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멜스 라잌 쌈닭 스피릿 smells like ssamdak spirit
올해 초 <바우하우스 100년의 이야기 Story of Bauhaus by Frances Ambler 프랜시스 앰블러>를 꽤나 재밌게 읽은 탓에 디자인과 건축 예술의 세계에 향한 궁금증이 커졌다. 더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바우하우스 100년의 이야기>와 연관된 책들을 찾아보던 중, 눈에 띈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건축에 대해선 무지하고도 무지하지만 안도 다다오에 대해 그나마 아는 건 딱 세 가지 팩트뿐이었다.
1) 일본인 건축가
2) 칸예 웨스트의 말리부 집을 건축함
3) 제주도에 멋진 건축물을 지음
과거의 칸예 웨스트의 팬이었기에 (현재 칸예 웨스트에 대해선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다..) 캘리포니아 말리부에 있는 그의 별장이 안도 다다오가 건축했다는 걸 알았고 예전에 가족모임에서 동생의 와이프가 제주도에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축물을 보러 가라고 추천해 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건축에 대해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건축에 무지하다 (평생 치과공부만 해와서 그렇다고 하고 싶지만 그건 멋 없는 변명이라는 걸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만큼 건축에 관심이 없었던 게 큰 몫을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이 책이 끌렸고 무엇보다 궁금했다.
왜 칸예 웨스트는 많고 많은 건축가들 중에서 하필 안도 다다오를 골랐을까?
어째서 안도 다다오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걸까?
무엇이 안도 다다오를 독특하게 만든 걸까? 무엇이 그를 다른 건축가들과 차별화되는 것일까?
책의 시놉시스는 대충 이러했다. 원래 권투선수였고 대학도 나오지 않아 전형적인 건축학 공부도 밟지 않았던 그의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거듭난 실패 속에서도 계속해서 도전한 이야기. 그 단 한 줄을 읽은 순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나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어떻게든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걸.
외국에 살면 가장 안 좋은 점이 한국어책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뉴욕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한국서점 고려문고는 이제 한국인보단 외국인 대상으로 장사를 하느라 점점 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이돌 앨범들과 굿즈로 덕지덕지 쌓여가고 있다.
이 책은 2017년도에 나왔기에 당연히 고려문고에는 있지도 않았거니와 알라딘 USA로 주문하려 했는데 주소입력칸에서 다섯 번 넘게 에러가 났다. 다른 계정을 만들어 보고 브라우저도 크롬 사파리 익스플로러 종류별로 다 해보아도 결제칸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나름 인내심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믿었는데 나의 큰 오산이었다. 온갖 욕을 다 퍼붓고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언젠가 내가 뉴욕에 한국책방을 만들겠다고 큰소리쳤다.
어찌 보면 가장 쉬운 방법은 전자책 ebook으로 읽는 거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종이책을 선호하는 나에겐 그건 이미 아웃오브안중이었다.
그렇다면 한글번역을 포기하겠다는 큰 결심까지 다달았다. 너무나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영어 번역판이라도 읽자며 화를 가라앉은 채 나의 고집을 꺾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이 책을 향한 나의 욕망은 어쩌다 보니 극 소수 한정판 아이템을 갖고 싶어서 안달 난 레벨까지 다달았다... 꿈속에서 나올 정도로 이 책에 대한 집착이 생겼다.
그러고 한 일주일정도 뒤 갑작스럽게 가족일이 생겨서 하루 만에 한국으로 귀국해야 하는 발상사가 생겼다. 부랴부랴 짐을 싸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에 타면 항상 하는 습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비행시간 동안 (뉴욕-인천 15시간) 무엇을 할 건지 시간표 스케줄을 짠다. 두 번째는 도착하는 나라(한국)에서 해야 할 일들을 리스트로 정리한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사는 것이 단연 내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었다.
