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를 떠나 토스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렇게 좋아했던 회사와 나름대로 만족스럽다고 느껴졌던 직무와 늘 감사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뒤로하고 말이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힘들어했던 날, 네이버에 합격하게 되어서 기뻐했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좋은 회사 좋은 직무를 두고 이직을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네이버를 떠나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월부터는 토스 Product Manager로 일하게 되었다. 평소에 히스토리를 남기는 차원으로 링크드인을 관리하고 있었고 가끔 그곳으로 리크루터 분들이나 헤드헌터 분들이 제안이 들어오곤 했다. 링크드인을 운영하면서도 경력도 충분하지 않고, 지금 회사에서도 배울 점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들어오는 제안들에 대해서 깊게 고민하지 않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준비를 하고 나는 이러한 직무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구나 정도를 파악하는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과감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가게 될 조직에서 완전히 낯선 업무를 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1년도 안 된 신입을 뽑아서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싶은 곳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상품은 존재하지만 그것을 판매할 수 있는 플랫폼은 존재하지 않고 해당 플랫폼을 아예 처음부터 만드는 업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리크루터분께 처음 콜드 메일을 받고 콜드 콜을 통해 내가 맡게 될 업무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때만 하더라도 "오, 토스에서 이런 직무를 뽑는구나" 정도의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내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며 커리어의 다음 스텝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고, 타이밍 좋았던 콜드 콜 이후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와, 내가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강점이 일에 어떤 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멀리 봤을 때 이곳에서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내 모습에 지금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느 정도 유의미한지. 나는 최대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내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이 미래에 꿈꾸는 모습인 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봤다.
지금 회사에서도 물론 전문성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영향력 있게 바꾸고 싶더라도 불가능한 것이 더 많았고 그렇게 바꾸기까지 너무 많은 것을 파악해야 했으며 이미 존재하는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개선하고자 한다면 어마어마한 대공사가 필요한 환경이었다. 이 부분이 불만이었다기보다는 약간의 답답함이 느껴지는 정도였고, 그렇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천천히 편안하게 일을 배워가자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무조건 합격하겠다는 각오보다는 솔직히 토스에서 원하는 역량이나 하게 될 업무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언젠간 가고 싶었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제 1년 가까이 일을 한 만큼 포트폴리오를 새롭게 개편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기에 이번 기회에 다듬어보자는 목표 정도를 세웠다. 연차를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새파란 연차의 신입을 굳이 뽑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PM 직무에서 말이다.
하지만 전형을 진행할수록 욕심이 조금씩 커져갔다.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조사했던 토스라는 곳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그곳에서 맡게 될 업무 또한 도전적이면서도 비즈니스 모델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토스만큼 성장한 기업에서 새로운 플랫폼을 아예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호기심은 관심이 되었고, 열정과 간절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서류 합격 연락을 받고 직무 면접을 보게 되면서 나를 왜 뽑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맡았던 업무가 초기 플랫폼을 구축할 때 필요한 역량일 가능성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보다 더 나은 지원자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가장 처음 했던 것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정리했던 업무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업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질문을 나눠서 하나씩 답변을 해보았다.
A라는 업무를 했다면
1) 왜 그 일을 하게 되었는지
2) 그 일을 하면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3) 성과를 내기까지 걸렸던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4)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어떤 결과를 냈던 업무였는지
5) 그 일을 하면서 배우고 느낀 점은 무엇인지
6) 혹시나 겪었던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7) 해당 업무에서 배운 점을 지원하는 업무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했던 일 중 어떤 부분이 궁금할지나 세부적으로 질문이 들어온다면 어디에서 들어올지에 대한 감이 조금씩 잡혔고, 이를 바탕으로 직무 면접 예상 질문을 작성했다. 신입 면접을 준비할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확실히 개인적으로 했던 프로젝트에서 배운 점이 아니라 회사 입장에서 작은 일이라도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해결하고 의미를 찾아갔는지에 대해서 정리했다는 점이다.
