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철없는 생각이지만 며칠 전까지 전 제가 부모님을 바꿀 수 있고, 그게 옳은 거라 생각했어요. 그동안 어느 정도 성공 사례들이 있었거든요. 예를 들면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부모님은 더 이상 음식을 소리 내며 씹지 않으세요. 저랑 언니가 몇 년 동안 꾸준히 매너가 아니라고 나무란 결과입니다.
그런 제가 제일 바꾸고 싶던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한 가지는 바로 아빠가 저한테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두 사람이 싸우면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잘못일 수가 없는데 저한테만 사과를 바라시는 게 끔찍이 싫었거든요. 다른 하나는 싸움 뒤에 흐지부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였습니다.
불과 며칠 전에도 아빠와의 지독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으셨던 아빠가 결국 엄마의 작은 실수에도 크게 분풀이하시는 것 같아 저는 퉁명스럽게 아빠를 질책했어요. 이에 아빠는 가끔 부부간에 불화가 있을 수도 있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지 말라며 화내셨고, 거기에 제가 또 유난히 아빠가 먼저 불화를 일으키는 게 아니냐며 맞서다 큰 싸움으로 번졌어요. 그리고 서로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는 모습에 엄마는 저희 두 사람 다에게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문제는 그 싸움 이후로 아빠가 제게만 사과를 요구하셨다는 거예요. 반대로 저한테 사과할 생각은 있냐는 제 질문에 아빠는 여느 때와 같이 “부모가 자식한테 그럴 수도 있지, 사과는 무슨 사과냐.”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모를 막 대하는 자식은 내 집에서 보기도 싫으니 당장 짐 싸서 나가라고 하셨어요.
어린 시절부터 이런 일은 종종 있었습니다. 집을 나가라면 정말 짐을 쌌고, 고속도로에서 차에서 내리라면 내렸고요.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본 적 있지 않으신가요? 어렸을 땐 주변에 이 말을 안 들어본 친구가 없어서 말을 안 들으면 쫓겨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는데, 생각할수록 폭력적인 말이었습니다. 싸움을 본질적으로 해결하기보다 경제적인 우월함으로 찍어 누르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말들이었어요.
이런 해결책은 임시적으로 입을 다물게 할 순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 부모님이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하지만 기성세대인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건 불가능해 보이더라고요. 건방지다며 더 혼나기만 했죠.
집을 나가라면 뛰쳐나갔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집을 나갈 수 없던 저는 며칠 동안 부모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와 밤늦게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어버이날이 되자 준비한 선물과 편지는 드려야겠어서 부엌 식탁에 편지 한 통을 남겼습니다. 전 편에 말했던 제 향후 계획에 대한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를 읽고 어느 정도 기분이 풀리셨는지 그 이후로 부모님은 다시 저와 사이를 좁히려 하셨고, 이 글을 쓰는 현재는 또 부모님과 평소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한번 싸웠다고 평생 안 볼 수는 없는 가족 사이에선 싸움 뒤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의 회복 과정은 왜 싸웠는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아마 다음 싸움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될 거라는 걸 서로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그동안 이 문제를 바꾸려 노력해왔지만, 점점 바꿀 수 없을 거란 사실만 확고해지고 있습니다. 아빠와 저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사람이고 다른 걸 옳다고 믿거든요.
이 문제로 고민하는 제게 평소 현명한 조언을 해주던 친구가 그러길,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없다고 깨닫는 것도 어른이 되는 과정이며, 넘어가되 잘못을 충분히 인지하고 다른 관계에선 그러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는 그동안 제가 아빠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바꾸려 할 때마다 누누이 제게 말하셨어요. “딸아, 그게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고,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단다.”
따지고 보면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또한 아빠의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사고를 바꾸려는 노력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 아빠와 많이 싸울 것 같아요. 싸우지 않는 건 바라지도 않으니, 제가 좀 더 현명해져서 덜 아프게 싸울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