여담이지만 서울에 도착하고 나서도 서점 4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재고가 없었고, 지방에 있는 교보문고에 딱 하나 남아 있다는 걸 알아서 겨우 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책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구하기까지 많은 우역곡절을 겪었기에, 이 책을 읽는 행위가 더 특별했고 애틋했던 거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큰 감동이었던 건 무엇보다 안도 다다오라는 사람이 단순히 티피컬 한 언더독이 아니라 요즘 사회에 찾기 힘든 참된 지혜로운 어른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디테일한 것도 놓치지 않지만 동시에 넓고 멀리 볼 줄 아는 통찰력. 인간과 자연과 삶의 본질을 깨닫고 잃지 않는 능력. 60살이 넘고 건축가로 일한 지 4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어렵고 힘든 일들을 선택하는 젊고 빛나는 도전정신.
나의 가슴속에는 Hall of Muses (뮤즈 홀)이 존재한다. 그 긴 복도 양쪽엔 나의 뮤즈들의 초상화가 걸어져 있다.
스티브 잡스, 크리스토퍼 놀란, 정주영 회장, 필 나이트, 찰리 멍거, 에릭 클랩튼, 데이비드 호크니, 후지와라 히로시, 다프트 펑크, 윈스턴 처치힐, 이와타 사토루, 릭 루빈,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이제 안도 다다오의 초상화도 걸어놓았다.
0.
서론이 꽤나 길었다. 자 그렇다면 안도 다다오는 왜 힙합인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우선 힙합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 생각보다 우리는 "힙합"에 크게 노출 되어있다 보니 어렴풋이 힙합이 무엇인지 알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의 정의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힙합은 단순히 랩, 디제잉, 그라피티, 브레이크댄싱 춤이 아닌 그 이상의 컬처다. 1970년대부터 싹트어 오늘날에는 대중적인 컬처가 되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 - 슈퍼볼 superbowl - 에서 하는 하프 타임쇼는 지난 몇 년 동안 힙합 아티스트로 도배되었다 (물론 그 이유는 제이지 (Jay-Z)가 하프 타임쇼를 기획 및 담당을 하고 있기 때문이긴하지만). 어찌 됐든 힙합은 이제 남녀노소, 나이와 세대를 넘어서서 모두가 인정하는 컬처가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힙합은 문화 그 이상의 철학과 개념, 즉 정신이다. 힙합 정신은 저항, 자기표현, 창의성, 그리고 진정성이다. 사회적 불평등을 향해 저항하기도 하고, 자기 정체성을 탐구하고, 진정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날 것 그대로 풀어내지만 동시에 창의성을 겉들여 자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철학이다.
그리고 그 힙합 정신이 바로 안도 다다오와 맞물리는 교차점이다.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책을 관통하는 단어를 골라본다면, 그건 <본질>과 <도전정신>이다.
그의 성공적인 요소, 그의 탁월함은 본질을 찾는 능력, 본질을 향한 옳은 질문력, 그리고 본질을 잃지 않는 집중력이다.
사실 본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탐구하고 질문하는 행위는 매우 어렵다. 우리는 무언가를 계속하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일을 하는 행위 자체 혹은 성취하려는 욕망에 휩싸여 내가 이 것을 왜 하는 것인지,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쉽게 간과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의 시작은 그게 아니었음에도 나중에는 어느덧 본질과 멀어져 욕망, 돈, 명예, 권력이 중심인 궤도에 일부분이 되어 본질의 색이 퇴색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가 40년 동안 건축가로 일하면서 느끼고 배운 것들이 쓰여 있다. 그것도 꽤나 적나라하고 매우 솔직하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러오는 프리츠커상도 받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성공한 건축가가 된 후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고 현재도 애를 쓰고 있다. 결코 커리어적인 면에서뿐만이 아니라 안도 다다오라는 개인의 성장에서 - 본인이 정의한 참된 어른이란 무엇인가에서 - 인류를 연결하는 하나의 연결고리의 역할로서, 그는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탐구하고 찾고 잊지 않으려고 한다.
1.
