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반쪽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가. 동독에서 태어나 미국까지 건너간 헤드윅은 그러하다. 사랑과 자유를 향해 온몸을 부딪히며 살아낸 그의 삶은 평탄함과 거리가 멀다. 생물학적 성별이 바뀌고, 다른 이름을 갖고, 국적이 변경되며, 결혼과 이혼을 겪기도 한다. 다양한 종이를 오려 붙인 콜라주처럼, 헤드윅에게는 여러 가지의 정체성이 덧입혀져 있다. 이러한 자신에게 꼭 들어맞는 완벽한 반쪽의 실재에 대한 굳건한 믿음은, 전염성이 강하다. 부족한 면을 모두 채워줄 수 있는 이상적인 누군가를 상상하고 바라게 만든다. 그대가 꿈꾸는 반쪽은 어떤 모습인가.
뮤지컬 <헤드윅>은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록음악과 독백으로 풀어내는 헤드윅의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된다. 헤드윅이 자신을 보러 온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객석의 호응이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 배우에 따라 캐릭터의 노선과 극의 호흡이 완전히 다르고, 심지어 같은 배우가 회차마다 새로운 해석이나 특별한 애드리브를 선보이기도 한다. 텍스트와 넘버가 동일함에도, 헤드윅의 공연은 매번 동일하지 않다. 무대예술의 가장 큰 매력인 일회성과 특수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기에, '헤드헤즈(hedheads)'라 자칭하는 팬덤이 있을 정도다. 이츠학의 소개와 앵그리인치 밴드 반주에 맞춰 화려하게 등장하는 헤드윅의 강렬한 첫 노래로, 극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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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원, The Origin of Love
플라톤의 <향연>에 따르면 태초에 세 가지의 성이 있었다. 등이 붙어 하나 된 두 소년, 해님의 아이. 돌돌 말려 하나 된 두 소녀, 땅님의 아이. 소년과 소녀 하나 된, 달님의 아이. 한없이 큰 이 세상을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힘과 저항이, 신은 두려웠다. 그리하여 꽉 잡은 벼락을 내리친다. 두 쌍의 팔과 두 쌍의 다리, 하나로 된 머리 안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채 함께 붙은 몸 가운데를 잘라내 버린다. 토막 난 몸의 꿰맨 매듭은 죄를 기억하게 하기 위한 배꼽이 된다. 반으로 쪼개져 흩어져버린 해님과 땅님과 달님의 아이들은, 잃어버린 반쪽을 그리워하며 찾아 헤매게 됐다. 이것이, 사랑의 기원이다.
그건 슬픈 얘기 반쪽 되어 외로워진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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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준 이 이야기를 잊지 못한 헤드윅은,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꼭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문한다. 저 사람이 내가 잃어버린 반쪽일까? 혹시나 하는 희망을 걸었던 그들이 그저 억지로 맞물린 퍼즐 조각임을 거듭 깨닫는다. 기대는 실망이 되고, 상처는 외로움을 남긴다. 마음의 한 조각을 내어준 락스타 역시 마찬가지다. 헤드윅은 공연 도중 틈틈이 철문을 열어 길 건너 커다란 공연장의 노래와 함성에 귀를 기울인다. 그 무대 위의 토미 노시스는 헤드윅의 노래를 제 것인 양 부르면서도, 정작 헤드윅은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빼앗고 떠난 그와의 관계를 설명하기 앞서, 헤드윅은 그 이전의 들어맞지 않았던 퍼즐 조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법, The Angry Inch
분단된 독일의 동쪽에서 태어난 한셀은 아빠의 폭력과 엄마의 외면 속에서 자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락앤롤이 유일한 위안이다. 크게 따라 부르면 토마토가 날아오기에, 머리를 오븐에 집어넣은 채로 노래를 듣는다. 논문 때문에 대학에서 쫓겨난 그는, 이곳에 없는 자신의 반쪽이 베를린 장벽 너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동차 보닛 위에 엎드린 채 일광욕을 하며 평소처럼 우울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던 중, 뒤에서 부름이 들려온다. 탐욕스럽게 그를 훑어보던 미군 장교 루터는 구미베어 젤리를 건넨다. 황홀할 정도로 맛있는 젤리를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며, 이것이 바로 권력의 맛임을 이해한다. 그 달콤함을 뿌리치지 못하고 슈가대디에게 휘감긴다.
