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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Sep 17. 2017

지구를 거꾸로 돌다.

11시간 만에 두 번째 맞는 하루.

오후 10시 10분, 공항 승차장은 꽤나 한산합니다. 도로 한 차선에 줄지어서던 리무진 버스가 없습니다. 택시들도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차량 주차장은 텅 비었습니다. 승차장을 비추는 가로등만 켜져 있을 뿐입니다. 그런 기분 있죠. 늘 복작거리던 가게가 그날따라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 느끼는 낯 섬. 왠지 영업 안 하는 날에 잘못 온 것만 같은 기분요. 이런 늦은 시간엔 처음 오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잘못 왔나?


이 시간에 출발하는 항공편이 많진 않나 봅니다. 간판 불이 꺼진 항공사 카운터 수가 더 많아 보입니다.

"K... K..." 거대한 전광판을 위아래로 훑어봅니다. 두세 번은 훑고 나서야 KL 856 다섯 자를 찾았습니다. KLM 항공사, H 카운터로 제가 선 5번 게이트 근처입니다. 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카운터엔 벌써 스무 명이 이미 줄을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기다릴만합니다. 그런데 괜스레 불안해집니다. 사전에 웹 체크인을 하지 않았거든요. 물론 오전에 KLM 에 전화해봤었습니다. 하지만 특가 항공권은 사전 웹 체크인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어쩐지 싸더라니, 특가 항공권이었단 건 오늘 알았네요. 줄 서는 내내 동떨어진 곳으로 자리배정받으면 어쩌나 하는 맘뿐이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승무원이 웃는 미소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혹시 저희 좌석이 떨어지나요? 붙여주시면 안 될까요? 신혼여행이라서요"

다짜고짜 던진 질문에도 승무원은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분하게 답변했습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고객님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친절한 승무원님 덕에 불안한 마음이 확 가십니다. 좌석 안내를 받은 후에도 질문은 이어졌습니다.

늦은시각, 한산한 인천공항

"고객님, 짐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으로 보내드릴까요. 아니면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으로 곧바로 보내드릴까요?"

승무원은 수십 번 물어본 듯 자연스러웠습니다. 그에 비해 제 대답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에... 어?... 곧바로 되나요? 아.. 그럼 케플라비크로 보내주세요."

다시 생각해봐도 부끄럽습니다. 저는 경유 항공편이 처음입니다. 때문에 당연히 암스테르담에서 짐을 찾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맡겨둘 코인라커 위치까지 알아뒀었습니다. 다 필요 없게 되어버렸네요. 그래도 아이슬란드까지 짐을 붙여준다니 왠지 횡재한 기분입니다.


"어떡해.. 다 문 닫았어"

보안검사를 통과한 아내가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시각 오후 10시 45분, 가게 대부분이 문을 닫았습니다. 저는 아내 어깨를 토닥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쇼핑을 따라가는 게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알고 있었거든요. 저는 필요한 물건을 미리 정하여 한 가게에서 삽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필요하다 싶은 것을 삽니다. 체력 소비요? 한 서너 배쯤 차이가 날 겁니다. 그래서 문 닫은 가게를 보자마자 속으로 '앗싸'를 외쳤습니다. 사실 너무 피곤했거든요. 하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내를 데리고 아시아나 라운지로 향했습니다. 입장료는 둘 모두 무료였습니다. 얼마 전 만든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P.P카드 혜택 덕분입니다. 만들어두길 정말 잘했습니다. 빈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습니다. 어찌나 무거웠던지 어깨가 얼얼합니다. 아 제 카메라 가방 때문입니다. 제가 가진 모든 렌즈를 넣으니 족히 10kg 은 넘는듯합니다. 곧바로 스낵바로 향합니다. 뭐 먹을 게 있나요?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굶은 두 걸인에겐 여긴 천국입니다. 샐러드에 토스트까지, 테이블엔 접시 6개가 놓였습니다. 깨끗이 비워진 채로요. 