안도 다다오는 독특한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다. 그는 프로 권투선수였었고 대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프로 권투선수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중 우연히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 아트북을 보게 되었고, 그렇게 건축이라는 예술세계에 깊게 빠졌다. 그에게 르 코르뷔지에는 단순한 동경의 상대가 아니었다.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도 비슷하게 독학으로 성공한 건축가였고 기성 체제와 싸우며 길을 개척해 나갔다. 르 코르뷔지에도 안도 다다오와 마찬가지로 힙합 정신과 쌈닭 스피릿의 소유자였다.
안도 다다오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외할머니는 그 당시 세대에서 보기 매우 힘든 쿨내가 진동하는 할머니였다. 스무네 살이 되던 안도 다다오는 당시 인테리어 디자인 일로 나름 생계를 유지하고 잘 돼 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모아둔 돈을 몽땅 유럽 여행에 쓰겠다는 각오를 외할머니께 전했다. 물론 단순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는 근대 건축의 시작을 만든 서구 건축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배우고 싶었다. 할머니는 안도 다다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돈은 쌓아 두는 게 아니다. 제 몸을 위해 잘 써야 가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흔쾌히 보내주셨다 (나의 할머니는 스무네 살이었던 나를 흔쾌히 보내주실 수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훗날 사랑하는 스무네 살의 손주를 흔쾌히 보낼 수 있을까?)
"추상적인 언어로 아는 것과 실제 체험으로 아는 것은 같은 지식이라도 그 깊이가 전혀 다르다. 그 여행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지평선과 수평선을 보았다"
그의 세계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였던 인도에서 그는 세상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질문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경유한 인도에서는 이상한 냄새와 뜨거운 태양 아래 인간의 삶과 죽음이 혼재된 풍경을 보면서 인생관이 바뀔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바로 옆에서 다비를 마친 시체가 떠내려갔다.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
무명 건축가에, 연줄도 없고, 건축 교육도 받지 않아 대게 작은 개인주택 의례를 많이 맡았다고 한다. 크고 멋진 프로젝트들은 이른바 엘리트 건축가들이 맡았기 때문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연줄이 많은 걸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스물여덞 살 시절. 가진 것 없이 설계사무소를 열 때부터 '일감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일감이 없으면 스스로 가능성을 일궈내서 일감을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다.
가족이나 친척 같은 연줄을 이용해서 일감을 얻는 방법은 지속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지웠다. 타고난 기질상 누구한테 고개를 숙이고 일감을 따내는 것은 도저히 못한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힙합 정신은 소소한 개인주택을 지을 때도 보이는데, <스미요시 나가야> 프로젝트는 그가 주택마을에 갑툭튀 콘크리트 집을 지은 사례이다. 외부벽에는 창이 하나도 없고 무뚝뚝한 콘크리트 벽이다. 수많은 비평가들이 비난했다 왜 거리를 향해 무표정한 벽을 드러내냐고, 왜 합리적인 동선과 현대주택의 불문율을 깨 드리는 구조를 택했냐고.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도경제성장이라는 면목으로 스프롤 현상 (urban sprawl)을 보이는 도시에 맞서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자 하는 개인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 했다. 그의 쌈닭 스피릿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건축을 시작하고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건축을 둘러싼 환경도 사회도 크게 변했지만, 건축을 향한 나의 근본자세는 '도시에 저항하는 게릴라'라는 초심을 그대로 간직한 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현실 사회에서 자기 이상을 진지하게 추구하려고 하면 반드시 사회에 충돌하게 되어 있다. 십중팔구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며 연전연패의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것이 건축가의 삶이다.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계속 달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환한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을 믿는 강인한 마음과 인내력이야말로 건축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2. 건축가로서의 본질
본격적으로 건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도시에 들어서는 건축은 어떡해야 하는지, 건축은 도시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작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안도 다다오는 본인의 본질과 철학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그처럼 마이너한 독특함과 새로운 걸 시도하는 창조적인 태도를 갖은 건축가로서는 투자자들과 건축주와 자주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건축가는 어쩔 수 없이 건축주와 투자자들에게 맞춰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를 반복하다 보면 언제 가는 본인의 본질을 잃고 말 것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았다. "양자 사이의 어긋남을 메워 나가려면 어느 부분에서는 내 생각을 억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영합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본질을 잃고 말 것이다. 나는 사회와 그렇게 어긋나는 느낌에 갈등하고, 거기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주택건축 작업을 계속했다".
