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용 Sep 08. 2017

별을 따라 여행하기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며


저는 여행을 갈 때면 별을 따라가곤 합니다. 반짝이는 별은 방향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선조(Ancestor)들은 밤하늘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성경에도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하늘의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찾았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 지인들에게 '별을 따라간다.'라고 하면 '네가 한국서도 하던 짓을 바다 건너서도 하는구나'라고 할 겁니다. 제 취미 중 하나는 천체관측이거든요. 물론 바쁘다는 핑계로 천체망원경이 케이스에서 나와본지도 2년이 넘긴 했지만요. 아쉽지만 오늘 말씀드리는 별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 여행지도에서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책상 정중앙에 새하얀 A4 종이 한 장과 지도를 펴놓습니다. 특별한 지도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행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면 충분합니다. 좌측엔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노트북을, 우측엔 연필과 노란색 별표 스티커 뭉치를 준비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행지의 가보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체험해보고 싶은 것을 골라서 모두 A4에 차근차근 적어봅니다. 흔히 말하는 버킷리스트(Bucketlist)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뒤 준비한 지도 위에 버킷리스트를 이룰 수 있는 위치에 별표 스티커로 하나씩 붙입니다. 모두 붙이셨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나 봅시다. 지도에서 노란 별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길이 보이실 겁니다.

네, 이쯤 되면 감이 오실 겁니다. 별을 따라 여행하기 지도에 붙여둔 노란색 별표 스티커들이 만들어내는 별자리를 따라 여행하는 것입니다.


별자리가 형성된 지역이 이번 여행 경로입니다. 이 경로를 따라서 숙박지를 결정하고, 이동수단을 결정합니다.

이번 아이슬란드에 최초에 제가 붙인 스티커는 총 53개였습니다. 하나둘 붙이다 보니 섬 중앙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이 스티커로 가득했습니다. 별자리로 이어보니 섬을 한 바퀴 도는 아이슬란드 일주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일정대로 여행하려면 부족한 일조시간 (5~6시간) 탓에 야간 운전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눈에 실핏줄 돋아가며 섬을 일주해야 하는가?


과감하게 별 절반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남과 북을 역슬래시( \ )로 나누어 북단은 아예 포기해버렸습니다. 이동 소요시간에 비해 별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은 케플라비크 공항이 위치한 섬 서부에서 남동부까지만 왕복합니다. 연필로 A4에 적어둔 버킷 리스트 절반에 취소선을 그었지만 현실적인 신혼여행을 준비한 것 같아 맘은 뿌듯합니다.


어쩌면 동떨어진 별이 나타날 때도 있습니다. 여행 경로와는 거리가 있지만 꼭 놓치기 싫은 매력적인 별이 바로 동떨어진 별입니다. 이번 제 여행에서 요쿨살론(Jokulsalon)은 동떨어진 별이었습니다. 이 날은 오전부터 3시간 이상의 빙하 트래킹(Glacier trekking) 액티비티를 예약해두었기 때문에, 직후 요쿨살론을 향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무리한 일정이었습니다.

Jokulsalon

하지만 수천 년 된 빙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경관과 얼음 호수 주변을 걷는 것은 저와 아내에게 잊을 수 없는 하루를 선사했습니다. 아내는 요쿨살론 호수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호수를 앞두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만약 요쿨살론을 다녀오지 않았다면 저는 두고두고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여행 경로를 먼저 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행 경로가 결정된 채로 별을 찾다 보면 '동떨어진 별'이 발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배운 크레파스로 색칠하는 방법은 외곽을 먼저 따라 그린 후, 내부를 칠하는 것입니다. 외곽선으로 크레파스 선이 삐져나오지 않아, 깔끔하게 그릴 수 있지만 외곽선 형태로로 그림은 한정됩니다. 여행을 제한된 시각으로 보는 이유는 여행경로를 먼저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별을 따라가는 여행은 선택과 집중의 과정을 거친 별을 중심으로 하는 여행입니다. 때문에 후회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여행입니다. 여행을 다녀온 뒤 아이슬란드 북부를 포기한 것이 아쉽지 않느냐고 물었던 지인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망설임 없이 '그렇지 않다.'라고 답해주었습니다. 저는 주어진 여건 내 최고의 여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별을 따라 간 아이슬란드,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인용 자전거, 첫 페달을 밟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