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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Dec 24. 2017

'오로라'.. 초록색인 줄 알았더니

우리 부부의 꿈이 이뤄진 순간. 아이슬란드에서.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기분 나쁘게 잠에서 깼다. 여기서도 긴급 재난 문잔가. 지나치게 귀에 거슬리는 벨소리다. 방음도 안되 옆 방 중국인들이 항의할까 싶어 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충전한답시고 머리맡에 둔 건 까맣게 잊고, 옷장 잠바 주머니나 쑤시고 있었다. 멍청스럽게.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였다. 배불리 식사하고, 침대에 걸터앉은 것까진 기억난다. 잠깐 쉬어야지 하며 상체를 뒤로 젖히고부터 기억이 없다. 늘 그렇다. 잠깐만 쉬다 해야지 하면 잠든다. 그리고 후회한다.


저녁 9시 30분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SNS 앱을 켜다 말고 아까 울렸던 알람이 생각났다. 노티(notification)엔 낯선 문구가 보였다.


‘Aurora Level 5’


뭔 소리지 싶어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아침에 다운로드하여 둔 오로라 예보 어플이다. 동그란 지구 위에 핀셋이 박혀있었다. 우리 위치였다. 그 위는 녹색 구름이 뒤덮었다.


출처 : google.com

 

"일어나, 오로라 떴대, 레벨 5야."
"으음, 그래도 안 보일 거야."
"아냐, 진짜야, 빨리 일어나!!"


아내를 깨웠다. 발도 꼬집어 보고, 손도 꼬집어 봤다. 머리도 쥐 흔들었다. 아내는 피곤했는지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급한 맘에 뒷목과 허리를 받쳐 들고 번쩍 일으켰다. 맘이 급했다. 짜증 섞인 나무람은 작은 부작용이었다.

눈 비비는 아낼 두고 창문 밖 고갤 내밀었다. 사진서 보던 녹색 오로라는 없었다. 밤하늘 밝게 빛나는 북두칠성뿐. 다시 누으려는 아내 손 끌고 밖으로 향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경운 많잖은가.


추우니 문을 닫습니다.


후~ 입김을 불었다.

어린 시절 오락실 게임 캐릭터 마냥 뿜어져 나온 허연 불꽃은 이내 흩어졌다. 대충 여민 점퍼를 끌어안고 주차장에 섰다. 어두웠다. 호텔 불빛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어찌나 맑은지 구름 한 점 없었다. 이렇게 많은 별이 선명하긴 난생처음이다. 내가 유일하게 외운 오리온자리도 있었다. 벨트 하단에선 붉은 오리온성운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저게 뭐지? 저거 보여? 저 쪽 하늘, 희끄무리한거"
"응 보여, 저게 설마 그거 아닐까?"
"에이, 일단 그 카메라로 찍어보자."


아내 목에 매달린 작은 카메라를 가리켰다. 생일 등 올해 발생한 갖가지 기념일과 한 번에 맞바꾼 카메라다. 본인이 원하는 걸 사달라고 했지만, 결국 내가 원했던 카메라를 아내에게 선물했다. 안다. 내가 나빴다는 건.

 

흔들렸다. 아내가 찍은 첫 사진.


찰칵. 카메라 LCD 액정엔 녹색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진은 흔들렸지만, 알 수 있었다. 오로라다. 진짜일까? 오로라를 보자마자 달밤 춤췄다는 사람들 이야기가 실감 났다. 서해바다 가라앉은 고려시대 보물상자라도 발견한 기분이다. 감정을 주최할 수 없어 환호성을 질러버렸다. 조용한 시골 밤에.

 

건너 산에 부딪친 소리는 여러 갈래 튀어 되돌아왔다. 조용했던 시골 스코가(Skógar)가 시끄러워졌다. 호텔 투숙객들이 하나둘 나오며 질러댄 환호성 덕분이다. 우리 모두 오로라를 꿈꾸던 사람들인가 보다.  


선명해진 오로라. 사진엔 녹색빛을 띄었다.


오로라는 크고 선명해졌다. 육안으로 보일만큼.

한 가지는 명확했다. 오로라는 녹색이 아니었다.


뭐라고 비유해야 할까.


나는 창 문 앞에 선듯했다. 바람이 제법 부는 날인가 보다. 창문에 메어둔 오래된 레이스 달린 커튼이 바람에 나부낀다. 제 아름다움이라도 표현하듯 아름답게, 우아하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속 비치는 커튼 사이로 밤하늘 수많은 별들이 보인다. 머릿속 상상력은 갖가지 그림을 그려댄다. 엄마 얼굴, 아빠 얼굴, 아내 얼굴. 얼토당토않지만. 실은 이게 맞다며 우겨댄다. 고집스럽게. 그게 별 자린가 보다.


오로라가 더해졌으니, 오로라 은하수가 맞겠지?


촬영이 쉽진 않았다. 30장 중 건진 사진은 대여섯 장이었다. 찍을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혹여나 오로라가 떠나가진 않을까. 오로라를 따라 지프(jeep)를 타고 떠난 팀도 있었다. 오로라는 바다 쪽으로 가던데, 어디까지 갔으려나.


숙소는 따스했다. 한 시간 넘게 추위를 막아선 경계심은 녹아내리고 말았다. 침대 위에 누웠다.

나는 지금 구름 위에 떠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구름. 아까 본 오로라가 일렁인다. 부드럽게 따스하게. 다시 볼 수 있을까. 눈 뜰 힘이 없다. 움직이기 귀찮다.

또 그렇게 기억을 잃어간다.


꿈 속에서도 일렁이던 오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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