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고 싶은 여자가 아닌 절대 놓지 못하는 여자가 되기 위하여
"남편을 유혹하라" 이 말을 듣고 멈칫했는가?
웃음이 났는가?
혹은, 내가 왜 그런 노력을 해야 하지? 하는 반발심마저 들었는가?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나도 그랬다.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다음엔 억울했다.
'왜 내가? 왜 또 내가?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말이 단번에 무시되지 않는다.
어딘가 불편하고, 찔리고, 생각이 맴돌게 한다.
삼손.
창조주가 힘을 부여한 사내.
맨 손으로 사자를 찢고,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명의 적을 쓰러뜨린 전사.
하지만 그는 어디에서 힘을 내려놓았는가?
전쟁터도, 사막도 아니었다.
여자, 나, 들릴라의 무릎 위였다.
내가 그의 약점을 파고들었다고?
천만에,
나는 그의 약점을 파고들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무너졌다.
내 무릎 위에서.
그가 내 무릎 위에서 자기 방어를 무너뜨렸다.
나는 그가 가장 원하는 순간에,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그를 안전하게 녹여낸 여자였다.
그가 강해질 필요 없는 공간,
그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공간,
그의 피곤한 야성 앞에 부드러운 덫을 펼칠 줄 아는 여자.
나는 그 공간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결혼 전에는 남편이 이런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남편이 바뀌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 남편은 변함없이 다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남자는 원래부터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을..
삼손은 나실인이었다.
어떤 경우라도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깍지 않아야 하는,
완벽함을 요구받던 사나이.
누가 봐도 삼손은 약점이 없어 보였다. 누구나 삼손 앞에서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는 기분파 변덕쟁이였다.
시각에 약했고, 촉각에 약했고, 맛있는 것을 쫓았다.
겉모습은 거인이었지만, 속은 오감이 예민한 아기였다.
그를 무너뜨린 건
여자의 눈빛도, 말투도 아니었다.
그의 본능이었다.
그가 변함없이 당연히 나를 사랑할 것이라는 믿음
그가 내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
그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거라는 그 순진한 믿음을,
당신이 붙들고 있다면 이제는 놓아야 한다.
그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설레고 있고,
누군가의 말투에, 눈빛에, 걸음에
남자의 본능을 자극받고 있다.
2025년 여름,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아내가 '워터밤 알아?' 하고 물어볼 때 생존법>
하수 남편 : 아, 워터밤의 여신? -> 장례식을 준비하라.
보통의 일반적인 남편: 그게 뭔데? -> 미션 성공!
고수 남편 : 응, 사!(립밤인 줄 아는 듯이) -> 댓글에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얻음.
(*워터밤: 수영복을 입고 물총싸움을 하며 음악을 즐기는 여름 축제)
그나마 저 글을 쓴 이들은
아내를 무서워할 줄은 아는,
예의 바른 남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내 남편은 다를 거라는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다른 여자 어떤지 물어보는 당신,
다른 여자를 '워터밤의 여신'이라 칭하는 남편을 보고 조금도 화내지 못하는 당신,
그게 뭔데? 하고 물어볼 때 진짜인지 아닌지 캐묻는 당신,
'응 사!' 이 말에 안심하는 당신.
더 이상 남자의 본능을 묻지 마라. 꼭 물어야 아는가?
남편이 아닌 '남자'를 보라.
그의 약함을 의심하지 말고, 확신하라.
그의 강함이 아니라
그의 무장 해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여자가 돼라.
유혹은 몸의 기술이기 전에
존재의 선언이다.
그를 위한 몸짓이 아니라,
나를 잊지 않기 위한 춤이다.
나는 들릴라다.
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당신을 갈망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당신에게 선택받고 싶은 여자가 아니다.
내가 당신을 선택했다.
나는 당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사랑의 덫을 칠 줄 아는 여자다.
당신도 여자였고,
지금도 여자다.
그를 사로잡고 싶다면
먼저 당신의 불을 다시 피워라.
그가 안심하고 무릎 꿇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가 돼라.
그것은 다시 '여자'가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