주택건축 작업은 소규모 프로젝트이기에 건축가에게 좀 더 자율성이 주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대신 금전적인 대가는 작았지만.
1980년 이후 일본은 경제 버블시대를 맞이하며 투기 과열이 일어났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라는 착각에 빠져 극단적인 경제지상주의가 일어났고, 건축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업건축 붐이 일어났고, 얼마나 더 독특하고 멋진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가에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남아도는 돈을 다 써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 같은 기괴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들은 이게 포스트모더니즘 (postmodernism)이라며 자기합리화했다. 또 한편으로는 오롯이 투자를 위해 지은 건물들은 불과 3년 정도로 투자 목적이 달성되면 이내 철거되기도 했다".
이런 상업 건축 프로젝트들이 돈이 되는 일이긴 했지만 안도 다다오는 상업성이 지나치게 느껴지는 작업이나 건축주와 결이 맞지 않을 경우 과감하게 맡지 않았다.
"상업을 위한 건축으로 시장 원리와 격투하며 내가 원하는 건물을 짓는 데 지쳐서 손을 뗀 것은 아니다. 부동산과 투기라는 장기판에서 건축이 일개 말에 불과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더 이상 내가 '격투'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장기판에 올라가 버리면 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나는 상업건축과 거리를 두기로 결심했다".
그가 건축가로서의 갖고 있는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건축주의 충족을 위하여 건축주가 원하는 것만 짓다 보면 그저 "따분한 집 밖에 짓지 못한다"라고 믿었다. 예산적인 부분은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 밖에 요소들만은 되도록이면 타협하지 않고 그의 신념을 밀고 나갔다. 건축주와 다투더라도 어떻게든 그는 고집을 밀고 나갔고 결국 건축주가 진저리를 내며 체념을 했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행동들이 옳고 그른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건축가로서, 예술가로서 본인이 지켜내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철학과 신념을 지켜내는 건 높게 평가한다. 그의 힙합 정신과 쌈닭 스피릿을 잘 보여준다.
"현장 시공팀에 대해서도 시공 결과가 나쁘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재시공을 요구했다"
3-1. 건축의 본질
그가 건출의 본질을 잊지 않고 짓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오다 히로키 뮤지엄>이다. 이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들과는 전혀 다른 매우 독특한 점을 갖고 있는데 그건 바로 자연광만 사용한다는 점이다.
미술관의 목적은 미술 작품들을 오랫동안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하여 많은 사람들이 작품들을 볼 수 있게 하는 공간이라 여길수 있다. 작품을 위해선 인공조명과 가장 적절한 온도, 습기를 유지해야 한다. 자연광만을 사용한다는 건 미술작품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안도 다다오는 왜 자연광을 사용하는 미술관을 지었을까?
이 미술관의 이름의 오다 히로키 화가는 손수 지은 움막 같은 집에서 전기도, 가스도, 수도도 없이 생활하며 그림을 그렸다. 해가 중천일 때 그림을 그렸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을 했다.
"그런 화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므로 사진에 나오는 정경을 고스란히 담아 두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인공조명을 설비하지 않고 자연광만 이용하는 미술관이라는 아이디어였다"
위에 언급했듯이, 작품을 보호하고 "살리기"위해서라면 사실 인공조명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보존되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는 작품을 살린다는 개념에 질문하고 도전한다. 과연 그게 참된 의미로 작품을 살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건 작품을 표준화하고 가사 상태에 두는 거서 아닌 가?
