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대한 단상
0.
값비싸고 성능이 좋은 물건들은 잘 케어를 해야 수명이 오래간다. 손목시계, 스피커, 자동차, 카메라, 컴퓨터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성을 다해 케어를 하는 이유는 수명뿐만이 아니라 그 물건의 능력 ability를 최고치로 올려서 사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니 인간의 몸과 뇌는 얼마나 케어해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몸과 뇌를 케어한다는 건 꽤 광범위한 토픽이 될 수 있다. 인체구조는 수많은 장기들, 혈관들, 림프선과 신경이 뒤엉킨 복잡한 시스템이지만, 가장 기초적이고 그 essence로 파고들면 결국 우리의 인체는 분자로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우리의 몸과 뇌의 케어의 가장 기초적인 건 바로 습관이 아닐까 싶다.
1.
목표 vs 목적
습관을 시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냥 시작하면 되니까. 가장 어려운 건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다. 심지어 어린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진실이다.
습관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원동력은 바로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는 가'라는 의문점과 원인에서 나온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정말 쉬운 질문이다. 당연히 어떠한 이유가 있으니까 습관을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이유가 목표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목적을 위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몇 개월 뒤에 있을 바디 프로필을 위해서, 건강검진을 위해서, 혹은 웨딩 촬영을 위해서 앞으로 매일 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을 하는 건 목표에 더 가깝다. 보시다시피 목표는 대부분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tangible 한 목표 goal을 말한다, 예를 들면 몇 킬로의 몸무게 혹은 체지방률을 만드는 것.
문제는 목표만 가지고는 그 습관이 6개월, 1년, 5년, 10년 이상으로 유지되기가 매우 힘들다. 이게 가능하려면 장기간의 목표를 가져야 하는데 아무리 미래지향적인 사람일지 어라도 10년 단위의 장기간 목표를 세우고 그걸 위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매우 힘들다. 결국 사람은 현재 주어진 그 순간을 즐겁게 보낼 때가 가장 행복하니까.
그렇다면 목적은 무엇인가? 목적은 목표를 넘어선 그 이상의 마인드셋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매일 운동을 하는 목적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는 데 나는 80살이 되었어도 내가 즐기는 것들 (자전거 사이클링, 러닝, 등)을 하고 그 나이 때도 현역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집중력을 높이고 빠른 두뇌회전을 유지하는 것도 나의 운동 목적이다.
다른 누군가에겐 그 목적이 손주들과 함께 디즈니랜드를 가는 것 일수도 있을 테고 또 누군가에겐 그 목적이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형성되을 수도 있다. 아니면 운동하는 걸 마냥 좋은 게 목적일 수도 있다. 그냥 뛰는 게 너무 좋은 것처럼. 좋아하는 걸 계속하면서 사는 거야 말로 정말 행복한 일이니까! 목적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면 된다.
목표와 달리 목적으로 접근하면 유연성이 주어진다. 대게 목표는 정확한 데드라인 deadline 혹은 수치 (몸무게나 체지방율 혹은 BMI)가 존재한다. 만약 매년 몸무게 50kg 미만을 유지하는 게 목표라 생각하면 그 목표를 이루어서 오는 쾌감보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애쓰는 스트레스가 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목적을 생각하면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접근하기 때문에 목표달성을 위해 너무 애쓸 필요도 없고 매일 습관화하는데 덜 부담스럽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목적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자동으로 그런 작은 목표들이 이미 달성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팁을 하나 쓴다면, 그 목적이 사실 좀 더 깊은 레이어가 있으면 있을수록 습관을 몇 년씩 유지할 수 있는 확률이 몇 배로 높아진다. 단순히 건강하게 살고 싶다가 아닌 그 이상의 목적, 예를 들면 건강하게 살아서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비영리단체를 열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목적이 있다 가정해 보자. 누가 더 건강한 습관을 오래 가질 것 같은가? 당연히 후자이다.
2.
목적의 원천
예리한 사람이라면 이제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목적은 어디서 오는 건가?
극소수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아 나 이제부터 건강하게 살아야겠는데?'라는 갑작스러운 깨달음 epiphany를 경험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cause-effect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경험 혹은 가까운 가족, 지인들의 경험 (큰 병으로 앓았거나 혹은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거나)으로 자기의 삶을 뒤돌아 보게 되고 목적을 찾게 된다. 목적이 생기면 저절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에 맞게 자기만의 루틴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슬프고 비극적인 일이 있는 사람만 좋은 습관이 생기는 건 아니다. 저런 일이 생기는 확률도 낮으니까. 그렇다면 나머지 '보통' '일반적인'사람들은 어떻게야 하는 가?
