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 아빠, 비밀이 있습니다.

버블티 가게 습격 사건

by 지별
살짝. 긴장하게 되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코와 입을 모두 가린 복면 같은 마스크,

눈이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 라이더 재킷.

오토바이 주차 후 작은 가게를 큰 걸음 몇 번 만에 입장하신다.

키오스크 앞에서 어디론가 전화를 거신다.


- 뭐 주문하라고?

- 사이즈업?


한참 통화하신 뒤 주문표가 출력된다.

쿠키 초코 버블티, 더블사이즈업.


- 고객님 지금 주문하신 건 따님 말씀보다 더 커요.

이건 취소하고 다시 결제 도와 드릴게요.


- 에이 뭐 그냥 큰 걸로 줘요. 먹을 때 크게 먹어야지!


서글서글하면서도 우렁찬 복식호흡으로 가게가 가득 찬다.

조금 전 살짝 긴장했던 마음이 죄송해진다.

비범한 외모, 당당한 말투에 <버블티 가게 습격 사건>을 촬영하는 기분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포스터에 함께 서있는 기분

배달 대행업체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 고객님께서는

- 아니 여긴 왜 배달을 안 하나. 옆에 다 하는데!

- 장사 잘되면 안 해도 되지 뭐어. 손님 많던데!

다시 기억해도 웃음 터지는 재밌는 말투로 대화를 잠시 나누시다 퇴장하신다.



며칠 뒤,

다음 장면도 비슷한 대사로 시작한다.


- 뭐 주문하라고?

- 사이즈업? 펄 추가하라고?


우리 딸이 자주 오던데!” 와 주문하시는 메뉴에서 따님이 떠오른다.

찹쌀떡처럼 뽀얗게 화장을 했던 귀여운 학생.


- 며칠 전 졸업사진 찍는다고 화장 예쁘게 하고 온 학생 있었는데! 그 친구인가 봐요!


놀라신다. 호탕함이 잠시 주춤했던 것 같다.


- 어! 나랑 안 닮았는데! 얼굴도 이렇게 다 가리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어요?

- 네. 시원시원한 성격이 닮으신 것 같아요!


음료를 만드는 동안 잠시 말씀을 멈추신다.

"음료 드릴게요~” 하는데 이전보다 다소 잔잔한 말투로 말씀하신다.


- 우리 딸은 몰라~

- 네?

- 우리 딸은 내가 이거 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얼굴도 다 가리는데. 아는 사람 볼까 봐.

딸한테는 비밀이야.


- 넵! 비밀 지킬게요!

순간. 눈물이 올라오려는 것을 꾹 참으며 나도 호탕하게 대답한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다.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꾸욱 무는 모습을 숨길 수 있어서.


그날 이후, 가게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시면 벌써 마음이 뜨겁다.




이 뜨거움의 반전은,

따님도 아빠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


복면 아빠의 비밀을 들은 후 따님은 올 때마다 더욱 반가운 손님이 되었다.


우리 아빠한테는 오늘 온 것 비밀!!


이 비밀은 또 어떤 뜨거움인가 하며 울컥 차오른 마음으로 음료를 만드는데,

뒷자리에서 등 콕콕 찔러 속삭이던 친구의 표정으로 이야기를 한다.


맙소사! 아빠 몰래 친구 게임해주고 사 먹는 버블티란다.


복면 쓰신 아빠를 떠올리며 마시던 뜨거운 샷 추가 라떼에,

킥.킥.

향 재미있는 바닐라 시럽 두 펌프 가득 추가되는 순간이다.




1500원 아메리카노, 1900원 버블티를 파는 7평 작은 공간.

찾아주시는 감사한 분들 덕에

이 작은 공간은 구석구석 미소가 담긴 책이 되어 가고 있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는 날도 있고 사랑과 우정, 가족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도 있다.

다툼과 화해 장면에 본의 아니게 출연하게 되는 때도 있고 학생, 취업준비생, 신혼 때의 나로 돌아가기도 하며 '열심'에 대해 물음표와 느낌표를 반복하는 때도 많다.


언젠가 풀어야 할 문장이 생겼을 때,

지금 이 책을 펼쳐보며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복면 쓴 아빠와 찹쌀떡 따님이 선물한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천천히 소리 내어 읊어 본다.

비이. 미일.


비밀이 이렇게 따뜻하고 달달한 단어였구나!!


나도 오늘의 비밀을 계획하며 전화를 든다.

"시현아 수업 마쳤으면 준우랑 나와봐~ 왜냐고? 비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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