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살 때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야 할 문제
Are you a conscious consumer?
그대는 의식적인 소비자 인가?
0.
성별, 나이, 국적과 상관없이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다면 모두가 입어야 하는 옷. 외출할 때 '아무 생각'없이 옷을 입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생각한다. 패션에 정말 1의 관심도 없는 극 소수의 사람은 존재하겠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름 본인의 생각, 철학, 느낌, 스타일에 토대로 옷을 입는다 (옷을 '잘'입는 것과는 별개로).
심지어 3-4살 어린아이도 자기의 취향이 있고 원하는 컬러나 특정한 옷을 입겠다며 고집을 피우기도 한다.
4살인 내 조카는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다. 핑크색이 그녀가 스스로 정한 퍼스널 컬러이고, 프릴이 들어간 드레스는 언제나 그녀의 ootd. 그러니 젊은 성인이라면 옷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막' 입고 다닐 확률은 낮다.
1. 흐름과 시작
사회의 어떠한 흐름을 읽고 생각해 볼 때 철학자 헤겔의 변증법 (Hagel's Dialectic)을 종종 사용하곤 하는데, 패션의 흐름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정리해 본다면 정(thesis)은 high fashion, 반(anti-thesis)은 fast fashion, 합(synthesis)은 slow sustainable fashion이지 않을까 싶다.
간략하고 쉽게 설명하자면, 기존의 틀인 정 <high fashion 하이패션>을 대응하며 생긴 반대적인 개념은 반 <fast fashion 패스트 패션>, 그 둘을 합쳐 더 발전된 개념인 합 <slow sustainable fashion 슬로우 지속가능한 패션>
19세기-20세기에는 유럽의 장인들과 패션계의 레전드들이 (크리스천 디올 Christian Dior, 코코 샤넬 Coco Chanel, 살바토어 페라가모 Salvatore Ferragamo,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 Cristobal Balenciaga, 휴벗 드 지방시 Hubert de Givenchy, 이브 생 로랭 Yves Saint Laurent, 에밀리오 푸치 Emilio Pucci 등) 한 땀 한 땀 장인정신으로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옷 혹은 신발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만큼 퀄리티는 훌륭했다.
드레스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으니까.
그때 당시에도 당연히 고가의 패션이었기에 상류층, 왕족과 귀족들, 혹은 연예인들이 주 고객이었다.
Industrial Revolution으로 인간 노동을 더 쉽게 대체해 주는 기계로 인해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생산량이 가능해졌다. 개발도상국 developing countries에 저렴한 인력과 더 많은 공장들과 기계로 인해 자연스럽게 fast fashion의 시대가 시작됐다. 대표적인 브랜드 예로는 Shien 쉬인, Forever 21 포에버 21, Zara 자라, H&M, Uniqlo 유니클로, urban outfitters 어반아웃피터 등이 있다.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저렴한 노동력으로 단기간에 최대수량의 옷을 찍어내기에 옷의 가격도 싸졌다.
패스트 패션 fast fashion이란 단어는 1989년 뉴욕타임스 New York Times의 기사로 탄생되었다. 옷을 만들기 시작한 날부터 매장 옷걸이에 걸리기까지 단 14일밖에 걸리지 않는 다라는 파격적인 말을 한 자라 Zara를 일컬으며 나온 말이었다.
물론 패션 시장의 트렌드의 첫 주름 (트렌드 세터 trend setter)은 하이패션 (유명 디자이너/디자인 하우스)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하이패션을 비슷하게 카피하여 낮은 퀄리티지만 보다 빠르고 많은 옷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제는 부담 없이 누구나 쉽게 "트렌디"한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패스트 패션은 단순히 마켓 니즈에 반응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1960년도부터 미국에서는 패션은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은 음악의 흐름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1960년대는 락앤롤, 포크,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특히 실험적인 experienmental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등장했다 (롤링스톤즈 the rolling stones,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비틀즈 the beatles,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레드 제플린 Led Zeppelin 등등). 히피 문화도 이때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대중들 특히 젊은 층이 옷을 단순히 기능성 혹은 사회적 위치 social status를 위해 입는 게 아닌 자기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자유롭게 입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unisex옷의 개념도 시작되었으며 패션도 예전과 달리 더 다양하고, 유니크하고 실험적인 옷들이 등장했다.
더 많은 이들이 더 저렴한 가격의 옷을 원했고, 그런 마켓수요에 반응하여 생겨난 게 패스트 패션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트렌디한 옷을 입고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게 바로 패스트 패션이다.
