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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킴 Apr 17. 2023

아날로그: 불편함에서 오는 설렘과 행복

인간적인 가치  

테크놀로지와 디지털화로 인해 우리의 삶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해졌다. 30대인 필자는 잠시 아날로그 시절을 거쳐 디지털화돼 가는 사회를 살았기 때문에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편리해졌는지 나름 느끼곤 한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직접 시간을 내 식당에 가서 테이크아웃하는 것 대신 핸드폰 앱으로 주문을 하면 몇십 분 안에 집 앞으로 배달이 된다. 

집 앞 마실 뉴욕 허드슨 강 (iphone13 pro)

강아지와 산책하는 도중 예쁜 풍경을 발견하면 '아 집에서 카메라를 갖고 나올걸...'이 아니라 바로 그 즉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간직할 수 있다. 심지어 사진도 원하는 만큼 여러 장 찍을 수 있고 바로 그 즉시 어떻게 찍혔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도 중학교 시절 때처럼 시디를 사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 미리 들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직접 음반매장에 가서 샘플로 들어보고 마음에 들면 사거나 혹은 그 아티스트를 믿고 무작정 산다음 집에 와서 들었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귀찮게 mp3 파일을 일일이 받을 필요도 없다. 아무 때나 핸드폰으로 사용하는 스트리밍 서비스앱에 들어가 그 즉시 듣고 싶은 노래를 검색해서 다운을 받거나 바로 들을 수 있다. 무엇보다 불편하게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시디플레이어라든지 mp3 기기를 따로 안 들고 다녀도 된다. 

틈틈히 모으고 있는 CD & 블루레이 (iphone13 pro)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때도 귀찮게 커피콩을 갈고 물의 온도를 맞추고 시간을 재면서 커피를 내릴 필요도 없다. 그저 캡슐 하나면 꽤 그럴싸한 커피가 완성. 원하는 취향대로 에스프레소, 라떼, 등등 다 가능하다 그것도 불과 몇 분 만에 말이다. 


근데 여전히 아직도 시디와 엘피판을 생성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3년 동안 엘피판의 매출은 급격히 올랐다. 나 같은 소비자가 흔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큰 착각이었다. 나 같은 사람들은 왜 불편하게 엘피판, 시디, 필름사진 등등 아날로그를 지향하고 열광할까? 






부모님의 차가 문제가 생겨서 새 차를 사야 할 일이 생겼었다. 전원주택에 사시고 한국이 워낙 휘발유값이 비싸니까 아빠에게 테슬라를 권유했다. 

      "테슬라는 싫다~ 운전할 때 그래도 엔진이 웅~ 하고 소리가 나야 엑셀 밟고 드라이브하는 맛이 나지"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유가 될수 있다. 아빠는 테슬라가 주는 수많은 편리함보다 전기자동차가 아닌 일반 자동차를 운전할때 느끼는 그 감각과 감성을 더 추구하신 것이다. 아빠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그래 올드스쿨 마인 드니까 그럴 수 있겠지 하고 이해할수 있게 된다. 

60대인 아빠는 대학시절부터 꾸준히 엘피판을 모으셨고 (덕분에 산울림 전앨범 레코드판을 들을 수 있었다!), 여전히 지금도 열심히 모으고 계신다. 최근 몇 년에도 조성진의 도이치그래모폰 (Deutsche Grammophon) 모차르트 엘피판과 방탄소년단 (BTS)의 Fake Love앨범 그리고 블랙핑크 (Black Pink)의 핑크베놈 시디와 엘피판 산걸 나에게 자랑하기도 하셨다. 아날로그를 매우 사랑하시는 아빠다. 


LP는 40-60대 아저씨들의 취향이다라고 흔히들 알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지난 2-3년 동안 엘피판을 산 소비자 연령대는 20-30대. 내 또래 사람들. 왜 젊은 층의 소비자들은 아날로그에 돈을 쓰는 걸까? 




편리함과 간편함을 찾고 익숙해지면 동시에 우리가 놓치는 것도 분명 생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건 바로 인간적인 가치, 인간적인 감정이 아닐 까. 차가운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는 확실히 좀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인간은 감각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사물을 직접 볼 수 있고 만지며 느낄 때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이메일로 받는 것보다 직접 손글씨로 적은 편지가 더 큰 의미를 갖고 있다. 펜으로 직접 쓴 편지는 한번 쓰면 지울 수 없고 내가 쓰고 싶은 말이 상대에게 전달이 잘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 고민하고시간을 써야 한다. 

