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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똑같이 일해도 더 피곤한 요즘 직장인들

2025년 7월 24일 목요일의 기록

by 그라데이션

"나 번아웃 온 것 같아",

언제부터 이렇게 흔한 인사말이 되었을까


요즘 주변에서 "번아웃 왔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동료와 점심 먹으면서, 친구들과 만나서, 심지어 무심코 넘기는 릴스에서도 번아웃에 대한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나온다. 예전에는 이런 말을 잘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흔한 표현이 되었을까. 처음에는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예민해진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서 단순히 예민함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주변을 보면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다.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 번아웃을 이야기한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있고, 객관적으로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못하겠다"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똑같이 야근해도 달라진 것,

번아웃의 정체


예전 직장인들도 분명히 힘들었다. 야근도 더 많이 했고, 주말 출근도 당연했다. 그런데 왜 지금이 더 심각하게 느껴질까. 업무량 자체는 예전보다 줄었을 수도 있는데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일의 성격이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정해진 업무를 정해진 시간에 하면 되었다면, 지금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해야 한다. 기술 변화도 빠르고, 업무 방식도 계속 바뀐다.


특히 내가 하는 PM 업무를 보면 5년 전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 AI 도구 활용법도 배워야 하고, 애자일 방식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데이터 분석 역량도 요구된다. 일 자체가 계속 변화하고 있어서 한 번 익혀두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공부해야 한다. 이런 지속적인 학습과 적응에 대한 압박이 예전과는 다른 피로감을 만드는 것 같다. 야근을 해도 예전에는 "오늘 일 끝"이라는 명확한 마무리가 있었다면, 지금은 "내일 또 뭘 배워야 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남는다.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함의 함정


성과 압박과 개인의 성장 욕구 사이의 간극도 번아웃의 한 원인인 것 같다. 회사에서는 분기별로 성과를 요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더 빨리 성장하고 싶어 한다.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지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성과와 내가 원하는 성장 방향이 다를 수도 있고, 성장 속도에 대한 기대치가 다를 수도 있다. 특히 요즘은 "빠른 성장"에 대한 압박이 크다. 온라인에서는 20대에 팀장이 된 사람, 30대에 임원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나도 가끔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사실 너무 천천히 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 회사 규모도 다르고, 업계도 다르고, 개인의 목표도 다르다. 이런 비교 때문에 조급함이 생기고, 조급함 때문에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성과도 제대로 내지 못하고, 성장도 더딘 것 같아서 스트레스만 늘어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SNS가 만드는 상대적 박탈감


SNS가 번아웃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링크드인을 보면 매일 누군가 승진했다는 소식, 이직했다는 소식,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소식이 올라온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해외여행, 맛있는 음식, 여유로운 일상의 모습들이 끊임없이 업로드된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상황과 비교하게 된다.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입사했는데 벌써 승진했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여유롭게 살지" 같은 생각들이 들 수 있다.


물론 SNS에 올라오는 것들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좋은 순간만 골라서 올리는 것이고, 힘든 부분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감정적으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똑같이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SNS를 보면 상대적으로 내 인생이 초라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서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회의감이 들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런 비교 대상이 주변 몇 명이었다면, 지금은 전 세계 사람들과 비교하게 된다. 비교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상대적 박탈감도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에서 일하면서

더 피곤해진 이상한 현상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서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진 것도 번아웃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재택근무가 좋았을 것이다. 출퇴근 시간도 절약되고, 집에서 편하게 일할 수 있어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피곤할 때가 많을 수 있다. 회사에 있을 때는 퇴근하면 일이 끝났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집에서 일하면 언제 일이 끝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노트북을 덮어도 바로 옆에 있어서 메시지가 오면 확인하게 되고, 급한 일이 생기면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주변에 번아웃이 왔다고 말하는 지인들의 일상이다.


공간의 분리가 없어지면서 정신적인 분리도 어려워졌다. 집은 원래 쉬는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일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같은 책상에서 일하다가 저녁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기분 전환이 잘 안 될 수밖에 없다. 회사에 있을 때는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잠깐이라도 일을 잊을 수 있었는데, 집에서는 그런 자연스러운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번아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건 긍정적 변화


물론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예전에는 번아웃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번아웃 왔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첫 단계다. 예전에는 "힘들다"라고 말하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상대적으로 쉬워졌다. 회사에서도 번아웃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직원들의 정신건강을 챙기는 프로그램들도 늘어나고 있고, 휴가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도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본다. 번아웃에 대해 이야기는 할 수 있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도 문제를 인정하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번아웃이 이렇게 흔한 현상이 된 것은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 같다.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고,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일하는 방식, 성장에 대한 기대, 기술 변화 속도 등 많은 것들이 맞물려 있다. 해결책도 개인 차원과 조직 차원에서 동시에 찾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퇴근길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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