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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택 May 20. 2024

쿤밍에서 두보를 만나다(4)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

 오늘은 저녁에 무용극 <두보>를 관람하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에 관광 목적지인 쿤밍 뎬츠 풍경명승구로 향했다. 거기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 올라간 후 절벽 안쪽으로 뚫어 만든 좁은 길을 따라가면 용문(龍門)에 이른다. 쿤밍을 찾는 관광객들이 거쳐가는 관광 코스다.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숫자를 만난다. 우연히 마주하는 숫자의 조합은 그것을 보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혹자는 지나치고 혹자는 깨우친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다.  



 뎬츠(滇池)는 쿤밍시의 서남쪽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다. 수역면적이 300 평방킬로미터에 달한다.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서호의 수역면적이 6.38 평방킬로미터라고 하니 이에 비하면 뎬츠의 규모는 그 크기가 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면 뎬츠는 그냥 망망대해다.


뎬츠(滇池)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수많은 중국 국내 관광객들 사이에 끼여 용문으로 향한다. 절벽 모퉁이를 안쪽으로 깍아 좁은 통로를 만들었고 거기에 용문(龍門)을 놓았다. 용이 절벽을 뚫고 지나간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 문의 이름이 용문이다. 용의 해에 용문에 오르니 의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올라올 때 탔던 그 케이블카를 다시 타고 내려가 주변 골프장 내의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으니 작은 호수 건너편으로 라운딩 시작 전에 퍼팅을 연습하는 그린이 마주하고 있다. 푸른 잔듸가 무척 포근해 보인다. 그 위로 공을 굴리는 골퍼들의 움직임이 다채롭다.


 점심 메뉴는 쿤밍이 자랑하는 궈챠오미시엔(过桥米线)이라는 쿤밍 특유의 쌀국수 요리가 나왔다. 중국은 지역마다 특유의 국수가 있지만 쿤밍의 미시엔(쌀국수)은 중국 최고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궈챠오미시엔(过桥米线)


 우리 일행은 호텔로 돌아와 옷차림을 정갈하게 다듬고 공연장인 <윈난대극장>으로 향했다. 대극장과 도로를 사이에 두고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공연 전 만찬을 했다. 만찬은 충칭시가무단 단장이 주관했다. 그녀는 한국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조금전 충칭에서 쿤밍으로 도착했다. 고풍의 내부 인테리어와 그리고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토속적이며 고품질의 요리들이 무척 인상적이다. 공연 전 만찬이라 술잔은 치워졌고 대신 셰프가 특별히 제조한 쥬스가 제공되었다.

       

윈난성대극원 전경

 우리는 많은 기대감으로 무용극 <두보>를 관람했다. 1,400여 석을 가득 채운 중국 관람객들은 공연이 끝나고 연기자들에게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2024년 쿤밍의 <두보>는 2016년 상하이의 <두보>와 그리고 2019년 천안의 <두보>와는 많이 달랐다. 2019년 당시 천안예술의전당에서 <두보>의 한국 초연을 주도했던 전 유원희 관장은 예전의 것보다 후퇴한 무용극 <두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공연이 끝나고 늦은 시간에 한국0000협회 회원과 충칭시가무단 인원은 회의실에 모여 앉았다.

       


 충칭시가무단은 여전히 무용극 <두보>의 작품성과 우수성을 강조한다. 2016년의 <두보>와 현재의 그것이 서로 다른 것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천안예술의전당 전 유원희 관장은 <두보>의 감동이 사라진 것을 지적한다. 나 또한 그것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매듭을 지어서는 안된다. 교류가 더욱 촉진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중국의 작품 제작 환경은 우리와 다르다. 이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오늘의 <두보>를 설명할 수 있다.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작품을 제작하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국내 시장을 목표로 한다. 14억의 내수시장을 확보하고 있으니 구태여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중국 및 아시아 시장을 기반으로 한류라는 브랜드가 전세계로 확산한 것은 k-drama, k-pop, k-dance가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해서 자국의 협소한 시장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한 중국 영화 <장진호>를 예로 들자. <장진호>는 중국에서는 국내 수작으로 평가받지만 해외 평가는 이와 다르다.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8억 위안의 흥행수입을 올려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실제 투자 원가가 8억 위안인 것을 감안하면 낮은 원가에 큰 수익을 올린 것이다. 14억 인구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으로 나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 중국 작품이 글로벌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두보>의 상하이 초연과 한국 초연은 매우 화려한 의상과 스펙타클한 무대 구성으로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 중국 국내 순회공연은 그러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국내 관객이 비싼 돈을 지불하며 갈채를 보낸다. 상황이 그러하니 화려하고 육중한 의상과 장비를 운송하며 높은 비용을 들여 공연하고 싶지 않다.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작품의 구성을 간소화하고 인원을 줄이니 예전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사라졌다. 한국0000협회는 국내 순회공연에서 이렇듯 감동이 사라진 <두보>를 보았으니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두보>의 한국 공연이 다시 진행된다면 상황은 다르다. 예전의 감동은 더 높은 강도로 되살아날 것이 분명하다.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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