책 읽는 데 옆에서 쿨쿨 자는 반려견 아인슈타인 (iphone13 pro)

태블릿이나 킨들 (Kindle)을 활용하여 독서하는 것이 가볍고 여러책을 하나로 읽을 수 있는 간편함이 있지만 종이의 질감을 직접 체험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 자체가 독서가 주는 즐거움의 플러스 요인이 되기도 한다. 


내 얼굴보다 큰 LP판을 불편하게 엘피 플레이어에 올려놓고 아주 섬세하게 카트리지 (cartridge)의 바늘을 돌아가는 LP판에 살포시 놓을 때 주는 쾌감이 있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내가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고 나에게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건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 부분이 곡 전체에서 어느 시점인지 알려주는 고작 하나의 선위에 움직이는 마커뿐이다. 내가 현재 듣고 있는 음악이 내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LP판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감지할 때 핸드폰으로 똑같은 음악을 들을 때 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최고의 바이닐 daft punk - RAM (iphone13 pro)

가까운 사촌들도 나처럼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는 데 어느날 사촌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LP로 듣는 게 훨씬 더 재밌지. 랜덤으로 카트리지를 올려놓을 때 무슨 트랙이 나올지 맞추는 것도 재밌고 딱 내가 원하던 트랙이 나올 때 짜릿하기도 하고" 


비슷한 의미로 필름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고 필름을 감는 그 손가락의 느낌과 감각은 핸드폰에서 카메라 셔터 버튼을 누르는 것과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른 만족감과 감동을 준다. 


필름사진 찍는 게 취미인데, 보통 필름은 24-36장이라는 제한된 사진 장수가 있기 때문에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도 좀 더 심혈을 기울이고 시간을 갖고 집중을 해야 한다. 제한된 숫자 때문에 사진 한 장 한 장의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원하는 만큼 찍을 수 있는 디카나 핸드폰과 달리 더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필름을 현상에 맡기고 사진이 나올 때까지의 기다림과 설렘은 몇 배로 커진다. 물론 나의 창작물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흥분, 기대, 설렘도 큰 몫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 사진 한 장 한 장이 나에겐 엄청나게 큰 의미가 더해지고 또 재밌는 스토리/에피소드도 생긴다. 

코닥, 후지, 시네스틸, 로모그래피 필름들 (iphone13 pro)


네스프레소나 캡슐로 커피를 내리는 것보다 모든 걸 수작업으로 직접 콩을 갈아 예쁘게 커피필터 위에 올려놓고 알맞은 온도의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 내린 핸드드립 (drip) 커피에는 나의 노력과 정성이 있다.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릴 땐 오늘 내린 커피는 무슨 맛일까 내심 기대를 한다. 

킨토 핸드드립 (iphone13 pro)

물론 노력과 정성이 항상 결과물 (커피의 맛, 필름사진의 퀄리티)과 비례하진 않는 다. 편리함이 사라진 대신 우리는 시간을 써야 하고 더 기다려야 한다. 기계에 비해 정확도도 확연히 떨어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는 행위에서, 그리고 그 긴 기다림에서 오는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낭만에서 우린 인간적인 가치과 감성을 느끼게 된다. 반복적인 사진 찍기와 커피를 내림으로서 실력이 향상되고 성장한다는 뿌듯함이 오기도 한다. 


우리는 감각을 추구하기에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때 더 큰 만족감과 감동과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우린 (나 같은 사람들은) 그런 걸 느낄 수 없는 디지털화되어 있는 세상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디지털 피로감이 쌓이는 게 아니었을 까? 


인간은 세상, 사람, 사물을 디지털로 시각화하고 인지할 수 없다. 우린 지금 이 글을 읽을 때도, 눈앞에 맛있는 통통한 참치뱃살초밥이 있을 때도, 부드럽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려 할 때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연인을 봐라볼 때도 그 모든것이 0과 1이라는 숫자의 패턴과 조합으로 보이지 않는 다. 우리 인간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뇌와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편리함을 찾을 것이고 우린 더 디지털화된 세상을 살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하고 서서히 우리의 일상생활에 도입되는 것 처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감각을 깨닫게 해 주고 보존해 주는 아날로그를 동시에 추구하며 살 것이다.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과 삶은 음양 (ying yang)이 존재하는 것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 둘 다 공존하고 알맞은 발라스를 유지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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