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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Dec 01. 2017

싱벨리어 국립공원에서 Save한 이정표

아이슬란드 골든 서클 투어 - 싱벨리어 국립공원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

“100m 앞 로터리 진입 후 3시 방향 출구입니다.”

레이캬비크를 벗어나, 작은 로타리에 이르렀다. 맘 속 잠들어있던 작은 고민은 그 순간을 못참고 고개를 내민다. 네비게이션을 안따라 가면 안될까? 12시 출구로 가면 링로드 일주인데. 고민 끝에 결정했음에도 녀석은 나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아아, 녀석 이름은 ‘욕심’인가보다. 내 눈을 멀게 만드는 녀석. 아내는. 그래 아내는 ‘누리는 신혼여행’을 원한댔다. 아, 그렇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었지 참. 고갤 내밀고 눈만 껌뻑이던 녀석은 다시 제 어둠 속으로 돌아갔다. 


확신이 필요했던 걸까. 해맑게 웃고있던 아내를 보았다. 느끼한 눈웃음에 몸소리라도 쳤는지. 미친놈마냥 쳐다본다. 그래, 미친놈소리 들어도 마냥 좋다.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싱벨리어 국립공원(Þingvellir National Park)으로 가는 길


골든서클(Golden Circle)의 이유

‘볼매’라는 단어 뜻을 안진 오래지 않았다. TV를 등지고 사는 내겐 아내가 선생님이다. 한 번은 책상에 A4 용지를 가져다 놓고 ‘볼매’라고 크게 써보았다. 어찌나 글자가 이쁜지 벽에 붙여 두고두고 봤다. 말 그대로 보면 볼수록 매력 있었다. 아이슬란드가 그러했다. 봐도 봐도 매력적이었다. '볼매'는 이 곳을 위한 단어같았다. 선글라스를 벗어서 보기도 하고, 눈을 크게 감았다가 떠보기도 했다. 이게 진짠가 싶어 눈 뗄 수 없었다.


오전 10시 23분. 커다란 호수 너머 노란 태양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이래저래 곁눈질하더니 기름종이 젖어들듯 새하얀 대지 위로 노란 물감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산자락 마다 덮어두던 엷은 그늘막도 획 젖혀버려 속살을 드러냈다. 걸죽해뵈던 하늘빛 호수 싱 벨라 바튼(Þingvallavatn)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아, 왜 골든인가 했더니 이래서 골든서클투어인갑다. 황금빛 태양 아래서 싱벨리어, 굴포스, 게이시르, 그리고 다시 레이캬비크까지 240km 원형 왕복코스.


구름에 해라도 가려졌더라면 못봤겠다. 1번 국도를 그대로 내달렸더래도 못봤겠다. 다녀와서 생각해보니, 눈 비로 흐렸던 다른 날 왔더라도 못봤겠다. 오늘왔기에 볼 수 있었고, 이 시간에 왔기에 볼 수 있었다. 욕심을 버리더니 복을 받는구나. 왜 여기가 골든인지 끝까지 모르고 갈뻔 했다. 그래, 참 잘왔다. 이유를 알고 가는구나.


둘의 이정표, 여기서 Save

전망대에 오른건 11시쯤이었다. 해는 동(東)에서 서(西)로 진다 배웠건만. 여기선 좀처럼 머리 위까지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동에서 떠서 동으로 지려나. 사실, 전망대라기에 건물을 생각했다. 높은 타워 꼭대기층, 커다란 통유리를 360도로 두른 전망대말이다. 설마허니 바위 언덕 위에서 매서운 바람과 맞서게 될 줄 몰랐다. 와들와들 떨법도 싶은데, 언덕 아래선 못느꼈던 따스함이 느껴졌다.


찰칵 찰칵 소리가 바람 따라 울려 퍼졌다. 어떤 카메란가 싶어 귀 기울였지만, 소리가 가볍직한게 보통 카메라 셔터음은 아니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음이었다. 한두차례 들려오던 찰칵 소리가 신호탄인양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서로 다른 셔터음들은 짝지라도 지은듯 화음을 이뤘고, 불어오는 바람 따라 왈츠 교향곡을 연주했다. 쿵짝짝 쿵짝짝. 한차례 바람 그치면 들려오던 셔터음은 불때되니 또 잦아들었다. 묘하게도 매력적인 리듬감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손 시려워한다는걸. 

우리도 이정표를 남겼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잊고 살다가도 아! 하곤 돌아올 수 있는 이정표. 

그 이정표엔 '나'와 '네'가 아니라 '우리'가 있기 원했다. 내가 본 아이슬란드만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네가 본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본 아이슬란드를 떠올리고 싶었고, 아이슬란드에 있던 우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일상에 치여 살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이정표가 있기에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잘못되면 이정표에서 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니깐. 뭐가 비슷할까. RPG 게임의 Save. 이녀석이다. 그래. 오늘 여기서 Save한다.  찰칵.



Main Photo by Todd Dieme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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