한셀은 지긋지긋한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인 루터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결혼할 사람이라며 미군 남자를 데려온 아들을, 헤드윅 슈미츠는 무표정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바라본다. 엉망으로 쓴 가발을 고쳐 씌워주며,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여권과 카메라를 가져오게 한다. 여권의 사진을 바꾸고 이름을 사용할 수 있지만, 신체검사는 피할 수 없다. 루터가 말한다. 떠나기 위해서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고. 엄마는 말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고. 의미를 이해하거나 의사를 표시할 겨를도 없이, 한셀은 차디찬 수술대 위에 홀로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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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건 남은 건 앵그리인치
종용된 육체적 거세는 정신적 거세까지 강제한다. 생물학적 성별과 함께 한셀의 정체성은 완전히 부정당한다. 성전환 수술이 끝나고 상처는 아물었지만, 남성의 페니스가 있던 자리는 여성의 생식기로 대체되지 못한다. 두 다리 사이에 남겨진 것은, 1인치 살덩이. 여성도 남성도 아니라는 뚜렷한 증거의, 앵그리인치. 더 이상 남자도, 그렇다고 여자도 아닌 존재로, 헤드윅은 탄생한다. 엄마가 만들어준 가짜 가슴과, 애인이 만들어준 가짜 여권과, 의사가 해준 가짜 전환 수술 끝에 남은 앵그리인치를 지닌 채, 헤드윅은 마침내 동독을 떠난다.
우느니 웃었습니다, Wig In A Box
그토록 바라던 자유의 나라 미국에 도착했지만, 헤드윅의 결혼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배달부와 눈이 맞아 도망가버린 남편은 자신의 반쪽이 아니었다. 이동식 트레일러 안에 혼자 앉아, 작은 텔레비전 화면 속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바라본다.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지만, 이내 그가 따뜻한 유고슬라비아로 떠났음을 떠올린다. 완벽하게 홀로 남겨진, 이혼한, 페니스 없는, 여성.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헤드윅은 처음으로 공포라는 감정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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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엔 메이크업 카셋 테잎 노래
이 예쁜 선물 가발을 쓰면
그러나 헤드윅은 까마득한 낙담에 잠식되지 않는다. 우는 대신, 웃는다. 커다란 변화는 낯설고 생경하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일상이 된다. 변해버린 모습과 상황을 받아들이며, 헤드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처참하게 상처 입은 내면은 멋진 가발과 화려한 화장으로 포장된다. 휘황찬란한 가발을 쓰면 여왕부터 펑크락 스타까지 누구든 될 수 있다. 형형색색의 짙고 반짝이는 눈화장을 하면 지치고 외로워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숨길 수 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멋진 자기 자신을 인정한 헤드윅은 이제 다시 무력한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선언한다.
공연 내내 옆에서 돕고 있는 이츠학은 헤드윅의 현재 남편이다. 여장남자이자 훌륭한 실력을 지닌 디바인 그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동유럽에서 인종청소를 당할 위기에 처한다. 미국 국적을 지닌 자신과의 결혼이 자유와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을 잘 아는 헤드윅은 말한다. 떠나기 위해서는 뭔가를 남겨야 한다고. 루터와 엄마가 자신에게 행했던 폭력을, 고스란히 이츠학에게 행사한다. 이츠학은 다시는 가발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그와 결혼한다. 드랙퀸이자 디바인 그의 정체성은, 남편이자 백업 코러스로 왜곡되고 제한된다.
다시 음악, Wicked Little Town
헤드윅은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락앤롤과 재회한다. 밴드를 구성하고 작은 바에서 노래를 부르며, 잊고 지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발산한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도 병행하는데, 그중에는 베이비시터도 있다. 어린아이를 돌보러 간 집에서, 헤드윅은 토미를 만난다. 우연한 몸의 대화 끝에 그에게 명함을 하나 건네고, 토미는 닥터 에스프레소 바를 찾아온다. 헤드윅은 자신이 처음으로 작곡한 곡을 소개한다. 예수 신봉자에 시원치 않은 음악을 하던 토미에게, 아름답고 섬세한 헤드윅의 음악은 충격적이다. 이를 계기로 헤드윅은 토미의 다락방에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두 사람은 음악을 통해 빠르게 가까워진다.
길 잃고 헤매는 당신 따라와 나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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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윅은 음악적 지식이 없다시피 한 토미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어리고 철없는 그에게 그리스어로 지식이라는 뜻의 이름도 지어준다. 토미 노시스(Gnosis). 그들의 콜라보는 꽤 잘 나갔고, 음악도 무궁무진하게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이웃 트레일러에서 사흘째 들려오는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노래를 들으며, 헤드윅은 토미의 눈썹 정리를 해주고 이마에 은색 십자가를 그린다. 토미가 며칠 동안 씨름하던 곡의 음정을 정확히 짚어낸 바로 그때, 세상이 뒤집힌다. 헤드윅은 벼락같은 확신에 사로잡혀 토미야말로 제 반쪽이라 확신한다. 처음으로 키스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는 순간, 헤드윅은 제 다리 사이에 토미의 손을 집어넣는다. 앵그리인치가 있는, 그곳에.
