮈의 인간관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부조리, 세계 1, 2차 대전을 겪으며 느끼게 된 국제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자신의 여성 관계에 대한 아내의 절망감을 알고 있던 자신에게 느끼는 부조리 등. 카뮈는 카프카만큼이나 세계의 압박감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베케트가 부조리 3부작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지워내려는 반항을 시도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행동과 이론, 그것의 표상에 대해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반항했다. 카뮈는 저서에서 시지프스가 영원히 돌을 굴리면서 행복하다고 했으나, 부조리의 고통은 개인 카뮈에게는 상당히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리고 카뮈는 마치 그랑처럼 자신과 세계의 모든 모순에 대해 반항했고, 전체와 무 사이의 얇은 줄 위를 걷기 위해 자기 자신을 비워내려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카뮈는 다시 태초의 반항의 정신을 가득 채운 반항인으로서, 진정한 반항으로서의 사랑의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그를 위해서 카뮈는 자신이 겪은 모든 부조리의 감정을 쏟아내고, 스스로에게 정오의 반항이라는 본질만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클라망스처럼 카뮈 또한 재판관 겸 참회자이다. 그는 인간의 반항에 대해 각각의 모순을 드러내어, 독자가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직접 느끼도록 한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에 대한 지속적인 반항을 통해 자신의 나침반이 흔들림을 멈추지 않도록 한다. 우리는 카뮈에게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왜 니체처럼 확고하고, 강렬한 힘과 방향으로 세계에 반항하지 않는지에 대해. 왜 다른 실존주의자들처럼 자신의 성향을 끝까지 이어가지 않는지에 대해. 하지만 카뮈는 죽음의 순간까지 영원히 반항할 것이다. 그에게 반항은 진리가 아닌 태도이기 때문에, 마치 시지프스가 그랬듯이 그는 계속 걸어간다. 인간은 그렇게 계속, 계속, 또 그리고 계속 반항하며 영원히 가득 채워지지 않을 돌의 가운데를 채워나가고 있다. 이제 민영규 선생의 <지남철>이라는 시로 마무리하겠다.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그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의사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 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떨리는 지남철>, 민영복 글, 신영복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