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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진열이 말해주는 그 지역 직장인들의 관심사

2025년 7월 28일 월요일의 기록

by 그라데이션

AI, 개발, 스타트업 책이

진열 1순위인 곳


평소에 회사와 가까운 판교 교보문고를 자주 간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들러서 신간을 둘러보는 것이 일상의 재미라면 재미다. 판교 교보문고에 가면 늘 재미있는 책이 많다고 생각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진열대에는 AI 관련 서적들이 가득하다. IT 서적 코너는 아예 별도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별로 세분화되어 있고, 개발 방법론, 데이터 사이언스, 클라우드, 보안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스타트업 관련 서적들도 독립된 코너를 가지고 있다. 창업 스토리, 린 스타트업, 비즈니스 모델 관련 책들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자기 계발서 코너에서도 IT 업계 종사자들을 타겟으로 한 책들이 많다. 처음에는 이게 당연한 줄 알았다. 아니, 당연하다기보다는 IT 관련 책이 많구나라는 것을 따로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러한 인식을 하게 된 것은 IT가 아닌 다른 직종의 직장이 몰려있는 곳에 방문한 주말 이후부터였다.




주식, 부동산,

경제 전망서가 가득한 서가


주말에 일정이 있어서 여의도 영풍문고에 갔다. 책을 한 권 사려고 했는데, 대부분 재고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IT 분야 책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구석진 곳에 작은 IT 코너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코너에 가기 위해서 걸어가면서 습관적으로 베스트셀러가 전시된 곳을 보았다. 보통은 요즘 이런 책들이 인기가 많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지나갔을 테지만 그날은 IT 관련 도서는 한 권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 눈이 닿는 곳에슨 경제·투자 도서들이 가득했다. 주식 투자 관련 서적만 해도 두 개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동산 관련 서적도 별도 코너가 있었다. 부동산 투자, 경매, 재건축, 분양권 관련 책들이 세분화되어 진열되어 있었다. 경제 전망과 정책 분석서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금리, 환율, 국제 정세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들이 많았다. 자기계발서 코너도 판교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리더십, 조직 관리, 협상 기술, 인맥 관리 같은 주제의 책들이 주를 이뤘다. 확실히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구성이었다. 같은 자기계발서라도 타겟이 다르니까 내용도 완전히 달랐다.




판교는『개발자의 글쓰기』,

여의도는『부의 시나리오』


같은 서점이라도 지역에 따라 베스트셀러가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판교 교보문고에서는 『개발자의 글쓰기』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오래 머물러 있었는데, 여의도 영풍문고에서는 『부의 시나리오』가 그 자리에 있었다. 신간 추천 코너도 마찬가지였다. 판교에서는 최신 프로그래밍 트렌드나 AI 기술을 다룬 책들이 신간 추천에 올라와 있었고, 여의도에서는 최신 경제 이슈나 투자 전략을 다룬 책들이 추천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종로 교보문고에 갔을 때는 또 달랐던 것 같았다. 정치, 사회, 인문학 서적들이 눈에 띄는 곳에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시사평론서나 정치인 회고록, 사회 문제를 다룬 책들이 입구 근처에 진열되어 있었다. 강남 교보문고는 부동산 관련 서적이 특히 많았던 것 같다. 강남 지역 특성상 부동산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같은 출판사, 같은 책이라도 지역에 따라 진열 위치와 분량이 달라지는 게 흥미로웠다.




서점도 마케팅이다,

타겟 고객을 아는 큐레이션의 힘


서점도 당연히 마케팅을 할 것이다. 단순히 인기 있는 책을 앞자리에 놓는 게 아니라, 그 지역 고객들의 특성을 분석해서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판교는 IT 기업들이 몰려 있으니까 관련 서적을 많이 진열하고, 여의도는 금융기관이 많으니까 경제·투자 서적을 앞세우는 식이다. 이런 타겟 마케팅이 결국 매출로 이어질 것이다.


같은 책이라도 지역에 따라 판매량 차이가 크게 난다. 그래서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진열 가이드를 내리는 게 아니라 각 지점에서 자율적으로 진열을 조정한다고 알고 있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서 어떤 카테고리의 책이 잘 팔리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춰 진열 공간을 배정한다. 이런 세심한 큐레이션이 서점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인 것 같다. 온라인 서점과 차별화하려면 이런 지역 맞춤형 서비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두 서점을 오가며

다시금 발견한 나의 관심사


내가 어떤 책을 찾는지로 나의 성향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판교에서는 주로 IT 트렌드나 업무 관련 서적을 많이 보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기술이나 방법론에 대한 책들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진열되어 있는 책들을 보면서 "이것도 배워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정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여의도에서는 경제나 투자 관련 책이 더 많았고, 새삼 내가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경영이나 인문 등에는 관심이 비교적 없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열된 책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 경제에 무관심했나"라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그 공간에 있는 책들에 시선이 가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양한 지역의 서점을 가보는 것만으로도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서점 진열은 그 지역 직장인들의 관심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앞으로는 새로운 지역에 가면 그곳 서점부터 들러봐야겠다. 그러면서 관심사를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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