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하는 여행이 되는 이유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야근하시는 날이면, 식탁 반찬은 내 차지였다. 내 젓가락이 날카롭게 변하는 순간은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놓아두셨던 금색 수저를 한편으로 치워두시는 순간이었다. 소시지, 고기, 나물 등 나는 가리는 음식이 없는 편이었지만, 딱 한 가지는 예외였다. 상추 위에 가지런히 놓인 송이버섯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다.
"몸에 좋은 거니까, 꼭 꼭 씹어 먹어"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에 못 이겨 한입 베어 물지만, 몇 번 오물거리다 못해 뱉곤 했다. 지금 송이버섯 가격을 보면 금이야 옥이야 하며 먹었을 테지만, 그땐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삼킬 때 맛이 없었다.
난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삼킬 때 느껴지는 맛으로 음식을 구분 지었다. 그런 점에서 소시지는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고, 삼겹살은 두 번째 애(愛)식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두 음식을 물론 좋아하지만, 지금은 자연산 송이버섯이라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다. 나이 들면서 '씹는 맛'도 알아버린 게다. 씹을수록 입안에 풍겨지는 향긋한 향에 중독성을 느낄 정도다. 나에겐 여행이 그렇다. 삼켜지는 맛보다는 씹는 맛, 식감이 중요하다.
식감에는 아삭함, 쫀득함, 쫄깃함, 눅눅함 등 여러 맛이 있다. 언급한 맛들은 삼키며 느낄 수 없는 맛이다. 별을 따라간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중요한 순간은 별이 아니다. 별을 연결한 별자리이다. 별은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며, 우리는 별을 이으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삭함, 쫀득함, 쫄깃함은 별을 이어야만 느낄 수 있다.
2016년, 갑작스레 추석 며칠 전 휴가를 냈다. 늘 가보고 팠던 일본 북해도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떠났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 가까운 강행군이었지만, 어머니께서 가보셨던 여행 중 최고라고 칭하셨다. 전 세계 안 가본 곳이 없다시피 하신 분인데 말이다. 무엇이 그래 좋으셨냐는 질문엔 한결같이 답하셨다.
"그냥, 너희들하고 같이 다니는 게 좋았어."
생각해보니 샤코탄 시마 무이 해변에 갔을 때에도, 카무이미사키를 갔을 때에도 어머니는 입구에서 쉬고 계셨다.
너들 다녀오라고. 나는 괜찮다고.
어머니께 중요한 건 어디를 가서, 무얼 봤는가가 아니었나 보다. 어디를 가는 도중에 어떤 이야기를 했으며,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어땟는가였나보다. 여행 중 줄곧 말씀하셨다.
"여기는 집이 참 예쁘네, 팥죽색 같으어. 참 좋네, 좋아."
짧은 감탄사였지만, 주고받다 보니 긴 대화로 이어졌다. 내 이야기. 동생 이야기. 어머니 이야기. 살면서 듣지 못했던 각자의 생각에 두 시간이 넘는 긴 운전거리도 짧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아쉬웠다. 더 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더 듣지 못해서였다.
영종대교를 건너며 생각했다. 나는 다시 물속에 들어왔다고. 발버둥 치며 살았지만, 잠깐 물 위로 떠오를 뿐이었다. 물 밖에서 만난 어머니와 동생은 알던 것보다 진한 향이 나는 사람들이었다. 물 속선 맡지 못했던 아주 진한 향.
우리는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들으려, 여행 명소를 찾는다. '이 곳이 몇백 년 전 누가 뭘 했던 곳이다'는 이야긴 식상하다. 그리고, 쉬이 삼켜버린다. 그렇구나 하고. 이유는 단순하다. 내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긴 잘근잘근 씹는 동안 만들어진다. 별을 따라간 아이슬란드는 아내와 내가 함께 이어가던 별자리 이야기이다. 혼자 간직하기엔 아까운 이야기. 글을 읽어주신 지인분들께 진도가 팍팍 안 나가서 아쉽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책으로 완성되면 그분들께 진도가 팍팍 나가는 이야길 들려드릴 수 있을듯하다.
Photo by Tamarcus Brow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