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끼리끼리 논다>라는 조금은 속된 표현을 종종 듣게 되는데 그것은 한자숙어로 유유상종이라고 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전적인 해석으로는 <같은 동아리가 서로 어울리며 왕래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단체에 소속되어 있을 때 어찌어찌하다 보면 늘 어울리는 사람들과 주로 어울리게 되는 것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친목단체에서도 그리고 심지어는 봉사 단체 안에서 조차 백퍼센트로 하나가 되기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모두가 하나 되기를 바라는, 그 단체의 리더가 되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못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공존하는 현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서로 간에 특별히 적대감 같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그 단체가 보다 작은 소모임 중심으로 갈라지며 그 모임이 나름대로 갖는 특성에 따라 그것이 좋아서 모여지다 보니 그들끼리 자꾸만 뭉쳐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은 저절로 모이기도 하고 이익의 여부에 따라 다시 갈라지기도 합니다.
그런 현상은 크게는 정치판에서부터 수없이 난립하고 있는 이익 단체들을 비롯해서 심지어는 조그만 아이들의 또래 모임에서 조차 골고루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단지 두 사람 이상만 되어도 서로 뜻이 다르면 계속해서 보다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갈라지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하나같이 다르고 변화무쌍해서 어떤 것에 대한 합일점을 찾으려면 수없이 고심하고 회의를 거치고 타협도 하고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도저히 맞지 않거나 자기의 이익을 추구할 수 없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려버리기 일쑤입니다. 그것은 머리에서 나오는 계산으로만 따지려 들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것이 인간이 가진 나약한 속성 때문이기도 하므로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익과도 상관없이 그냥 어떤 사람에게 혹은 어떤 단체에 대해 무작정 이끌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왠지 그곳엘 가면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태고 적의 나의 본성이 고향엘 간 것처럼, 본능적으로 태아가 머물던 모태에서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고, 왠지 자꾸만 가고 싶어 지는 곳이 있습니다.
서로의 뜻이 어떠어떠한지 서로 확인하지 않았을지라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는 마음의 거리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인 것처럼 믿음이 가고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진심으로 반겨줄 뿐입니다. 나는 이러한 관계 속에는 분명 어떤 보이지 않는 원리가 작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사물에는 그것의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며 그것을 응축시키고 있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에서 이미 입증된 사실이지만, 모든 사물이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아주 작은 입자들이 서로 뭉쳐서 일정한 주파수를 가지고 끊임없이 진동을 합니다. 어떤 물체가 형성된 데에는 서로 같은 파동을 가진 입자들이 한데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합니다.
공기 중에 떠도는 소리의 입자들도 진동을 통해 우리의 귀에 전달이 되는 것이고 악기들이 소리를 낼 때에도 자신들만의 고유한 떨림을 가지고 악기의 음색을 결정하거나 같은 진동수를 가진 것끼리는 서로 공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 사람에게 깃들어 있는 영혼도 마찬가지로 서로 공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파가 진동을 한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같은 수준의 의식을 지닌 사람들끼리 서로 공명을 해서 생각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서로 친근하게 어울리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깨달은 자의 의식 수준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면 그에 상응하는 깨달음의 도를 구하려는 여러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고, 의식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더라도 맑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순수한 마음을 모아서 세상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쏟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누군가에게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그들과 생각이나 의식이 일치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서로의 선을 추구하는 영혼이 같은 파동 속에서 뭉치려 하는 원리가 작용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속적인 삶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탁해진 영혼을 소유한 사람들끼리도 역시 희한하게 잘 뭉칩니다.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육감적으로 알아채듯 사악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끼리도 용케 서로를 알아봅니다. 그리고는 서로 어울리며 소위 말해서 그들은 작당을 합니다. 그리고는 더욱 탁한 기운들이 소용돌이치는 세계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거립니다.
또한 다른 탁한 일을 도모하며 같은 파동을 지닌 사람들을 또다시 끌어들이려 합니다. 영혼만이 그것을 알기에 막상 자신들은 그것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인 줄 착각하고 헤어나 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어둡고 탁한 곳에 빠져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졌다면 적어도 그 순간에는 서로의 영혼이 먼저 공명을 했기 때문임을 알고 신비롭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명이란 아무 하고나 쉽게 일어나는 것은 분명 아닐뿐더러 우리의 온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큰 파장으로 마음을 점령해버린 사람이라면 그것은 엄청나게 큰 기운이 공명을 일으킨 사람이므로 당연히 소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과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을 발견한 것이기에 우리는 사랑을 느낄 때 뛸 듯이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한 동안 더 이상은 나의 영혼이 외로움에 떨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행복한 마음이 됩니다. 둘 중의 한 사람이 소유욕이나 원망 등, 사랑의 감정을 변질시키는 인자들을 마음과 의식 속에 끌어들여 다른 파동을 지니게 되기 전까지는 영혼은 서로 끊임없이 공명하게 될 것이며 끝내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정도 같은 원리 속에서 발전시켜 나간다면 오래도록 변함없이 숭고하게 지켜질 것입니다. 어느 가수의 노래 가사처럼,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 되어서 서로 간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마치 한 사람의 인격체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노부부의 고즈넉하게 아름다운 모습도 간직하게 될 것입니다.
인연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리고 있지만 나는, 인연이란 유난히도 잘 공명되는 사람들이 자석처럼 이끌려서 어느 날, 어느 공간에서 크고 작은 만남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불가에서는 전생과 윤회라는 과정을 통해 인연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생에서 보다 가까운 사이로 연결되어 있을수록 큰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지금은 선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곤란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은 전생의 업보와 잘못된 인연의 고리를 풀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논지 속에서도 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전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었다면 그때에도 영혼과 기운의 작용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었을 때, 영혼은 사라지거나 소멸되지 않고 우주 속에 머물다가 새로운 생명 속에 다시 깃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주에서 정화되지 못하고 있던 탁한 혼이 새로운 생명에 섞여 들어가서 있다가 자신의 삶의 어느 시점에서 튀어나와 탁한 기운을 다시 끌어 모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강하게 탁한 기운이 서로 잡아당기는 힘과 공명의 원리를 이용해 좋지 않은 인연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탁한 기운을 없애고 영혼을 정화하려는 노력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영혼에는 맑은 기운이 더욱 많기 때문에 그것을 더욱 키워가려는 본능이 잠재되어있고 그래서 보다 좋은 사람과의 인연이 맺어지기를 또한 무의식 중에 바라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큰 뜻을 함께 지닌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그 뜻을 이루는 일들을 우리는 수없이 보았습니다. 지난번 우리나라의 온 국민을 뜨거운 감동의 물결로 젖어들게 했던 월드컵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과거의 해방운동과 민주화 운동뿐만 아니라 최근에 서서히 현실화되어가는 남북통일 등의 거창한 것들을 비롯해서 개개인의 자그마한 역사들 속에서까지도 본인들이 알든 모르든 간에 이러한 파동의 원리를 이용해 우주의 큰 에너지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저마다의 소망과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소원이고 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바람이 우주의 에너지를 움직이게 함으로써 마침내 그것을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해서 하나의 파장을 가지고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이 보다 아름답고 모두에게 이로운 삶이 펼쳐지는 완전한 낙원으로 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거창한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모두 서로 파동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길 기대하며 또한 직접 찾아 나서야 할 때라는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