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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Sep 04. 2017

2인용 자전거, 첫 페달을 밟다.

'아이슬란드'로의 결정. 늘 그렇듯, 계기는 사소하게 찾아온다.

대화와 설득, 밟아야 할 페달이다.



결혼일자가 잡히자, 깨달은 사실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찰흙 두 개를 뭉치는 것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 하나가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서로 대화를 통한 설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결혼할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대화'라는 의사전달 과정이 없다면 상대방의 의중을 쉽게 파악하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를 맞춰주길 바라고,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이 것은 2인용 자전거의 뒷자리에 앉아 앞사람이 밟아주는 페달에 기대어 목적지까지 가는 것과 같습니다. 앞사람에게 2배 이상의 부담을 강요하면서 말입니다.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것은 언젠간 터져버릴 휴(休) 화산과도 같습니다. 목적지까지 두 사람이 가장 힘들이지 않고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둘이 함께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것입니다. 대화와 설득은 서로를 위해 지는 짐이자, 배려이며, 노력입니다.


우리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부터 첫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토요일 데이트는 카페에서 일주일간 연구하고 준비한 결과물을 서로에게 공개하는 시간입니다. 여자 친구는 예식장과 드레스를, 저는 신혼여행지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여자 친구가 선택한 예식장과 드레스는 하나같이 특별한(Unique) 것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진 큰 이견이 없이 순탄하게 이어져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순조롭게 굴러가던 페달이 멈춘 것은 신혼여행지 선택 과정에서였습니다.


"나는 다 싫어. 나도 남들처럼 몰디브 같은 휴양지에서 쉬고 싶어."


하하, 정말 난감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동조해주면, 그녀도 저에게 쉽사리 동조할 것이라는 1차원적인 기브엔 테이크(Give&take)를 생각하고 있던 제가 어리석었던 것이겠죠.

제가 내놓은 여행지는 이탈리아, 체코, 그리고 프랑스였습니다. 셋 모두 유럽 국가를 선정한 이유는 첫 번째로 여자 친구가 아기자기한 유럽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고, 두 번째는 유럽의 아름다움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직장 상사 덕분입니다. 설명으로만 듣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저도 느껴보고 싶었달까요.


하나, 여자 친구의 생각은 저의 생각과 달랐습니다.

"... 이니까, 나는 이번에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갔으면 해 휴양지 가보고 싶겠지만 양보해줄 수 없겠니?"

      No.

"휴양지는 다음에 또 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유럽 여행을 그렇게 흔한 기회가 아니잖아, 어때?"

      No.

한결같은 대답과 조건부로 멈추어진 페달은 무언(無言)의 협박과도 같았습니다. 한 번만 더 거절당했다간 오늘의 좋은 분위기는 모두 물 건너갈 판이었습니다. 스무고개의 마지막만을 남겨둔 초조한 기분이랄까요. 저희에겐 잠시 각자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때론 기름칠도 필요하다.


페달이 멈춘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상대가 내 맘을 쉬이 헤아려주지 않음에 대한 서운 함입니다. 쉽게 목적지까지 가려던 욕심에 대한 벌이랄까요. 우린 말없이 스마트폰과 노트북(Laptop)으로 신혼여행지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페달은 잠시 멈추었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다시 움직이게 할 방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각종 여행사의 웹사이트를 통해 추천 여행지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웅장한 건축물들과 아름다운 산과 호수, 그리고 바다가 펼쳐진 다양한 사진들은 제 눈길을 끌었으며, 다른 여행자들이 적어둔 재미난 후기들을 읽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제 눈길은 한 여행자가 촬영한 동영상에서 멈추게 되었습니다. 캄캄한 밤, 숲 속에서 한 여성이 펄쩍펄쩍 뛰며 춤을 추는 장면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1인 강강술래와 흡사해 보였습니다. 제가 가진 일반적 상식으로는 한밤중에 펄쩍 뛰는 여성의 동영상을 계속 시청하는 것이 제 스스로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X 버튼을 눌러 재생을 종료하려는 찰나 작은 호기심이 맘 속에 일었습니다. 왠지 재생을 종료하면 곧 밝혀질 한밤중 그녀가 춤추는 이유를 놓칠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뒤 카메라 앵글이 돌기 시작하더니 하늘을 향했습니다.


순간 아, 하는 작은 탄성이 나와버렸습니다. 호시탐탐 제 눈치를 살피던 여자 친구는 이때다 싶었는지 잽싸게 다가왔습니다. 영상 속 하늘엔 오로라(Aurora)가 선명하게 살아있는 듯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검은 밤하늘에 녹색 형광 빛 뫼비우스 띠가 여러 개 교차하여 춤추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상을 보는 저희도 처음 보는 기이한 모습에 넋을 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이럴진대 영상 속 여성은 얼마나 즐거웠을까요. 업로더가 영상 하단에 언급한 영상의 촬영지는 바로 아이슬란드였습니다.  


여자 친구는 아름다운 오로라와 태초 자연이 숨 쉬는 '아이슬란드'로 신혼여행을 가는 것에 동의하였고,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그렇게 결정되었습니다. 너무도 사소하게.


하지만 멈추었던 페달을 다시 원활하게 움직이려면 약간의 기름칠이 필요했습니다. 혹여라도 지금의 선택을 무를 수 없는 확정적인 무언가가 말입니다. 저는 몰래 숨겨두었던 카드를 꺼내기로 했습니다.  

"휴양지가 아닌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겠다는 나의 의견을 따라주었으니, 내년에 휴양지 1곳을 데려갈게. 어때?"

제가 제시한 윈윈 제안서에 그녀는 크게 감동을 받았고, 신혼여행지는 아이슬란드로 확고하게 결정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페달은 다시 힘차게 굴러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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