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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Sep 15. 2017

첫 번째 별, 가장 멋지게 출발한 여행

오늘 두 가지 여행을 떠났다. 결혼, 그리고 아이슬란드.

누구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목표 하나쯤은 있었을 겁니다. 일전에 회사 후배들의 연수 시절에 찾아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인생 목표가 뭐예요?


회사 선배라는 생각에 조금은 무겁게 생각한 탓일까요. 제가 들었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저는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이 회사의 CEO (Chief executive officer)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그다음은요?


제 질문이 너무 어려웠을까요? 제 질문에는 결국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전 단지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궁금해 되물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처음 본 선배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얼어붙었을 것입니다.

저라도 그랬을 테니깐요. 잠시 더 답변할 사람이 있는지 눈치를 살핀 뒤 제 목표를 이야기해보기로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 대답을 들은 후배님들은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습니다. 탄성의 의미는 아마도 '겨우 이거 물어보려 한 거야?'라는 생각은 아닐 겁니다. 제 인생 목표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제 인생이 한 편의 책이라면 책 마지막 장에 한 줄로 쓰인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처럼 말이죠. 결혼은 제 인생 목표를 이루는 첫 번째 수단입니다. 여행 이야기를 하려는데 왜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하냐고요? '별을 따라간 아이슬란드'는 결혼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첫 번째 별은 바로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거기 좀 서보세요. 신랑, 신부 쳐다보시고요. 네 좋습니다.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주세요"

저희를 향해 바라보는 거대한 카메라와 렌즈들, 그리고 사진사들의 다급한 외침에 기계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모델처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제 머릿속의 생각이 일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얀 정도가 아니라, 제가 누군지를 잊을 지경입니다. 숱한 무대 경험에 정말 0.1도 긴장 안 할 줄 알았건만, 큰 오만이었습니다. 결혼식 전후 모든 과정은 누군가의 지시에, 또 누군가의 외침에 그저 반응했던 시간입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따져볼 겨를 없이 말입니다.


제 뒷목과 양 팔, 그리고 두 다리엔 누군가의 손가락에 연결된 흰색실이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제 앞의 하객들은 이 극을 보러 온 손님들 같습니다. 이 것은 순서와 각본이 공유된 꼭두각시 인형극이 분명합니다. 주례 목사의 질문이 단답형임에 이리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네" 한마디만 기억하고 있으면 이 모든 극을 끝낼 수 있으니까요. 간혹 "아니오"를 대답하는 분은 정말 대단한 용기와 집중력을 가지신 분입니다. 저는 그러히 못했습니다. 의식 없이 이끌려 다니던 제가 정신을 차린 것은 주례 목사님의 마지막 질문에서였습니다.

신랑은 신부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하겠습니까?


결혼식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입니다. '왜 대답이 즉각 안 나오지?' '저 형식적인 질문을 답하기가 어려워?' '이 결혼 문제 있는 거 아니야?'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바타가 접속을 끊은 듯 제 의식이 돌아와 상황을 인지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고, 저는 정말 파뿌리를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실험 결과를 들은 적 있습니다. '제가 지금부터 질문을 할 테니 절대로 분홍 코끼리만 상상하지 마세요.'라고 묻고, 피실험자에게 결과를 물어보니 대부분이 머릿속에 분홍 코끼리를 떠올렸다 라는 실험입니다. 머릿속 그림이 녹색 파 줄기를 따라 내려왔지만 파뿌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시간이 걸렸을 뿐, 제 다짐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네."

이것으로 신랑과 신부가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오늘 하루 10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의 행진에 머리 위론 꽃잎이 날렸고,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습니다. 어찌나 꽃잎이 많던지 하객들 사이로 난 중앙의 작은 길이 마치 '꽃길'처럼 느껴졌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오늘만큼 박수받을 날이 많을까요. 그런데, 즐겁기만 할 줄 알았던 제 기분이 묘합니다.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데자뷔 현상을 겪은 것같이 정말로 묘합니다. 이전에 느껴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이 기분, 아내의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걸으며 기억해내려 애쓰기 시작합니다. 꽃길의 끝, 거대한 문 앞에 서고 나서야 기억이 납니다. 여행, 여행을 떠나는 날, 인천공항 앞 영종대교를 건너며 느끼던 기분입니다. 다리를 건널때 마다 생각합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일상을  벗어나 늘 그려왔던 꿈이 현실이 되는구나' 라고요. 저는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모두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출발한 오늘의 여행은 가장 멋지게 출발한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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