그림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인간과 동일하게 늙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있는 생명체들처럼 그림도 한계가 있는 시간 속에 존재하지 않나? 그렇기에 그림이 살아있는 게 아닐까?
안도 다다오는 자연광만 이용하는 미술관만 건축한 게 아니라, 태양빛과 함께 작품의 인상도 시시 각기 달라지는 자연의 마술도 함께 연출하였다.
그냥 하나의 미술관이 아닌, 화가 오다 히로키의 미술관을 건축하는 임무를 맡았기에 그는 이 건물을 건축하는 본질적인 이유를 찾았고 그 본질을 토대로 참신하고 독특한 하나의 작품을 건축했다.
3-2.
두 번째 사례는 그의 유명한 건축작품인 <빛의 교희>이다.
지금은 워낙 유명하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빛의 교회>이지만 사실 이 교회는 처음부터 짓기 매우 열약한 상황이었다. 건축비는 충분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그 마을에 교회 건축을 진심으로 바라는 건축주와 신자들의 진정성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단순한 기능성을 뛰어넘어 정신성을 표현해 주기를 기대하는 교회 건축 설계"는 그에게 사상 자체를 시험하는 꽤나 크고 중대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설계 도중 자금은 극단적으로 부족했고 고작 교회의 벽밖에 세우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여기서 안도 다다오는 뜻밖의 제안을 한다.
그는 예산이 부족하다면 지붕을 씌우지 말고 공사를 끝내자고 했다.
"교회란 그냥 시설이 아니라 신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드리는 장소이다. 지붕이 없어서 비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예배를 드리더라도 마음을 주고받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몇 년 뒤 돈이 모이면 그때 지붕을 얹어도 된다. 그때까지는 하늘을 향해 열린 예배당으로도 좋지 않을 까"
다행히도 엄청난 노력 끝에 지붕을 얹을 만큼의 자금 확보가 되었고 그렇게 오늘날 지붕이 있는 <빛의 교회>가 탄생되었지만, 이 사례에서 그가 얼마나 본질에 집중하는지 잘 보여준다 생각한다. 교회라는 공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모태신앙으로 기독교라는 종교와 매우 밀접하게 자라온 나도 어릴 적 비슷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번쩍번쩍한 대리석에 하늘에 닿을 것같이 높은 천장에 으리으리한 예배당이 왜 필요할까? 성가대가 꼭 존재해야 할까? 하나님에게 교회의 사이즈나 스타일이 중요할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기독교인들을 위한 것인가? 교회라는 공간은 왜 존재해야 하는 가?
안도 다다오가 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바라본 교회의 본질에 매우 공감한다 - 예배를 드리는 마음을 가진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공간. 우리 모두가 본질에 더 집중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조금은 덜 복잡하고 덜 폭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짓는가?"
4-1. 40년의 경력을 갖고 있어도 사라지지 않는 도전 정신
안도 다다오 하면 그의 콘크리트 건축물들을 제일 처음 생각할 거다. 처음에 콘크리트를 사용하게 된 건 예술적인 시도를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예산이 부족하여 가장 저렴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찾다 보니 콘크리트를 고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40년이 지나서도 그는 계속해서 콘크리트를 쓴다. 특히 유리 파사드를 쓰는 게 일반화된 시대에도 그가 콘크리트 건축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의 창조적 한계를 시험하기 위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설령 시대가 저버린 기술이라도 그 한계를 규명함으로써 가능성을 개척해 내자'라는 창조다운 도전 정신이야말로 그 희대의 건축 조형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콘크리트를 사용하다 보니 그는 콘크리트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형태든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콘크리트는 그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더 원초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기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저렴하고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콘크리트로 독보적인 건축물을 만드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누구한테나 열린 수단이란, 바꿔 말하면 남들과 차이를 드러내기가 힘든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특수한 수단으로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것을 만들고 싶다. 어려운 만큼 만드는 "꿈"이 있다"
"나는 재료를 콘크리트로 좁히고 구성도 기하학적 형태를 고수한다는 단순한 틀을 정해 놓고 그 틀 속에서 복잡 다양하고 풍부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에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4-2.
