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보가 썼어> 시리즈 9화
이사를 앞두고 있다.
원했으나 일찌감치 원치 않아야 했던 일이 되어버렸던
현재의 집 거주 생활은 2년의 시간을 꼬박 채우고야
벗어나게 되었다.
85m2의 내 생애 가장 넓은 집에 살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딱 반절 넓이의 투룸으로 옮긴다.
다들 그랬다.
미니멀리즘의 시도, 실천은
애초부터 그렇게 살아보고자 마음먹은 사람보다는
필연적으로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여 맞추려다 보니 시작하게 되는 거라고.
이 물건, 저 물건
버릴 것들을 구별하고, 중고장터에 내어 놓고.
평소에 수도 없이 협박해 왔던
아이들의 장난감 버리기가 이젠 협박이 아닌 실제가 되었다.
큰 녀석 은조를 부르고,
꼭 남기고 싶은 인형을 다섯 개만 고르라 했다.
골랐다.
나머지는 비닐봉지에 싸였고, 곧 버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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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자주 혼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큰 소리를 내거나 체벌을 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어느새 훌쩍 커 내년이면 학교에 가게 되는 은조는
아빠를 좋아한다.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정황은 소개할 수 있으나 생략한다.
그런 은조가 오늘 무심코 흘린 말
그리고 뚜렷이 보여준 행동 등에서
좋아는 하는 것이 분명하나 그와 함께 무섭다 여기는 아빠가 되어버림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조는
어느새 커버린 몸만큼이나 생각과 인지의 범위가 넓어진 것과 더불어,
이사를 가는 과정에 일어나는 위와 같은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
'내 거야~'를 자주 외치던 이 녀석의
쉬운 받아들임이
잠자리를 앞두고 집 정리를 바삐 마무리하던 중이었음에도
아빠의 마음에 서글프게 닿고 있었다.
아직 어리광이 남아있긴 하고,
더 오랜 시간 남아 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은조의 그 한순간의 수용은
그렇잖아도 현실을 깊이 묵상하느라 마음 부여잡기가 고된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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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인 나는
자녀와의 관계를 넘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다.
'늘 고맙고 미안하기만 한 삶을 사는구나'라는..
그래도 부모는,
자식에게만은 늘 미안해하며 사는 것이 필연적임을
거부감, 저항심 없이 인정한다.
그래도 가끔 한 번은
참 좋은 부모, 아빠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순간을 가져보고 싶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랑한다. 내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