생각해보니 저는 마사지가 제일 좋았습니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피곤한 하루 긴 했나 봅니다. 눈이 스르르 감깁니다. 가만히 오늘 일을 되새겨봅니다. 단편적인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러나 혼란스럽니다. 아,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바닥에 하얀 백지를 펴놓습니다. 그 위에 '월리를 찾아라'

1000개 퍼즐을 쏟아 놓습니다. 퍼즐을 하나씩 집어 들어 숨은 월리를 찾아봅니다. 결국 월리가 새겨진 퍼즐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퍼즐 1000개를 다 맞출 생각에 막막합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생각해봅니다.

이걸 언제 다 맞추지.
GATE 10,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길

어느새 탑승할 시간입니다. 길게 늘어선 줄 맨 뒤에 섭니다. 저녁이라 사람이 적을 줄 알았습니다. 카운터에서도 줄이 길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얼추 세어봐도 비행기 한 대에 꽉 차겠습니다. 빈자리 없이요. 아쉽습니다. 자리가 남으면 좀 편히 가려나 했거든요. 할 수 없죠 뭐. 


어쨌거나 KLM 항공은 처음 이용해봅니다. 저희 좌석은 이코노미석입니다. 그럼에도 좌석이 불편하지 않고 좋네요. 앞 뒤 간격이 좁았던 경우가 있었거든요. 좌석에 연하늘색 담요가 놓여있습니다. 아, 아까 KLM로고에 있던 왕관 색입니다. 매력 아니 매혹적인 색입니다. 당장에라도 구매하고 싶은 맘이 분출됩니다. 아참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은 기내식입니다. 어쩜 이리도 맛있는 음식이 나올 수 있을까요. 제가 주문한 음식은 Grilled Vegetable과 Grilled Chicken입니다. 둘 다 알맞게 구워졌습니다. 간도 적절히 베였습니다. 결론은 아주 맛있습니다. 기내식이라곤 믿을 수 없는 퀄리티랄까요. 이 정도면 만족스럽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바로 밤 비행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탈 때면 꼭 창을 열곤 합니다. 창 너머 자연이 너무도 아름답거든요. 그곳엔 파란 하늘과 멋스러운 구름이 있습니다. 우뚝 솟은 산맥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석양있습니다. 하늘은 지상에서 볼 수 없는 자연을 보여줍니다. 이 맛에 비행기를 탑니다. 하지만 이번엔 컴컴한 밤하늘만 보게 되네요. 아쉽습니다. 이럴 땐 잠이 최고죠. 14시간을 무슨 수로 버틴답니까. 와인이나 2병 주문해야겠습니다. 

기어코 11시간이 지나갑니다. 전 무식하게 잠만 잤는데요. 기내 조명을 켜는 바람에 잠에서 깼습니다. 개운치가 않습니다. 제가 자는 동안 폭풍우를 몇개는 지나갔나 봅니다. 기체가 여러번 심히 흔들렸었거든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느라 깊이 못잤나봅니다. 그에 비해 아내는 푹 잤나 봅니다. 아주 부럽습니다. 뭐 어디, 암스테르담 야경이나 볼까요. 서울처럼 멋진 야경을 기대했는데요. 여기 야경은 좀 아니네요. 불빛 몇개가 답니다. 공항이 시로부터 조금 떨어져서 그런가 봅니다. 착륙은 수월했습니다. 서너번 덜컥임이 다였습니다. 폭풍우 덕에 익숙해졌나 봅니다. 이윽고 기장이 안내 멘트를 합니다. "$!@#!$%%!"

잠결에 영어 따위 제대로 들릴 여유 없습니다. 다만 한마디는 귀에 콕 박힙니다. 현지 시각이 11월 19일 새벽 4시 30분이라는 겁니다. 하루를 또 얻게 된 기분입니다. 돌아갈땐 하루를 잃겠지만요. 여기 스키폴 공항에서 두번째 하루를 맞아봅니다. 뭐, 아직 새벽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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