직무 면접은 총 2번 진행되었다. 원래 기존에 있던 3MR이라는 제도가 사라지면서 면접 과정이 더욱 강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어떤 질문이 나왔는지에 대해서 상세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내가 했던 모든 업무에 대한 질문과 그중에서 의미 있었던 프로젝트에 대해 더욱 깊은 질문이 주로 들어왔다. 물론, 나를 알 수 있는 평범한 질문도 다수 있었다. 모든 질문은 "왜 토스에 지원했고, 왜 회사를 떠나려고 하며, 그곳에서는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었나요?"에서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는 날카로운 질문도 있었다. 내가 어떤 식으로 답변을 할지 끝까지 고민했던 질문들이었다. 경력이 길지 않는데 이직을 결심한 이유라던가, 토스에서 하는 업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이 되는지를 검증하는 질문이라던가, 그곳에서 직면한 상황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질문 등이 기억에 남는다. 답변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던 것 같다. 그렇기에 면접 말미에서 회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질문하는 시간에 면접을 하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내가 앞으로 어떤 부분의 역량을 더 길러야 할지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해드렸다. 지금 생각해도 답변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이번 기회에는 함께 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컬처 면접 안내를 받았을 때 굉장히 어안이 벙벙했다. 어느 정도로 기대를 안 했냐면, 컬처 면접 안내를 받기 전까지 토스의 상세한 문화나 복지는 전혀 찾아보지 않았을 정도였다. 괜히 그런 것을 미리 찾아보고 떨어지게 된다면 실망을 할 것 같아서였다. 직무 면접에서 합격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나의 가능성에 좋은 점수를 준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직무 면접에서 합격하게 되면 컬처 면접 안내와 동시에 토스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여러 자료 링크를 함께 전달해준다. 토스피드나 토스커뮤니티 문화 소개, 일하는 방식, 기업문화 인터뷰 등 주로 토스의 문화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는 자료들이다. 많은 후기들에서 만약 해당 자료들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면 토스의 문화와 맞기 어렵다고 굳이 해당 문화에 나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답변하는 것을 추천했다. 나의 경우에는 오히려 토스의 문화를 보면서 나와 좀 더 잘 맞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나를 꾸며내지 않고 솔직하게 답변하더라도 충분히 문화와 잘 어울린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어떤 부분이 나와 가장 잘 맞는 문화인 지나 어떤 식으로 일하게 될 지에 대해서 잘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달해준 모든 자료를 하나하나 읽고 정리했다. 그중에서 포인트를 짚어내서 어떤 식으로 답변할 때 활용하면 좋을지도 함께 고민했다.
마지막 관문이었던 만큼, 면접 전 주말에는 예상 질문을 100개 정도 뽑아냈다. 문화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정리하다 보니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 질문하고 답변하면서 내가 그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떤 식으로 일을 하면 될 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다.
실제로 나온 질문들도 예상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말을 지어내서 답변을 했다면 중간에 유사하지만 다른 질문에서 답변을 잘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의 질문이 나오기는 했다. 정말 다방면에서 토스의 문화와 내가 잘 맞는지를 검증하려는 느낌이 들었고, 나 또한 스스로 회사와 내가 잘 맞는지 좀 더 세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토스에 합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기까지 거의 1주일은 고민했던 것 같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회사에서 큰 불만이 있어서 떠난다기보다는, 토스에서의 기회가 더 기대가 되기 때문이었다. 네이버에 남아서 한 3년 정도 배우고 성장해볼까, 적어도 이곳에서 프로젝트 하나 정도는 시작하고 끝맺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곳에서 떠나도 괜찮을까. 이제야 좀 힘든 시기가 지나고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가는 것이 맞을까. 가서도 또 비슷한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까.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성장"인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네이버에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생각하는 성장은 다양한 일을 하고, 수 없이 부딪히고 또 실패도 해보면서 점점 더 유의미한 결과를 내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네이버에서의 성장은 내가 해당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지식을 쌓고, 엄청나게 많은 사용자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고, 래거시를 바탕으로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개선하는 곳에서 얻을 수 있다. (모든 서비스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속한 조직의 특성이다)
물론 그 외에도 회사에서의 보상 측면이나 문화에서 오는 기대, 저연차임에도 토스에서 일할 수 있다는 기회 등도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는 했다. 그렇게 떠나는 것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아직도 내가 내린 결정에 확신은 없다. 하지만, 늘 그래 왔듯이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고 주어진 환경에서 적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갈 것이다. 두고 가는 것들이 아직도 많이 아쉽고 눈에 밟히지만 (특히 동기가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의지가 되었는데, 그곳에서는 망망대해라는 점..)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을 날을 기대하며 새로운 환경에서 잘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