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S/-120)
2019년 5월 29일, 23:30
잠든 아내를 깨우지 않는다.
그녀에게 배려였기를 바란다.
편도 출퇴근 소요시간 평균 1시간 30분
마을버스, 지하철, 지하철, 버스
환승의 구간 총합 약 10분(?) 정도를 빼고 1시간 20분의 시간은
듣기, 보기를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맘껏 할 수 있는
필연적으로 허가된 덤의 시간이다.
요즘 DTS를 준비하고 있기에
오가는 길 말씀 영상을 주로 찾아 듣는다.
OOO 목사님, OOO 선교사님 등
나름 알려진 분들의 말씀을 듣고 듣다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지면 소위 멍을 때리게 되기도 한다.
CGN tv SOON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발견했다.
목사님, 선교사님의 말씀 외에 연예인 분들의 신앙 나눔까지
핵심 메시지를 3분 안팎으로 편집하여 게시된 영상이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몇 개의 메시지를 들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참 믿음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순간들을 경험했다.
버스, 지하철 할 것 없이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나의 옆과 뒤에는 누군가 있게 마련이다.
말씀을 듣고 보는 내 손과 태도가 주 앞에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바란다고
고백하고 간구하던 내가,
정결한 믿음을 구하던 내가,
말씀을 듣고 보는 그 순간의 내 모습을
나의 옆과 뒤의 그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부끄러워하고 있던 것이다.
재생되는 영상 화면이
누군가의 시선에 걸리지 않게 휴대폰을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이고 덮고...
왜?
왜지?
난 왜 이러는 거지?
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면
더 깊고 넓은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저 질문에 맞닥뜨려졌던 그 순간 짧은 성찰이 내게 준 답은
참으로 어리석게도 이렇다.
'믿음 없는 자, 믿음 없기에 지속적으로 믿음과 위로와 답을 찾는 자'
였다.
믿음 없기에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믿음 없는 자도 들어 쓰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
저 상황 또한 종 된 자로서의 겸손한 엎드림 일 수도 있는 것인데
나는 그 순간에도 믿음과 은혜를 부여받고 감사하기보다
무언가 나의 안정을 위한 답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히 나의 이기적 자아를 위한, 나의 안정을 위해...
부끄럽다.
믿음의 척도라는 표현을 쓸 수 있기는 한지 모르겠지만
오늘 나의 모습은
즉, 내 일상에서 드러나는 모습, 행위, 말 등은
나의 믿음을 드러내는 분명한 척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
부끄러움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