낮은 퀄리티로 인해 옷의 가치도 낮아졌다. 그리고 쉽게 산 옷은 쉽게 버릴 확률이 높다. 실제로 미국에선 매년마다 버려지는 옷이 일인당 37kg이나 된다. 옷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오래오래 두고 입기에도 힘든 경우도 많다. 통계적으로 미국에선 한 옷을 많아야 일곱 번 정도 입고 버려진다고 한다. 이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지난 15년 동안 한 옷을 여러 번 입는 횟수는 36%나 낮아졌다.
즉 옷의 생명력은 짧아졌고 버려진 옷들은 고스란히 돈과 힘이 없는 국가에 쓰레기 더미가 된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그런 국가에 사는 아무런 연관성과 잘못이 없는 서민들이다. 매년 92,000,000 톤의 버려진 옷들이 폐기물이 된다고 한다.
쓰레기통에 옷을 버리기보단 헌 옷을 기부하거나 헌 옷수거함에 넣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기부된 옷이나 헌 옷수거함에 있는 옷들도 결국 폐기물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유니크함을 표현하기 위해 젊은 층들이 옷을 본인의 스타일대로 입기 시작했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트렌디'한 옷을 대량생산 mass production 함으로써 그 고유의 유니크함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느낌의 옷을 입으며 희소성도 낮아졌고,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의 브랜드 자체 이미지 또한 많이 소비되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생산하는 공장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개발도상국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량생산을 위해 매일매일 24시간 풀가동을 해야 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열약하거나 합법적이지 않은 공장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00년 전 세계 인구수는 60억 명이었다. 현재 2024년 인구수는 84억 명이다.
2000년에 비해 2024년 오늘날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창출해 내는 옷의 양은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계산이 맞지 않는 다.
어째서 인구수는 40%밖에 오르지 않았는 데 옷의 생산량이 200%로 늘었단 말인가?
우리의 몸뚱이는 단 하나이고 상체도 하나, 하체도 하나뿐인데?
인간이 지난 24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급격한 진화로 인해 몸뚱이가 여러 개가 된 것도 아닌데?
친구의 어머니가 친구한테 하신 말이 떠오른다: "아니 신발 좀 그만 사, 네가 지네니!?"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과 SNS의 발달로 그에 상응하는 패스트 패션이 맞물려 낳은 무지성과 무의식적인 패션 과소비다.
현재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여러 SNS 플랫폼으로 수많은 제품들, 옷, 패션용품을 사고, 쇼핑하울 및 언박싱하고, 홍보를 한다. 얼핏 보면 별 문제없어 보이지만, 그러한 콘텐츠에 자주 노출이 되다 보면 과소비에 대한 인지력이 떨어지고 무뎌진다. 특히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보다 민감한 10대와 20대들이 쉽게 패스트 패션 소비를 할 경우가 높다 (저렴한 가격도 한몫을 한다). 하지만 그런 무의식적의 소비 혹은 과소비로 오는 만족감과 행복의 휘발성은 매우 높다.
앞서 말한 것처럼 패스트 패션의 옷들은 낮은 품질로 생명력이 짧기 때문에 대부분은 결국 폐기물이 된다. 모든 폐기물은 태운다고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분해되거나 부패되지도 않는 다. 대부분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다. 제한되어 있는 지구의 물리적인 공간에 그런 폐기물을 꾸역꾸역 넣고 쌓아봤자 한계가 있다.
4. 질문
우리가 패스트 패션을 소비하거나 혹은 그런 인플루언서들을 보고 소비 혹은 과소비할 때 질문을 해야 한다. 누구나 다 힙하고 트렌디한 옷을 입고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이 정말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일까? 그냥 단순히 트렌드를 쫓기에 급급한 게 아닌가?
어쩌면 패스트 패션이라는 물결에 휩쓸려 그저 노출 빈도수가 높은 상품을 사들이는 게 아닐까?
그게 정말 우리 자신이 추구하는 모습일까?
많고 다양한 옷이 있다고 해서 나의 소유욕이 충만되고 삶의 만족도가 올라갈까? 그 만족도가 얼마나 오래갈 것인가? 과연 물질적인 소비가 나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가?
나는 얼마나 많은 폐기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가?
다시 이 글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대는 의식적인 소비자 인가?
5. synthesis 합
결국 우리의 몸뚱이는 하나이고,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시간은 제안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미니멀리즘에 모든 건 사치다라는 극단적인 결론보다는 옷 혹은 물건을 사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아닌 의식적인 소비.
