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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19 < 깨달음의 기쁨 >

<깨달은 자>라고 하면 먼저 어떤 사람들이 떠오르던가요.

우리는 보통 예수님과 부처님 혹은 성인(聖人)의 칭호를 얻고 저 세상으로 간 모든 사람들과 현세에서 도를 닦고 있는 수행자들을 떠올리며 그들만이 깨달은 자들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큰 도(道)와 이치를 깨달은 사람만이 진정 깨달은 자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깨닫다> 혹은 <깨달음>이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이며 어떤 한자어로도 딱 맞아떨어지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터득하다>라든가 <통달하다>등의 비슷한 한자어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깨달음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것은 깨달음이라는 것이 단어에서 조차 친근함을 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말이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뿌리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을 다르게 말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든지 일상을 통해 끊임없이 깨달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대통령도 소시민도 위대한 예술가도 시골의 농부도 깨달음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이 들기까지 모든 순간들이 깨달음의 연속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며 살고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철학(哲學)이란 한자의 뜻 그대로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학문입니다. 인류의 삶이나 사고를 전환시켜줄 만큼의 크고 의미 있는 것을 깨달은 위대한 철학자들도 있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좌판이나 시장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아낙네라고 해서 철학이 없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우스갯소리로 <개똥철학>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그 무엇인가를 깊이 깨달아 자신만의 삶의 원동력이나 지침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공원 벤치에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노인일지라도 한 생을 살아내면서 깨달은 것들이 어디 하나 둘이겠습니까. 걸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서도 철학자와 같은 깊은 심연에 잠긴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누더기를 걸치고 거지의 모습으로 살며 쾰른의 성자로 불리던 독일의 <페터>라는 사람도, 걸레 스님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중광> 스님도 사실은 거지가 아니라 깨달음을 갈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깨달음에는 그 종류도 다양하게 많이 있습니다. 美에 대한 깨달음, 지혜의 깨달음, 이치의 깨달음, 과학적 원리의 깨달음, 인간 본성에 대한 깨달음, 예술적 영감의 깨달음 등등 참으로 다양합니다. 무엇을 깨닫는 가에 따라 삶의 모양과 길이 정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깨달음이 되었든지, 그리고 그 깨달음의 크기가 어느 정도가 되었든지 모두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깨달음만이 진정 가치 있는 깨달음입니다. 자신은 위대한 것을 깨달았다고 착각하지만 그들의 깨달음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죽음과 어두움과 추악함만을 가져다준 꼴이 되게 한다면 그들은 사이비 교주나 비인간적인 과학자가 되는 것이고 또는 가짜 철학자나 부도덕한 예술가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추구할수록 깊이가 생기며, 그 깊이가 심오해질수록 보다 크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기쁨과 희열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깨달음의 기쁨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추구하는 만큼 찾아오는 깨달음의 기쁨은 세상의 그 어떤 기쁨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스스로 탐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기는 자들은 깨달음의 기쁨에 매료된 사람들입니다. 수련이나 명상에 정진하게 해주는 것도 바로 깨달음이 주는 기쁨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좋은 것에 맛 들인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 매수하려 해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만의 철학하기를 통해서라도 그 어떤 깨달음이 얻어졌다면 그것을 공유하려 하십시오. 서로서로 나누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혹은 깨달았다 해도 어느새 잠시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상기시켜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서로 나누는 가운데 <아, 그래 맞다.>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삶의 기쁨이 두 배로 커질 것입니다.


깨달음은 무지에서 앎으로 향하게 하는 통로이며 계단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있으면서, 작은 것에서부터라도 끊임없이 깨달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깨어있다>와 <깨닫다>가 모두 <깨->라는 글자로 시작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는 듯합니다. 잠들어 있는 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늘 깨어서 끊임없이 깨달아가는 삶이 진정 살아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해도 가치 있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들은 삶이 아름답지 못하고 아무에게도 진심을 자극하는 울림을 가지지 못하기에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시골의 농부나 거리의 미화원일지라도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고 그들의 앞에 고개가 숙여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삶에서 나름대로의 올바른 가치관을 깨닫고 소신 있게 실천해 가는 모습이, 강한 울림을 갖고 우리의 마음속을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진심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자의 거룩함이 그들에게 서려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 깨닫는 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현재 주어진 우리의 삶 하나하나에서 일신 우 일신하듯 새롭게 깨달아 나감으로써 멋지게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적으로는 물론 영적으로도 한 차원 뛰어넘는 멋진 성장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멋지게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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