가장 돈이 안 되는 건축 프로젝트가 주택작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해에 한두건이라도 주택 작업을 지금까지 꾸준히 하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사무소에 새로 들어온 젊은 스테프를 위해서라고 그는 말한다.
주택 작업이야 말로 "건축이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끝맺음까지 할 수 있는 건축을 배우기 매우 좋은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장점은 경험은 없어도 열정이 뜨겁다는 것인데, 그런 열정 덕분에 고참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때도 많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런 열정을 잊고 싶지 않아서 주택 작업을 계속하는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제한된 만큼 특히 주택작업을 맡을 때는 신중하게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어떠한 주택작업을 할지 판단하는 기준은 생각보다 심플하지만 그의 힙합 정신과 쌈닭 스피릿을 보여준다.
"판단 기준은 단가나 규모가 아니라 건축주와 함께 얼마나 꿈을 나누며 도전해 나갈 수 있느냐 이다. 오직 이 한 가지만 생각한다." 함께 꿈을 나누며 도전한다는 것만큼 더 멋지고 벅차는 일이 세상에 있을까?
그는 여전히 해외프로젝트들도 마다하지 않고 하고 있다. 번거롭고 수고스러움이 가득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건에서 건축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건축을 향한 도전이라고 그는 말한다.
5. 대화를 대하는 안도 다다오의 자세
얼핏 보면 그는 꽤나 펀치력이 세고 승률이 좋은 쌈닭에 자기주장만 펼칠 것 같은 인물이지만, 사실 자기와 동의하지 않는 인물들과 일할 때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오모테산도 힐즈 프로젝트>를 할 때 개재발조합 이사회와 심하게 대립했다. 그들은 콘크리트를 쓰지 말고, 각진모양은 싫고 작은 희망 사항들까지 가지각색의 의견을 내놓았다.
<오모테산도 힐즈 프로젝트>는 옛 <도준 카이아오야마 아파트>를 복합 도시 시설로 재건축한 프로젝트이다
그런 대립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오히려 조합원 모두가 각자 생각하는 바를 남김없이 드러내도록 해서 차분히 '듣는'것부터 시작했다". "서로 타협하기보다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거듭함으로써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자고 생각했다".
나에겐 이게 참 재밌는 포인트였다. 보통은 타협하고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할 텐데, 오히려 그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다 얘기하게끔 함으로써 끝없는 대화를 통해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는 발상을 했다. 그런 발상을 처음부터 할 수 있다는 거는 본인의 생각이 무조건 맞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거듭된 대화를 통해 그는 사람들로부터 본인과 공통된 본질에 집중할 수 있던 것 같다.
건축주들도,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들도, 개재발조합 의사회도 안도 다다오도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었다. 그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계속되어 온 시간의 흐름을 끊어 놓지 않겠다는 자세, 도시의 기억을 계승하는 건물로 짓겠다는 자세였다. 지금까지 아파트가 지켜 온 오모테산도의 풍경, 그것은 반듯이 남기고 싶었다". 모두들 한마음으로, 과거와 현재를 하나의 "풍경"으로 연결해 주는 건축을 짓게 되었다.
독특하게도 <오모테산도 힐즈 프로젝트>의 건물 높이는 건물 앞에 쭉 늘어진 느티나무 가로수 높이 이하로 억제하여 짓고, 파사드는 가능한 한 상업적인 요소를 베재하여 차분하게 표현하고, 건물 가장자리 끝에는 어떤 형태로든 옛 아파트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남겼다.
나는 이 모든 복잡한 과정을 3줄로 간단하게 썼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만큼 모두가 동의하기까지는 쉽지 않았고,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안도 다다오의 큰 틀에 다들 동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관된 주장을 굽히지 않은 나의 완고함이 신뢰를 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의견이 제시되면 받아들일지 말지와 관계없이 반드시 응답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대화함으로써 그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새로운 훌륭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프로젝트를 실현으로 이끈 것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라는 지극히 평범한 과정의 축적이었다".
