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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용 Feb 25. 2018

눈 온 다음날 아침

 

“이따 보아요.”


이불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아내는 찾아올 생이별에도 무덤덤하다. 매일 아침 출근길. 1년 넘게 반복된 이별과 만남이 이젠 익숙하다.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검붉은 구두 한 켤레. 발 뒤꿈치 주걱 대고 신던 구두도 이젠 발만 넣어도 꼭 맞는다. 이 녀석도. 1년 넘는 이별과 만남이 익숙해졌나 보다.      


“야, 혼난다!”


계단을 반층 내려가기도 전에 2층 집 아주머니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다. 두 살배기 어린애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소릴 지르는지 아침부터 난리다. 애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울음을 빵 터뜨린다. 엉엉. 저 이해 못하는 부모가 못내 서운했는지 울음소리는 점차 커진다. 앙앙. 그래, 익숙하다.      


나는 덤덤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1층 다 와갈 즘. 익숙지 않은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내 코를 자극한다. 또 그 사람인가 보다. 2층 집 아저씨. 매일 아침 1층 현관에서 담배를 뻐끔거린다.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고 있을까. 오지랖일 뿐이라며 자동문 버튼을 눌렀다. 스륵. 문이 열리며 내 얼굴에 달려든 뿌연 담배연기가 못내 불쾌했다. 그래 이건 아직도 안 익숙하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서투른 인사. 아니, 낯선 인사. 동네 주민 간 예의 그 이상은 아니다. 인사 외 대화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 곳에 산 1년간 가장 익숙한 주민이라면 이 아저씨다. 밤중에 밖을 나가며 자주 만났다. 어두컴컴한 주차장 구석에 조그마한 불빛이 보이면 먼저 다가가 인사하곤 했다. 아저씬 늘 담배 한 대 물고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 게임을 한다. 대체 집에 들어가기는 하는 걸까. 


게다가 늘 똑같은 모습이다. 일주일은 안 깎았을 수염. 대충 걸쳐 입은 검은색 패딩. 그리고 부들거리는 하늘색 털 잠옷 바지까지. 바지를 뒤덮은 분홍색 별은 패션 포인트다. 아저씨를 뒤로 하고, 필로티 주차장을 나섰다. 간밤에 눈이라도 왔는지 온 세상이 하얗다. 골목에는 벌써 차가 여러 대 지나갔는지 바큇자국따라 눈이 녹아있다. 그래도 이게 길인갑다 하며 따라 걸었다. 하얀 골목길. 아저씨 바지에 있던 분홍색 별이 떠오른다. 안 어울려 안 어울려. 고개를 절레 흔들며 계속 걸었다. 아저씬 지금쯤 또 쪼그리고 앉아 게임을 하고 있으려나. 아, 그런데 얼굴이 어떻게 생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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