주변 사람 세명의 평균이 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누구와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형성해 나갈 때 내적요소도 중요하지만 외적요소도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목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분명히 자기 본인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반대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을 좀 '막'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주변에는 그런 비슷한 결의 생각과 생활을 하는 사람이 확률적으로 높다. 좋은 습관을 기르고 싶다면, 이미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 혹은 그런 습관을 기르고 싶은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책이나 유튜브 등 여러 매개체를 통해 목적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Outlive> By Peter Attia라는 책이 나에게 엄청난 울림을 주었고, 그 책을 완독 한 그날, 나는 바로 운동복 입고 헬스장으로 갔다. 그 후로부터 오늘날 2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운동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저 책은 아직 한국어로 번역본이 안 나왔는데, 나온다면 꼭 읽어보길 정말 정말 추천한다).
건강에 관심이 있거나 좋은 운동습관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장 서점에 가서 느낌이 오는 건강, 운동에 관한 책을 집어 읽어보길 바란다. 몇백 장짜리의 1-2만 원 하는 고작 그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꾸는 습관을 만들게 해주는 동기부여와 목적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3.
타고난 게 아닌 만들어가는 것
나는 건강한 습관과는 정말 반대되는 삶을 살아왔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야행성 night owl이었고, 만 18살이 되어 태평양을 건너 나 홀로 캘리포니아 엘에이라는 지상 파라다이스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자유는 너무나 거대했다.
스스로 성숙했다고 믿었지만 나는 가차 없이 그 큰 자유에 짓눌려 내가 내 삶과 세상을 이끌기보다는 세상이 나를 이끄는 대로 다녔다. 별 이유 없이 밤을 새우는 건 일상이었고, 담배를 입에 물고 살았으며, 음식도 자극적이고 고칼로리의 패스트푸드가 주 양식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했지만 규칙적인 운동을 이틀 이상 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최악의 불규칙한 삶을 살았었다. 그리고 그런 불규칙적인 삶은 치대를 다닐 때도 이어져갔다. 아니 더 심해졌다. 잠도 못 자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치대공부가 힘들다는 핑계로 흡연도 이어져갔다.
부끄럽게도 대학교 때 교양과목으로 꼭 읽어야 했던 책을 제외하고는 성인이 된 후 작년까지만 해도 (10+년) 내가 읽은 책은 5권도 되지 않았다. 2-3년에 겨우 1권을 읽은 셈이었다.
성인이 된 후 10+년을 넘게 담배를 피우고, 불규칙적인 수면과 식습관에 허덕이며 책과는 멀리한 삶을 살아왔었다. 이제는 그랬던 나의 과거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담배는 당연히 끊었고, 최소 7.5시간 이상의 규칙적인 수면패턴과 매일 운동과 독서를 습관화 한지 이제 200일이 되었다.
하루아침에 180도 변할 수 있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생활습관을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 다.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나 자신에 대해 탐구하고 질문하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생각을 하면 지금 현재 나의 모습을 바꾸고 싶은 목적이 생긴다.
하지만 저 말이 왜 반은 맞냐면 그 목적이 생긴 그 순간부터는 바로 행동으로 나서면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작을 하고 매일 5분씩이라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그냥 하면 된다. 오히려 힘들고 어렵게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기보다 매일 5분이라도 운동을 했다는 거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도움이 된다.
4.
1+1 = 3
매일 운동을 하고 나니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며, 집중력이 올라가고, 체지방률도 낮아지고 근육량도 높아졌지만 이런 1차원적인 효과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더 큰 효과를 얻게 되었다. 독서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책을 읽어서 지식이 더 쌓이고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사고가 강해졌지만 그 이상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것을 얻었다.
글재주가 없어서 말로 설명하기 한계가 있겠으나, 현재 나는 작년 초의 내가 살던 같은 집에 살고 있고, 같은 가족과 지인들이 있으며, 같은 직업으로 일하고 있고 같은 지구 위에 존재하지만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즉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인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의 관점이 바뀌었기에 결국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한다는 건 이 세상 속에 내가 주체화되어 주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맡겨지기보다 나의 흐름에 세상을 맡기는 것.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고, 200일 동안 매일 독서와 운동을 했으니 과거의 내 노력과 시간이 아깝지 않게 거대한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일지도 모른다 (sunk cost fallacy, 매몰 비용 오류).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매일 성장하고 나아가는 현재의 내 모습이 좋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200일 전의 나 자신도 사랑했지만 지금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새롭게 변하는 나의 모습을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상의 이끌림에 휘청거리는 게 아닌 나의 이끌림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은 이러한 습관, 루틴으로 인해 더 단단해질 거라 믿는다.
The world is a very malleable place. If you know what you want, and you go for it with maximum energy and drive and passion, the world will often reconfigure itself around you much more quickly and easily than you would think
-Marc Andrees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