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려움은 성장의 메타포

by 닥터킴

나는 더 성장하고 더 단단해졌다 믿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두려움은 또 찾아온다.

아무리 내가 작년에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두려움 앞에 서있다.

그래도 왠지 이번 두려움의 크기는 다소 왜소해진 것 같다. 근데 이게 체급이 낮은 두려움이 나를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나의 등치가 커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면 사실 크기가 달라지지 않았는데 내가 달려져서 다르게 보이는 거일 수도 있다. 마치 과거의 똑같은 두려움이 다시 찾아온 것이지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른 모습이라 새롭게 느끼는 거일지도 모른다. 모든 건 다 상대적이니까. 절대적인 건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두려움에 맞서면 언제나 그렇듯 심장이 요동친다. 겨드랑이는 땀으로 흥건히 젖고 몇 년이 지나도 고치지 못하는 나의 몹쓸 습관인 손톱주위를 뜯는다. 옆에서 코 골며 자고 있던 반려견이 갑자기 눈을 크게 뜨더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강아지는 생각보다 예리하고 인간의 감정을 잘 느낀다. 두려움의 분위기를 감지한 게 틀림없다.


최대한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머릿속에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서는 분주하게 화학반응이 일어난다. 플랜 a, b, c, d, e, f….. 플랜 안에서 더 세부적으로 쪼갠다… a-1, a-2,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두려움은 계속해서 나의 뇌를 채찍질하며 풀가동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점에 도달한다. "됐고 다 때려치워!!" 나의 뇌세포들은 소리 지르며 쿠데타를 일으킨다. 사고회로에 불을 지핀다. 만약 지금 누군가가 내 방에서 나의 모습을 본다면, 나는 매우 멀쩡하게 보일 테다. 하지만 사실 나의 머릿속 안은 불난 시장바닥처럼 아수라장이다. 불의 연기로 모든 게 뿌옇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다.


문득 현자의 모습을 갖춘 할아버지가 입에 물고 있던 파이프 담배를 꺼내 내 뒤통수를 내리치듯, 나의 차갑고 예리한 의식이 끝끝내 뿌옇고 어두운 두려움의 막을 뚫고 나 자신을 향해 질문들 던진다.


나는 무엇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가?

나의 두려움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왜 지금 두려움을 느끼는 것인 가?

이 두려움은 실제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허상인가?

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내 전전두엽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눈을 감고 긴 호흡을 한다. 눈을 천천히 뜨고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다. 질문에 하나씩 답하기 시작한다.


그래 우선 부딪혀봐야 어디든 가지 않나.

어쨌든 움직여야 한다. 가야 한다. 멈출 순 없다.

이대로 두려움에 굴복하기엔 나의 욕망이 너무 크다.


두려움을 두려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기상천외한 엉뚱함을 갖고 있지 않다. 혹은 극한의 낙관주의적인 성향과도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나는 두려움을 두려움 그 자체로 마주한다. 현실을 직시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래 이건 분명히 두려움이다.

나는 이미 두려움의 회오리에 들어와 있다. 이 회오리는 너무 높아 고개를 끝까지 위로 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회오리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이 회오리는 나를 계속해서 따라올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사실 이 회오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였고 “나”일 것이고 앞으로도 “나”일지도 모른다.


마치 주술을 부리듯 나 자신에게 얘기한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끼는 건 나의 성장을 의미하는 메타포라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건 해보지 않았던 도전이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라는 걸. 하지만 어디까지 그저 하나의 감정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두려움은 이번 한 번이 아닌 나의 인생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내가 맞서야 할 숙제이다. 어쩔 수 없이 두려움과 공존해야 하는 인생이다. 인간은 평생 살면서 두려움으로부터 완벽히 극복하고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두려움을 다시 대면한다. 두려움을 바라보는 나의 인식이 바뀌어있다. 두려움이라는 회오리 안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잃지 않은 채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한 선택들을 내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두려움 속에서 자유를 택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과 집중은 나를 더 성장시킨다.


계속 움직이고 앞으로 나아가자. 나의 수명이 다하여 끝나는 날이 오더라도 어떻게든 내가 꾸는 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 하지 않겠는가.


keyword
이전 08화<안도 다다오>는 힙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