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판에서, 남을 잘 속이는 재주를 가진 사람"(표준국어대사전)
항공기 좌석이라는 서비스 상품은 재고가 없다. 좌석이 갖는 상품 가치는 항공기가 승객 탑승을 완료하고 이륙하는 순간 '수익과 손실'로 확정된다. 팔지 못한 빈 좌석들의 좌석당 원가는 해당 노선의 운항수익에 기여하지 못하고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빈 좌석에 의한 원가 부담을 제거하거나 완화하기 위하여 수입관리부서는 탑승률 제고에 집중한다. 연중 시즌별로, 클래스별로, 구매 시점별로 가격을 다양화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개별 노선에 투입하는 항공기의 수익 성과를 관리하는 지표가 있다. 손익분기점 탑승률(BEP L/F, Break Even Point Load Factor)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항공기의 전체 좌석수에 대한 판매 좌석수의 비율을 탑승률이라 한다. 그리고, 항공사는 노선별, 시기별, 기종별로 특정 노선의 운영에 소요되는 총 운항비용을 상쇄하는 판매 좌석수를 설정하고 이를 손익분기점 탑승률로 관리한다. 이 판매 좌석수를 기준으로 해당 노선의 이익과 손실을 평가한다. 따라서, 항공기의 탑승률을 중시하는 최고경영자는 경쟁사 대비 탑승률이 뒤지는 것을 참지 못하는데 이 때문에 해당 부문의 임원과 부서장은 약탈적인 가격할인을 해서라도 탑승율을 높이는데 집중한다.
예를 들면, 인천-뉴욕(ICN-JFK) 구간을 운항하는 OZ222편의 항공기 A350-900의 공급석은 311석이다. 인천공항 제1 터미널에서 오전 9시 50분에 출발하는 OZ222편에 240명이 탑승했다고 가정하면 이 항공기의 탑승률은 77.2%(240명÷311석)다. 그런데, 제2 터미널에서 같은 노선을 운항하는 경쟁사의 KE081편 탑승률이 자사보다 높은 88%라고 하면 해당 노선의 세일즈 랩(Sales rep)은 물론 임원과 부서장은 경쟁사의 탑승률을 따라잡기 위해 가격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가격할인 정책은 저가수요를 확보하여 탑승률을 높이는 효과는 있지만 회사의 수익성을 악화할 수 있다. 가격이 낮아지면 손익분기점 탑승률 또한 높아진다. 가격이 낮아질수록 더 많은 승객을 태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다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탑승률 격차에만 몰입하는 그러한 가격경쟁을 지속하면 어느 순간 탑승률이 100%가 되어도 손실을 보게 되는 최악의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1998년 한·미 항공자유화협정 체결 이후 미국 대형항공사들의 대규모 서울 취항 러시로 시작된 치열한 가격경쟁은 대한항공의 미주노선이 ‘만석이어도 적자’인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었다.
탑승률 경쟁이 이렇게 가격경쟁만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최고경영자가 임원 회의에서 특정 노선의 탑승률 격차를 지적하는 순간 유관 부문 임원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기간에 탑승률을 올리는 것에 업무의 우선 순위를 둔다. 이는 결국 타짜의 본성을 자극한다. 물론 누구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타짜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식을 통해 탑승률의 격차를 해소한다. 이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타짜의 비뚤어진 능력이 정화되지 않고 잘못된 하나의 회사문화로 자리하여 확산된다는 데에 있다.
20년 동안 GE의 최고경영자(Chairman & CEO)의 자리에 있었던 잭 웰치(Jack Welch)는 그의 저서 『위대한 승리(Winning)』에서 “시장점유율을 부풀리기 위해 점점 더 전체시장의 규모를 축소해서 정의하려 한다”라며 케케묵은 관료주의와 현상 유지에 만족하는 리더들을 지적했다. 잭 웰치가 지적한 ‘시장점유율을 부풀리기 위해 시장의 규모를 축소하는 행위’는 항공에서는 ‘탑승률을 부풀리기 위해 공급석 규모를 축소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저비용항공사(LCC)가 시장에 진입하기 이전인 2004년 김포-부산 국내선을 운항하는 A 항공과 B 항공의 탑승률이 10% 내지 30%p의 격차를 보였다고 하자. A 항공의 최고경영자는 이러한 양사의 탑승률 격차를 질타하였고, 이에 담당 임원은 탑승률을 즉각적으로 상향 조정할 수 있는 타짜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포-부산 노선의 주력 항공기를 기존의 169석에서 127석의 항공기로 교체 투입하였다. 다시 말해, 판매 수요를 늘리지 않고도 항공기의 공급석(좌석)을 다운사이징하여 탑승률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즉, 항공기에 100명이 탑승하면 예전 169석의 기종에서는 탑승률이 59.2%(100명÷169석)였는데 이제는127석의 항공기로 교체하였으니 똑같이 100명이 탑승해도 탑승률은 79%(100명÷127석)로 늘어난다. 탑승객은 똑같은데 탑승률이 순식간에 19.8%p(59.2%→79%)가 증가하는 마법같은 일이 발생한다. 공급석의 다운사이징 효과다. 판매 승객을 늘리려는 어떠한 영업적 시도도 없이 단순히 항공기를 소형기종으로 교체한 것만으로도 탑승률 격차를 해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즉각적인 탑승률 향상 성과를 보고받은 최고경영자는 해당 임원의 능력(?)에 감탄하고 또 영문도 모른 채 신뢰를 보내겠지만 김포-부산 노선에는 많은 상처가 남는다.
김포-부산 노선은 전형적인 비즈니스 상용노선이다. 특히 이른 아침편에는 양복과 넥타이를 한 신사들과 오피스 정장을 한 숙녀가 대부분이다. 출발시간이 몇 분만 지연되어도 "바쁜데 왜 항공기를 지연시키고 지랄이야! X 같은 ㅅㄲ들아!"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 상용노선의 특징이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상용노선에 중형기를 띄우는 B 항공과는 달리 좌석 수도 적고 좌석 간격도 좁은 127석의 소형 항공기를 투입하게 되면 A 항공을 사랑하는 기존의 충성고객들조차도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결국, 항공기 공급석의 다운사이징으로 단지 몇 개월 동안은 외견상 양사 간의 탑승률 격차를 기술적으로 해소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A 항공의 상용 고객들은 점점 소형기 탑승을 기피하며 A 항공으로부터 발길을 돌리게 된다. 결국, 공급석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양사 간 탑승률 격차는 다시 종전 수준으로 회귀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잭 웰치가 지적한 “시장점유율을 부풀리기 위해 점점 더 전체시장의 규모를 축소해서 정의”하는 행위는 위에서 사례로 보았던 “탑승률을 높이기 위해 항공기 좌석 규모를 다운사이징”하는 행위와 일맥상통한 것으로 리더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잭 웰치는 또한 “경쟁을 위해서는 비용과 품질, 서비스를 재정비하여 새로운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라고 했다. 경쟁의 방향을 새로운 수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설정해야지 타짜의 기술을 구사하여 임시방편으로 모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타짜가 인정받는 조직과 세상의 결말은 어떠한가?