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맙소사"

하루 몇 번 뭔가를 삶아 팔게 되다니!

by 지별
내게 '삶기'는 '삶'만큼이나 어렵다.


시금치 나물은 내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요리이다.

너무 삶았거나 덜 삶았거나 짜거나 싱겁거나 참기름이 너무 많았거나.


남들은 제일 쉬운 요리라는데,

소금, 국간장, 매실액, 참치액, 된장, 고추장, 두부.

휙휙 데쳐 어디에 무쳐도 다 맛있던데


난 적정량의 물에 담근 뒤 적정시간 뒤에 꺼내어 적정량의 양념을 하고 적정량의 참기름으로 적정히 조물조물하는 이 요리를 적절하게 해낸 적이 없다.


부끄럽게도 전업주부 14년간 말이다.




시금치 삶기도 어렵던 내가 하루 몇 번 뭔가를 삶아 팔게 될 줄이야.

예측 불가능한 삶을 타피오카 펄과 함께 삶아 내며 "맙소사"


'삶은 맙소사'와 '삶은 타피오카 펄'을 끓이고 뜸 들여 찬물에 헹구며 식혀 준다.
"쫀득한 하루가 시작되었어요"


세찬 물줄기 따라 생각도 흘러간다.


딱딱하게 얼어 있던 마음도 팔팔 끓는 물에 넣어 삶아 주고

팔팔 끓어오르며 말랑해진 마음을 더욱 쫀득해지라고 뜸을 들인 뒤

삼키기에 뜨거운 그 마음, 더욱 탱글탱글하게 찬물에 한참 식혀 낸다.

냉동 펄이 버블티 한 잔의 재료가 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내 마음의 온도를 함께 바라본다.




오늘의 맙소사


쫀득해진 펄을 드실 분들의 달달한 순간을 생각하며 시럽에 담그는데,


- 아줌마~~!!


예쁜 1학년 단골 아가가 들렀다.

- 단풍잎이 예뻐서 아줌마 주려고 왔어요.

하며 단풍잎 같은 손으로 작은 단풍잎을 올려둔다.

"어머나 너무 예뻐서, 아줌마 사진 찍어 글 써야겠다!"

- 맙소사! 너어~무 예쁘다. 어떻게 이렇게 예쁜 잎을 찾았어~

예쁜 선물 받았는데 어쩌지!!


이번 주 세 번째 선물이다.

빼빼로데이라며 전해준 빼빼로, 직접 만든 귀여운 쿠키

"엄마도 안 주고 사장님께 드린대요"

가게에 들르지 않더라도 문 앞에서 우렁차게

- 아줌마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해준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며 멈추어 선 그 아가 덕에 내 자리가 감사하다.


막 삶아낸 펄에 감사한 초코를 담아 가을을 선물해준 아가에게 선물한다.


나와 가족을 생각하며 결심한 이 7평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잠시의 위안이 되고 잠시의 휴식이 된다고 느껴지는 순간.

참말 감사하다.


삶기는 어렵던 내가 삶기로 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계획하지 않았던 이유로 이 공간이 행복한 것처럼

예측하지 못했던 일들로 가득한 삶.

너무 고민할 것도 너무 소심할 필요도 없겠지


감사함으로 시작해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 엄마 오늘은 옷에 볼펜이 묻어서 영어 학원 못 갈 것 같아!

학원 못 가는 이유도 다채로운 다음 맙소사가 등장한다.


선물 받은 쿠키와 화를 함께 씹어 삼킨 뒤, 웃으며 말한다.

"어 우리 준우 초코 줘야겠다. 그럼 학원 가고 싶어질 거야!"


"펄 많이 줘야 돼!"

괜히 한번 보채고 헤헤 거리는 귀여운 맙소사


맙소사로 가득한 삶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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