타인과 합의점에 대한 이런 지극히 평범한 대화를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하지 못하는 가. 물론 나 자신도 뒤돌아 보게 된다. 특히 일적인 관계에서 협상이나 많은 게 걸려있을 때, 혹은 너무나 깊은 사적인 관계라 (너무나 편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 관계라)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나 자신을 위한 이기심이 더 큰 무게의 추를 갖게 될 때 말이다.
그가 "대화"에 대하는 자세는 단순 그의 삶에 반경에서 마주하는 일이나 사람들 사이뿐만이 아니라 글로벌리즘으로 뻗어간다. 그는 글로벌리즘에 대해 미국이 주도한 근대화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하고 이 세계에는 거기서 비켜난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강조한다.
"앞으로도 '세계'가 존재해 나가려면 필연적으로 이런 강국중심의 패권주의를 뛰어넘은 참된 의미의 지구주의가 요구된다. 그것은 기존처럼 동질의 문화권을 확대하기만 하는 세계화가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때로는 대립하는 문화나 가치관을 서로 대화를 통해 용인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그의 철학은 그의 건축을 통해 얘기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일개 개인에 불과한 건축가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건축이 인간 생활의 문화에 관련된 것인 만큼 건출을 통하여 나름대로 의사 표명은 해 나가야 할 것이다"
6.
안도 다다오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그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고, 때때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모습을 그에게서 봄으로서 배우고 싶은 점이 많았고 큰 자극이 되었다.
400장이 넘는 그의 자서전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불합리하고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의 철학을 잃지 않고 돌파구를 찾는 그의 모습들이 촘촘히 그려져 있다. 물론 그도 여러 번 실패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도전했기에 오늘날의 안도 다다오가 있는 게 아닐까.
안도 다다오는 여전히 좁은 대지에 예산이 부족한 악조건을 극복하고 짓는 작은 집이야 말로 그에게 있어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고 어려운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무엇보다 그의 건축 커리어라는 작은 세계관뿐만이 아니라 이 지구에 사는 하나의 일원으로서, 인류역사에 존재하는 하나의 일원으로서 어떠한 마음가짐과 생각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잘 보여준다.
나도 그처럼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려운 꿈을 향해 도전하는 청춘 가득한 열정과 이치에 어긋나는 세상에 저항하며 삶의 본질 및 나의 철학을 창조적으로 지켜내는 멋진 힙합 정신과 쌈닭 스피릿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싶다.
청춘 Youth - 사무엘 울만 Samuel Ullman
책에 잠깐 언급되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이다. 안도 다다오를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를 읽고 엄마생각이 나서 말했더니 이미 엄마는 자주 인용하는 시라고 하셨다. 우리 모두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어도 청춘 가득한 삶을 살길 바라며 시의 일부분을 써보았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Youth means a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 덤으로 책에서 좋아하는 그의 말들을 모아보았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면 우선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할 생각만 한다. 실제적인 문제로 어떤 것들이 있을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작은 점을 찍듯이 대처하다 보면 마침내 그것이 면을 이룰 것이고 그게 상응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좌우지간 인생은 재미있어야 해. 업무에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일하면서 살아가게. 감동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성공할 수 없어" - 그를 이끌어준 사지 게이조 씨
"사람의 '생각'은 경제를 초월하는 힘이 된다"
"나의 이력에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아마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적 자질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뭔가 있다면 그것은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강인하게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는 타고난 완강함일 것이다. 자기 삶에서 '빛'을 구하고자 한다면 먼저 눈앞에 있는 힘겨운 현실이라는 '그림자'를 제대로 직시하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용기 있게 전진할 일이다"
"정보화가 발달하고 고도로 관리되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별이 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이 인생의 행복인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참된 행복은 적어도 빛 속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빛을 멀리 가늠하고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몰입의 시간 속에 충실한 삶이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