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울기 시작한다. 하아, 이제 지친다. 한 시간마다 우는 통에 잘 수가 없다. 아내가 깨서 달래진 않을까? 기다려봐도 꿈쩍을 안 한다. 깊이 잠들었나, 아니면 아내도 반쯤 깬 채 나를 기다리는 건가.
고민 끝에 이불을 젖혔다. 잠잠해질까 싶어 “용용아, 아빠가 간다.”를 외쳤다. 택도 없다. 숨 넘어갈 듯 울어댄다. 하얗던 아기 얼굴이 피망처럼 벌게졌다. 어디 보자, 밥 먹을 시간은 아니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나보다. 기저귀가 도톰한 게 수분(?)을 흠뻑 빨아들였나 보다. 새 기저귀를 엉덩이 밑으로 넣고 펼쳤다. 일명 '밑장깔기'다.이제 헌 기저귀만 빼내면 된다. 골반에 채워둔 구 기저귀 밴드 찍찍이를 풀었다. 오른쪽 하나, 왼쪽 하나.
아주 그냥, 시크음하다. 먹은 건 분유뿐인데, 돼지고기 썩은 내처럼 시큼하다. 헌 기저귀가 펼쳐질 때마다 진한 똥내가 방안을 메운다. 이쯤 되니 잠결에 ‘우쮸쮸’만 나지막이 읊는 아내가 신기하다. 이 냄새에 어찌 저리 곤히 자고 있지? 아기가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발 뒤꿈치에 변이 묻을까 싶어, 손으로 두 발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가만히 있어!” 짜식, 들은 채도 안 한다. 불안한지 발길질까지 해댄다. 남은 한 손에 쥔 물티슈로 재빠르게 변을 닦고, 새 기저귀를 채웠다. 아기는 울다 말고 잠들었다. 편안한가 보다. 나는 조금 씁쓸하다. 내 생각이 나서다.
‘부모님 말씀 잘 들으라’는 이야기가 싫었다. 눈 앞에 보이는 삶 살기도 바쁜데, 왜 남의 삶을 듣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거칠게 없던 중2 시절이다. 진로에 대해 염려 많던 부모님 말씀은 “내 알아서 할게요.” 한마디로 톡 잘라먹었었다. 아주 싹퉁머리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2를 보았고, 부모님은 10을 보셨었다. 맞는 말씀이었지만, 2밖에 보지 못했던 나는 부모님과 싸우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요 아들내미랑 똑같이 말이다. 요너석은 아직 시력이 덜 발달되었다. 눈 앞 물체도 흐릿하다고 한다. 안보이는데 누가 옆에서 더듬어대면 불안할 법하다. 그게 옳은지, 틀린지는 나중의 문제고. 가만히 있으라고 외쳐보지만, 말도 안 듣고 발버둥 친다. 똥 기저귀 갈기가 아직은 이해가 안 되었겠지. 청소년 김지용처럼.
100세 시대랜다. 30년 고생시켜드렸으니, 남은 40년은 효도하련다. 한편으론 걱정도 된다. 나도 요녀석 덕에 30년 고생할 생각을 하니. 용용이도 나처럼 30살에 똥 기저귀 타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뫼비우스 띠처럼 대를 이어 발버둥 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똥 기저귀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