황홀한 절정은 죽음 같은 침묵으로 가라앉는다. 앵그리인치에 닿은 손을 뿌리치듯 떼어낸 토미는, 뭐가 무섭냐고 묻는 헤드윅의 시선을 피하며 횡설수설 변명한다. 기어코 도망쳐버린다. 드디어 반쪽을 찾아냈다는 희열은,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하며 잔인한 절망이 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것만 받아들이며, 그 이외의 것은 배제하고 혐오한 토미는, 온몸으로 사랑하며 제 모든 걸 내보이려 했던 헤드윅을 잔인하게 상처 낸다. 그렇게 헤드윅은 영혼으로 교감하고 공유한 음악마저 도둑 맞고 또다시 홀로 버려진다.
두려워 말고 건너요, Wicked Little Town Reprise
/스포일러/ 헤드윅은 날카로운 비명처럼 락을 토해내며 절규한다. 아니, 통곡한다. 누더기 같이 기워지고 난도질당한 상처투성이 몸을 뒤틀며 고통스러워한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만신창이가 되어 분노를 쏟아낸다. 아니, 끝없는 비통함에 잠겨 몸부림친다. 가발을 벗어 내팽개치고 옷을 벗어던진다. 자기 방어 기제로 겹겹이 뒤집어썼던 화려한 외면을 찢어버리자, 위태롭고 외로운 본연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가슴에 넣어뒀던 두 개의 토마토를 꺼내 손으로 짓이기고 내리친다. 슬픔, 좌절, 비참, 고독. 수많은 감정들을 온몸으로 내뿜던 헤드윅은, 끝내 무너지듯 쓰러진다.
Goodbye wicked little town
휘몰아치던 온갖 감정들은 고요하게 침잠한다. 정적은 무대를 넘어 객석까지 완전히 내려앉는다. 활짝 열린 철문 너머에서 환한 빛과 함께 토미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는 그의 부탁에, 까마득하던 환호성이 점차 사그라든다. 헤드윅은, 이마에 실버 크로스를 그린 토미 노시스는, 스탠드 마이크 앞에서 노래를 시작한다. 헤드윅이 처음으로 만든 곡이자, 토미를 위해 부른 곡. 헤드윅이 토미에게 건넨 말은, 약간의 개사를 거쳐 헤드윅에게 되돌아온다. 용서를 구하는, 위로를 건네는, 서로를 놓아주는 마음은, 음악으로 전달된다.
손을 들어, Midnight Radio
공기를 무겁게 채우던 짙은 침묵마저 사라지고 텅 비어버린 무대. 비척이며 일어난 헤드윅은 천천히 바닥에서 마이크를 줍고 가발을 들어 가만히 바라본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한다. 가발을 다시 씌워주려는 이츠학의 손길을 거부한다. 그리고 말한다. You are free.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권력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츠학에게 가한 억압뿐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옥죄고 있던 속박까지 끊어진다. 헤드윅은 망가진 채 견뎌온 수많은 시간을 마침내 마주하고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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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말아 포기 말아
헤드윅은 화려한 가발과 예쁜 옷을 입고 우아하고 멋지게 재등장하는 이츠학을 바라본다. 복합적으로 뒤섞인 감정을 얼굴 가득 담아내며 웃어 보인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마주했기에, 헤드윅은 비로소 오롯이 자유롭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서서 서로의 손을 꽉 마주 잡고 함께 노래한다. 그리고 헤드윅은 마이크를 내려놓는다. 무대를 이츠학에게 온전히 넘겨준 채, 홀로 퇴장한다. 천천히 문이 닫히고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공연이 끝나도 삶은 계속되기에, 문을 나선 헤드윅은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낸다. 때로는 해피엔딩으로, 때로는 새드엔딩으로. 어떤 결말이든, 음악만은 결코 빠지지 않으리라.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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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은 배우의 표현과 관객의 수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정답을 단언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고민하고, 느끼는 만큼 이해하며, 원하는 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극은 다채롭게 확장된다. 헤드윅이 던지는 본질적인 질문과 권유는 동일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전부 다르다. 그대는 반쪽을 찾았는가. 성별이나 젠더와는 무관한, 자신만의 고유한 사랑을 찾아보라. 이를 위해서 스스로를 올곧게 마주해야 하리라. 따라서 다시 묻는다. 그대가 찾아 헤맬 반쪽은 어떠한 모습이라 믿는가.
헤드윅 (2017)헤드윅 Hedwig
†원작(대본): 존 카메론 미첼
†원작(작곡/작사): 스티븐 트래스크
†한국제작: 쇼노트
†한국공연: 2005(초연) ~ 2019(예정)
†공연시간: 130분 (배우에 따라 차이 있음)
†관람등급: 만 15세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