의식적인 소비로 얻는 건 그 물건이 주는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크고 휘발성이 낮은 윤리적인 보상이 따라온다.
소비를 막을 수는 없다. 어떻게 사람이 소비를 아예 안 하고 살 수 있겠는 가.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도 소비를 해야 경제가 산다. 하지만 소비의 양을 줄일 수 있고, '어떠한' 소비를 할지 인식할 수는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 아까 초반에 헤겔의 변증법을 언급했듯이 - 패스트 패션보다 더 나은 대안은 바로 slow sustainable fashion 슬로우 지속가능한 패션이 아닐까 싶다.
단순 패션에만 극한 되는 게 아니다.
이미 미국 뉴욕에는 대형 카페들부터 작은 소규모 카페들도 플라스틱 빨대를 밖에 배치해두지 않는 다. 종이빨대 혹은 플라스틱 대체제 빨대를 배치해 두거나 아예 플라스틱컵 대신 생분해가능 biodegradable 한 플라스틱 대체제에 커피를 담아 주기도 한다.
어찌 됐든 어느 정도의 소비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라면, 의미가 있는 소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5. 도토리
나는 패션을 사랑하고 관심이 많지만 옷을 자주 사거나 많이 사지 않는 다.
태생이 쇼핑을 귀찮아하고 굳이 더 사야 하나?라는 마음이 있다. 쇼핑에 내 시간을 할애하는 게 좀 아깝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옷을 많이 사지 않는 미니멀리스트인 나도 옷을 폐기한 적이 당연히 있다.
패션계에 오래 종사한 친구와 오랜만에 밥을 먹는 도중, 친구가 말했다.
"이미 세상에 수많은 옷 브랜드가 존재하고 옷의 폐기물은 쌓여만 가는 데, 또 새로운 패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맞는 건가?"
친구가 툭 던진 이 질문은 이미 예전부터 패스트 패션에 반감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나에게 강한 불을 지폈다.
패스트 패션의 대체제로는 뭐가 있을까?
폐기물을 다시 활용할 수는 없을 까?
저 폐기물들도 한때 누군가에겐 어떠한 가치가 있던 물건이지 않았을 까?
가치가 사라진 것들에게 가치를 되찾아 줄 수 없을 까?
그럼 사람들에게 보다 윤리적인 보상이 있는 의미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는 대안이 있지 않을까?
다프트 펑크 Daft Punk의 노래 <Give life back to music>처럼 폐기물에, 버려진 것들에게, 가치가 사라진 것들에게 가치와 삶을 되찾아주는 방법이 있지 않을 까?
패스트 패션에 대체제 alternative가 있어야 한다.
의식적인 소비, 좀더 의미가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는 옵션이 다양해져야한다 생각한다.
지속가능패션에는 업사이클링 upcycling이라는 게 존재한다.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물건을 재활용해서 다시 쓰는게 아니라 더이상 사용하지 못하는 것들이나 폐기물을 분해시키고 조합해 새롭게 창조되어 예전보다 더 큰 쓰임새, 미감 그리고 가치가 있는 걸 만드는 행위다.
지난 몇개월 동안 곱씹고 진지하게 고민한 뒤,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에게 업사이클링에 대해 알리고 '가치가 사라진 것들에게 가치를 되찾아주는' 문화, cultural movement를 만들어야겠다고.
과소비와 무의식적인 소비에서 벗어나 slow sustainable fashion & lifestyle을 추구하는 보금자리, 커뮤니티를 만드는 걸 꿈꾸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생각의 흐름을 정리하고 고체화하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대는 의식적인 소비자 인가?
라는 질문에 단 한명이라도 누군가가 그렇다 라고 대답한다면, 아니 한번쯤이라도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생각해 볼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 아주 자그맣고 미미한 시작이지만 - 업사이클링과 slow sustainable fashion & lifestyle 커뮤니티의 비전을 갖고 도전한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목표다" 라고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가 말했듯이.
"Big things start small.
The biggest oak starts from an acorn.
You've got to be willing to let that acorn grow into a little sapling,
and then finally into a small tree
and then maybe, one day,
it'll be a big business on its own
큰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거대한 오크나무도 작은 도토리에서 시작됩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도토리를 먼저 어린 묘목으로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나무로 성장하겠죠.
그리고는 언젠가 자력으로
큰 사업체로 성장할 것입니다.
- Jeff Bezos 제프 베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