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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김나영 Apr 27. 2021

20 <자유를 꿈꾸던 날들>

처음에 나는 자유가 그렇게 좋은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어느 날, 나는 세상이 나를 피곤하게 한다는 생각에 잠시나마 어디론가 피신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고요한 쉼터가 그리워졌고 그곳이 비록 작은 새장 같은 곳일지라도 세상과 나를 단절시켜줄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안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지낼 수 있게 되니 처음 한 동안은 홀가분하고 편하게 여겨지던 것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만, 몸살이 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약속된 시간을 더 채워줘야 했던 나는 새장 밖으로 훨훨 날아가고픈 새가 되어 세상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 갇힌 격이 되었던 것인데도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인가를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유를 잃게 되고서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서로 친하게 지내는 어떤 두 친구가 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재미있게 들리곤 합니다. 한 친구는 자기의 남편이 자기를 너무 구속해서 귀찮다고 하고 또 한 친구는 제발 남편이 자기를 구속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무심한 남편을 원망합니다. 

사람은 사방이 휑하니 뚫려 있는 곳에서는 안정을 취하기가 어려운 것인가 봅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틀과 울타리를 쳐놓고 그 안에 안주하려 듭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 울타리가 겹겹이 쌓이게 되면 그때부터는 그것들이 답답한 굴레가 되어버린 것을 알고는 구속 없는 삶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을 나를 보며, 그리고 그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자유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도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어왔고 자유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되어 한 나라를 이끌기도 하고 자유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자유란 과연 무엇이기에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것일까요. 들판을 뛰어다니며 수렵을 했던 원시시대의 삶에 대한 정보가 유전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일까요. 아무리 강제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자유에 대한 갈망입니다. 조그만 틈만 생겨도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게 되는 것이 자유에 대한 갈망입니다.


정상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구속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의 아니게 우리가 만든 크고 작은 굴레에 점점 갇히게 되고 말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구속인지 알면서도 늪에 발이 빠진 것처럼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어쩔 땐 차라리 우리를 속박하는 어떤 일정한 틀 속에서 더 안주하려 들기도 합니다. 우리도 모르게 습관처럼 몸과 마음에 배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애초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기에, 인간 스스로가 끊임없이 만들어 놓은 어떤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본능의 몸부림을 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방종이나 일탈로 보이는, 구속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는 역작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구속하는 수많은 덫은 바로 우리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인데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단단한 성벽처럼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은 무수한 제도와 법과 질서들, 그리고 관습과 사회적 조직이라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구속의 바다에 노출되어 있는 삶을 피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이기에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려면 방랑객처럼 모든 것을 놓고 떠나는 수밖에 없는데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해서 진정 마음에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떠돌아다니는 동안에도 또다시 무엇인가에 속박당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저 구속을 감당하는 것이 싫어서 무작정 떠돌아다닌다면 걸인이나 부랑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세상을 피하려고 산속으로 숨어버린다 해도 그곳에도 진정한 자유는 없습니다. 자유롭고자 열망하는 것도 지나쳐서 집착이 되어 버리면 그 또한 구속이 되는 것일 테니까요. 

자유를 찾아 세상을 떠돌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모두가 자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 걸까요. 행복을 노래해주는 파랑새가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늘 있었던 것처럼, 자유도 바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 즉,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상이 되어 우리를 구속하는 삶의 틀 속에 속박되어 살아갈지라도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람객이 되어 무심히 관조하는 습관을 갖는다면 의외로 자유가 쉽게 얻어질 것입니다.

또한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은 물론, 나 자신이 만든 올가미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원효대사가 말했습니다. 세상만사가 모두 마음의 법칙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즉, 모든 것이 마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걱정도 욕심도 애착도 모두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를 속박하거나 불행하게 느껴지게 하는 것들을 스스로 부여잡지 말고, 그것들을 하나둘씩 놓아버리기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자유로움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지금 처해진 현실들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무작정 도망치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현실들은 정말로 벗어나고 싶은 구속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생명을 위태롭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모두 감당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켜주는 것이라 여기며 차라리 담담하게 맞이하고 역경을 지혜롭게 넘길 때 진정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듯이 철통 같은 감옥에 갇힌다고 해도 자유로움의 틈이 있기 마련입니다. 영혼이 자유로울 수만 있으면 됩니다. 그것은 수련이나 마음 수양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정한 틀은 우리를 보호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을 안정감 있게 흐르도록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구속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의 틀을 너무 두려워하거나 구태여 인식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파도의 물결을 타듯 같이 흐르며 뛰어넘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마음이 자유로우면 되는 것입니다.


자유가 없는 얽매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루 동안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순간이 자유로운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은 구속이지만 눈을 뜨는 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다시 살게 되었다는 기쁨은 자신이 자유인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죽음으로부터 일단은 자유로워진 것인데 그보다 더 자유롭고 감사한 일이 또 있을까요.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처한 위치나 책임감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구속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맛난 것을 먹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기쁘게 쓰게 된다면 돈을 버는 일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 스스로 택한 선택이며 자유의지가 되는 것입니다.


공부하기 싫고 학교가 즐겁게 느껴지지 않는 중고생에게는 아침 등교 시간도 힘겹고 짜증스럽게만 여겨질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는 어느 일면에서 학생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넌덜머리 나는 곳처럼 되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알고 또래의 친구들과의 유쾌한 만남을 기대할 줄 아는 학생이라면 그에게는 학교란 곳이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굴레로만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래의 자신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공부에 임하는 학생에게는 공부도 더 이상 지긋지긋한 것이 아닙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자신에 대한 믿음과 대견함으로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시키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바로 그러한 것을 은연중에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런저런 이치를 아직 많이 알지 못해서인지 초등학생들의 등교 길에는 귀여운 참새 떼가 지나가는 것처럼 명랑한 재잘거림과 함박꽃 같은 웃음이 만연합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정말로 아무런 구속이 없는 듯합니다. 사실은 그들도 그들만의 사회에서 나름대로의 규제와 제제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스스로 그것에 갇혀있지를 않아서 마냥 자유로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직 자유라는 개념조차 정립이 되어있지도 않기에 아무런 구속 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에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또, 스스로 자유를 느끼며 속박이라는 개념 자체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자유라는 것 자체에 대해서 별로 집착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에 고요한 평정이 잦아들게 됩니다. 

마음이 기쁘고 감사가 느껴지는 상태라면 그때가 바로 자유의 순간입니다. 그 순간에는 아무런 욕심도 걱정도 없이 그저 평화로움만이 가득하게 될 것이고 세상을 유유히 날아다니며 자유를 만끽하는 한 마리의 새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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