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택 Jul 28. 2024

같은 항공편, 다른 항공료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은 저 승객의 항공료는 얼마일까?

사람들은 자국의 항공사를 선호한다.

자기 나라 항공기가 언어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더 편안하고 포근하니 그렇다.


인천공항에서 미국 서부나 동부로 여행할 때면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성수기에는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일찍부터 탑승구 앞에 긴 줄을 만든다.

서서 기다리는 불편을 마다하지 않는다.

탑승을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 말이다.

머뭇머뭇하다 자신도 줄 끄트머리에 선다.

어느새 그 뒤로 또 긴 줄을 만든다.

먼저 탄다고 해서 무릎 공간(leg room)이 넓은 비상구 좌석을 주는 것도 아닌데.


긴 줄을 선 저 사람들은 항공권을 얼마에 샀을까?

그들이 얼마에 샀든지 저렇듯 긴 줄을 보면 미국은 틀림없이 돈 버는 노선이다.

투입 기종에 따라 공급석이 311석, 495석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런데 미국 노선은 흑자를 내기 어렵다고 한다.

왜 그럴까?         


장거리 노선은 비행시간이 길어 유류비, 승무원 비용 등 운항비용이 높다.

단거리 노선과 비교하여 운항비용을 절감할만한 요소가 많지 않다.

운항 횟수를 늘려 운항단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다.

수입을 확대할 부대 수입 방안도 제한적이다.

고가의 프리미엄 수요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비행시간이 10시간이 넘는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횡단노선(trans-Atlantic route)에 저비용항공사(LCC, Low Cost Carrier)의 효시인 사우스웨스트항공(Southwest Airlines)은 운항하지 않는다.

유럽의 최대 LCC인 라이언에어(Ryanair) 역시 마찬가지다.

저가를 핵심 무기로 하는 LCC는 장거리 노선에서 수익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장거리 노선의 수익성은 항공기 앞쪽의 퍼스트 클래스와 고가의 프리미엄 수요에 의존한다.

장거리 노선에서 최저가의 연결수요 판매에 탑승률을 의존한다면 노선의 수익성과 영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

     

국적항공사의 인천-LA 또는 인천-뉴욕 항공편 승객을 관찰하면 두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첫째, 승객 중에 백인(Caucasian)이 별로 보이질 않는다.

국적항공사 역시 이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DOJ)는 Big 2의 합병에 대해 대한항공의 시장 독점을 우려한다.

합병으로 시장의 경쟁적 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전환하면 이는 경쟁을 저하하고 소비자 이익을 침해한다.

DOJ의 판단이며 시장의 평가다.


대한항공은 DOJ 차관을 찾아가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한·미 노선의 국적항공사 이용객은 대부분 한국인이라 미국 소비자에게 영향이 없다.”

우리나라 소비자는 영향을 받아도 좋다는 말인가?

설명을 듣고있자니 맥빠지고 씁쓸하다.

어찌 되었든 승객 중에 백인이 없다는 것은 대한항공도 인정한다.

미국인 역시 자국 항공사를 선호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둘째, 인천-미국 노선 항공편에 중국 각지에서 출발한 인천공항 연결 승객들이 많다.

아시아나항공의 ‘중국발 미국행(인천 경유) 가격’과 ‘인천발 미국행 가격’을 보자.

전자는 웨이신에서 광고하는 중국 출발 가격이며 9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용 가능하다.

후자는 회사 홈페이지에 노출된 9월 1일 한국 출발 판매가격이다.                          

가격을 서로 비교하면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인천을 거쳐 미국을 오가는 항공편(중국-인천-미국 왕복)의 운임이 인천에서 미국을 오가는 항공편(인천-미국 왕복) 운임의 30% 수준이다.

즉, 같은 항공편에 탑승한 중국인 승객의 항공료는 한국인 승객의 그것보다 70% 정도가 싸다.

중국 16개 도시에서 인천을 거쳐 뉴욕을 왕복 여행(9/1일~12/31일)하는 중국인의 항공료는 4,400위안(한화 839,124원)이다.

인천에서 뉴욕을 왕복 여행(9/1일~9/8일)하는 한국인의 항공료는 아시아나가 2,731,800원이다.

인천-뉴욕 노선의 같은 항공기에 귀하와 함께 탑승한 중국인 승객의 항공료는 귀하의 30.7%다.

국적항공사의 인천-미국 노선 항공편에 저가의 중국인 수요가 많은 이유다.     


다른 하나는, Big 2의 합병 이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항공료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커플티를 맞춰 입은 듯 서로 비슷한 가격을 구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양질의 서비스를 누렸던 아시아나 선호 고객들.

그들의 편익은 Big 2의 합병과 함께 이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Big 2의 합병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서로 경쟁할 이유가 없다.

수요를 선점하기 위하여 일자별로 클래스별로 가격 할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장거리 경쟁노선에서 이제 이들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가격을 구사한다.

9/1일 출발 9/8일 리턴하는 인천-뉴욕 구간의 왕복 항공료는 아시아나가 2,731,800원, 대한항공이 2,622,700원이다.

이제 아시아나의 가격이 대한항공보다 11만 원 정도 비싸지는 순간이 왔다.

Big 2의 합병 이전에는 양사의 경쟁노선에서 아시아나가 대한항공보다 비싼 적은 없었다.


이는 양사의 경쟁 수요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고가 수요를 그리고 아시아나는 중·저가 프리미엄 수요를 타겟으로 한다.

그래서 양사의 서로 다른 가격의 차이는 시장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아시아나는 대한항공 대비 20% 할인된 시장 지위에 있다.

현대카드는 자사의 M 포인트를 항공사 마일리지로 전환할 때 대한항공은 1마일당 25포인트를 공제하고 아시아나는 20포인트를 공제한다.

아시아나의 마일리지 가치가 대한항공보다 20% 할인되어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는 양사의 가격 차이가 시장에 반영된 것이다.

     

대한항공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수요 선점에 나섰던 아시아나다.

이제 하나의 우산을 쓰게 되었으니 수요를 다툴 기회는 없다.

아시아나는 저 많은 미국행 좌석을 어떻게 채울까?

인천-미국 노선의 가격 하락을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국발 미국행 수요를 인천 경유편으로 유치하기 위해 특가를 제공하여 모객한다.

이를 통해 인천-미국 노선의 탑승률을 높인다.

장거리 노선의 탑승률은 특가의 연결수요에 의해 높아질 수 있지만 그만큼 노선 수지는 악화한다.

인천-미국 노선에서 한국발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Big 2는 가격 경쟁을 하지 않는다.

대신 아시아나는 중국발 저가 수요를 모객하여 탑승률 제고에 충당한다.

2024년 9월 1일 인천-뉴욕을 운항하는 항공편에 귀하 옆에 앉을 중국인 승객의 항공료가 귀하보다 190만 원 낮아지는 가격 메커니즘이다.

결국 국내 소비자는 Big 2의 합병으로 예전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작가의 이전글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